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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 종점투어 [매일신문]...5

최두호 2017. 11. 20. 17:35

[종점투어] 가창2번 버스 종점 우록리
대구 칠성시장과 달성 가창면 우록리를 오가는 가창2번 버스. 이번 종점투어의 행선지로 정한 우록리를 찾아가려면 가창2번을 잘 보고 타야 한다. 같은 가창2번이라도 정대나 단산을 종점으로 하는 버스들도 있기 때문. 버스 앞과 옆에 종점이 크게 표시돼 있어 조금만 눈여겨보면 버스를 잘못 탈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창 우록리로 가는 길. 아직도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심과 달리 가을이 완연하다. 고개를 숙인 벼들은 황금색 물결을 이루고, 산에는 조금씩 단풍색이 짙어가고 있다. 우록리는 대구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25㎞ 거리에 위치한 산간마을. 사성(賜姓) 김해김씨 일가를 비롯 2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구시가 제작한 ‘녹동서원 안내 팜플렛’에 우록리는 원래 ‘우미산(牛尾山) 아래에 위치한 소(牛) 굴레 모양의 마을’이란 뜻으로 우륵동(牛勒洞)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귀화한 김충선 장군이 1600년에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동(友鹿洞)으로 고친 후 정착하면서 마을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

우록리 버스 종점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녹동(鹿洞)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조선조 임진`정유`병자년의 난 때 큰 공을 세운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장군을 모신 곳이다. 일본인이었던 그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可).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가등청정(加藤淸正) 휘하 우선봉장으로 조선에 온 그는 부산항에 내린 즉시 부하 3천명을 이끌고 조선에 귀화했다. 어릴 때부터 인륜을 중시한 그는 일본의 조선 침략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귀화 후 조총제작 기술을 조선에 전수하고 경주`울산 등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 이후 정유재란,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에도 큰 공을 세웠다.

삼란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리는 김충선 장군을 모신 녹동서원은 한`일 우호의 광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년 1천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찾을 정도로 녹동서원은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 일본인들은 녹동서원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보이면서 “조선에 귀화한 김 장군이 핍박받지 않았느냐”는 등을 많이 묻는다는 게 녹동서원 문화관광해설사의 귀띔. 서원 옆 충절관에는 장군의 유품과 유물, 한`일 양국의 역사`문화 자료, 임진왜란 관계 전문도서 등이 전시돼 있다.

노란색이 점점 짙어가는 녹동서원 은행나무 밑을 천천히 걸으며 400여년 전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삶의 족적을 남긴 김충선이란 인물을 떠올리며, 그가 오늘 이 세상에 어떤 화두를 던지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버스 종점에서 마을 안으로 조금 더 가면 ‘김충선나무’라는 은행나무도 있다. 수령이 200여년 가량 되는 이 은행나무는 김충선 장군의 정신을 기리며 200여년 전 심은 것이라고 한다.

우록리 주변에는 한천서원, 남지장사 등 명소가 많다. 남지장사는 무학대사`사명대사 등 고승들과 연을 맺은 사찰로 울창한 숲이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은 곳. 우록에는 약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유명하다. 마을 뒷산에 방사해서 키운 오골계와 황기, 은행 등 갖은 약재를 넣어 푹 삶아낸 오골계 백숙은 쫄깃한 육질과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해서 우록리 종점투어가 끝났다고 하면 큰 코 다칠 일! ‘백미’ 하나가 더 있다. 우록리에서 승용차로 5분여를 더 올라가면 백록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최정산으로 올라가는 능선에 억새자생지가 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대신 승용차로 최정산 능선을 올라간 후 억새자생지를 찾기로 했다. 해발 700여m에 이르는 최정산 능선에서 억새자생지를 가려면 목장을 지나가거나 능선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을 따라가야 한다. 목장 측의 협조로 목장을 통과해 헬기장 부근에 있는 억새자생지를 찾아가니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 억새 군락이 능선을 따라 물결치고 있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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