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팔도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다. 바다에 필적할 그림 같은 풍경은 있다.
남한강 물길을 막자 생긴 호수다. 충주호다. '물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충주 여행의 출발지다.
과연 물의 고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온천지구인 수안보까지 끼고 있다.
조령산 방향으로 조금만 나가면 경북 문경 땅이다. 심리적 거리로는 옆 마을같은 충북 충주다.
꽤 오래 전부터 지리적 요충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자웅을 겨루던 땅이었다. 기선 제압을
표시할 최적의 장소는 중원고구려비로 입증됐다. 통일신라도 국토의 정가운데를 이곳에 표시했다.
중앙탑이라 불리는 칠층석탑이 증거다.
어느새 경칩을 지나 짧아진 봄이다. 역사의 흔적 중앙탑 아래로 현재의 흔적 냉이가 올라오고 있다.
3월이다. 완연한 봄을 맞은 충주다.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 충주호

충주호는 1985년 남한강 물길을 댐으로 막으면서 생겨난 호수다.
남한강을 막은 댐 이름이 충주댐이다보니 충주호가 입에 붙었다.
안동댐과 안동호, 임하댐과 임하호가 세트로 불리듯 자연스럽기도 했다.
안동호, 임하호가 안동에 한정된 것과 달리 충주호는 단양, 제천, 충주에 걸쳐있다.
단양에서 제천까지는 청풍호로, 충주에 접어들면서 충주호로 불린다.
청풍호도 사실 제천의 옛 이름인 청풍에서 왔으니 결국 지역명 갈음인 셈이다.
그러나 단양이든 제천이든 충주든 공통적인 것은 수몰민의 아픔이 물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인공호수답게 여기서도 5만명이 고향을 잃었다고 한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충주시가지는 삼면이 충주호와 남한강으로 둘러싸인 반도다.
잘 가던 강물이 막혔으니 물길이 두터워지는 원리다.
손목을 꽉 잡으면 손등의 핏줄이 뛰쳐나올 듯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넓디넓은 충주호를 보자니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이 떠오른다.
방대한 스펙터클을 상상해본다면 소설 속 세령댐으로 삼을 만한 곳이 이곳 외에 또 어디가 있을까 싶다.
정작 영화 '7년의 밤'에 배경으로 등장한 곳은 전북 임실의 옥정호,
충북 음성의 원남저수지와 청주 대청댐이었다지만.
◆.충주호와 걷는 종댕이길

충주호를 조망할 수 있는 산은 여럿이다. 어디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경도 달라진다.
안동호에 와룡산이 제격이듯 충주호에는 심항산이 있다. 충주호 쪽으로 튀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산 주변을 한 바퀴 돌면 호수를 계속 보면서 걷게 된다.
'종댕이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종댕이'라는 이름에 모음으로 이어진 동글동글한 리듬감이 있다. 종댕이는 충청도 사투리다.
짚이나 싸리 등으로 엮은 주둥이가 좁고 밑이 넓은 바구니인 종다래끼가 표준어다.
농경사회에서 많이 쓰였던 종댕이의 도구적 기능은 사라져가도 길 이름으로 명성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총 길이는 7.5km다. 심항산과 충주호를 휘도는 핵심코스만 걸으면 3.8km다.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주차장이 있는 마즈막재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게 정석이다.
종댕이길 오솔길진입로까지 약 900m를 걸어들어가야 한다. 숲은 생각보다 풍성하다.
소나무숲은 물론이고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류가 무성하다. 경칩을 갓 지난 봄엔 우거지지 못했다.
4월을 넘기면 천연 차양막이 될 정도로 빽빽한 군락이다.

충주호가 바투 보이는 오솔길에 들어서자 연못에서 개구리가 합창을 한다.
'끄라락, 끄라락' 소리에 화음이 실렸다. 생물학자들은 전문용어로 짝짓기 소리라 했다.
눈 뜨자마자 짝짓기인가. 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추스르고 앞날을 도모하는 자연의 법칙이다.
심항산을 휘도는 종댕이길 핵심코스는 얼핏 하트모양으로 생겼다.
연인들이 한 바퀴 같이 돌면 사랑이 깊어진다고들 굳이 믿는다. 낭설은 아닐 법한 게,
산행까지는 아니지만 3.8km 거리를 동고동락하면 없던 금슬도 생긴다.
길 중간쯤 나오는 종댕이고개를 넘으면 한 달씩 젊어진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종댕이고개를 넘으려면 오르막을 깔딱거리며 넘어야 하는데 숨이 넘어갈 만큼 위기를 넘기면
심장이 터지기 전에 땀샘이 폭발한다. 어디 한 달만 젊어지랴.

종댕이길 한 바퀴를 완주할 즈음 주황색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희소성이 있을 때 소중했고 가보고 싶었지, 유행처럼 번져 생기니 여기도 있나보다 싶다.
◆.물이 있어 절경, 중앙탑 사적공원
충주 토박이에게 "충주에 가는데 뭘 먹을까?" 물으니 양수겸장이라며 중앙탑을 권한다.
중앙탑 인근에 막국수 가게가 있으니 거기서 치킨과 막국수를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주변 공원을 걷고
탄금호를 감상하라는 권유였다.
중앙탑이라니, 대구시내에 있는 시계탑처럼 현대식 탑인가보다 했다. 알고 보니 역사적 가치가 충만한
국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었다. 통일신라 때 세운 것이었다.
국보 연번도 빠르다. 6호다.

국보라 해서 존칭어를 따로 붙여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정식 명칭 대신 충주 사람들은 '중앙탑'이라
불렀다. 중앙탑 이름의 유래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통할 만했다.
신라 원성왕이 국토의 중앙이 어딘지 알아보려 걸음 속도가 같은 두 사람을 국토의 남과 북의 끝에서
동시에 출발시켜 만난 자리라는 것이다.
남과 북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두 사람은 잠도 안자고 걸었단 얘긴지, 중간에 산맥이 좀 더 많은
이북 지역의 거리를 보정했는지 등 디테일을 캐물어선 곤란하다. 그저 전설처럼 전해오는 얘기다.
탑을 세운 자리가 국토의 정중앙이었으니 중앙탑이라 불렀다는 거다.

어쨌든 '중앙탑 사적공원'이라는 널찍한 공원 안에는 국보인 칠층석탑과 충주박물관,
리쿼리움이라는 술을 소재로 한 박물관, 그리고 밤이면 더 멋있다는 라이트웨이가 탄금호와 어울려
관광지로 매력을 뽐냈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는 우스갯소리의 응용으로 명승의 완성은 강과 호수라 주장해도 될 법하다.
제멋대로 나무가 자라나 있고, 제 맘대로 울퉁불퉁 지형이라 해도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으면 풍경이 바뀐다. 2005년 청계천 복원에 서울시민들이 그토록 열광하고, 걷고, 즐겼던 이유가 뒤늦게 이해됐다.

◆.한국사 단골 중원고구려비
통일신라시대의 거대한 칠층석탑인 중앙탑과 국내 유일의 고구려시대 빗돌인 중원고구려비는
충주 역사기행에선 필수 코스다. 둘 다 국보다. 둘 사이의 거리는 1km 정도로 제법 떨어져있다.
자동차로는 금방이다.
국보 둘을 지닌 곳답게 이곳의 행정구역 이름도 중앙탑면이다. 원래 가금면이었던 걸 2014년에 바꿨다.
일제강점기 가흥면과 금천면을 통폐합해 가금면으로 불렸는데 하필 금가면과 혼란을 줘 불편했었다고 한다.
스포츠계에서는 간혹 개명 효과를 누렸다는 비논리적 주장이 통하는 경우가 있으나 행정구역 개명,
그러니까 지명을 바꿔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민 의견을 반드시 묻기 마련인데
대체로 압도적 지지로 개명한다. 수안보면도 바뀐 지명이다. 2005년까지 상모면이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청송 부동면이 주왕산면으로, 포항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울진 서면이 금강송면으로,
원남면이 매화면으로 바뀌었다.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있어 존재감 알리기에는 탁월한 개명이다.
내친 김에 국사 문제로 자주 출제되던 중원고구려비도 충주고구려비로 개명했다.
1979년 당시 지명이던 중원군에서 발견됐다 해 중원고구려비였으나 중원군이 충주로 편입되면서
2012년부터 충주고구려비로 통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시험에서는 '중원고구려비'로 더 통한다. '고구려의 영토가 남한강 유역까지
진출을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수왕 때 비석'으로 개념 정리돼 있는 그 비석이다.
◆.빼놓은 수 없는 수안보온천

온천욕을 빼놓으면 섭섭해 할 충주다. 충주호가 있기 전 이 지역의 자랑은 수안보였다.
온천 이용객이 많이 줄었다지만 썩어도 준치다. 중앙탑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한,
조선시대부터 정통성을 자랑하는 섭씨 53도의 고온 알칼리 온천수다.
수안보온천지구 업소들은 시설의 차이가 있을 뿐 사용하는 온천수는 같다.
온천공에서 뽑은 온천수를 탱크에 모아 나누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행과 온천은 궁합이 맞는 커플이다. 월악산도 가깝다. 월악산국립공원에는 입장료도 없다.
필요한 것은 체력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