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 참고자료 모음

거창 관광

최두호 2019. 8. 29. 15:32

절경 따라 자전거 트레킹 ‘거창 건계정’




녹음의 계절 6월이다. 이른 더위가 다소 지치게 만들지만 이때만큼 대자연의 푸르름을 즐길 수 있는 때도 없다.

쉽게 하는 자동차 여행 말고, 한 손에는 지도를,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발걸음을 옮겨보자.

 

건계정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에 선정될 만큼 자연의 묘미를 즐기며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은 건계정 전경.
건계정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에 선정될 만큼 자연의 묘미를 즐기며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은 건계정 전경.

 

한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 백선에 선정된 경남 거창의 ‘외갓집 가는 길’. 정말이지 농촌 풍경을 따라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리고 있으면, 여름방학에 외가를 찾았던 오랜 추억이 떠오른다. 여행객에게 추억만큼 아름다운 선물이 또 있을까.

잠시 내려 소박한 농촌 옛길을 걷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거창터미널에 도착하면 먼저 군청에 들러 자전거를 대여하길 권한다. 거창군청에서는 간단한 무인등록 후

자전거(그린씽)를 대여해준다.

자전거를 타고 농촌 풍경과 물소리를 따라 본격 여행이 시작된다. 거창군청에서 자전거로 15분 정도 달리면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건계정이 나온다.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 요충지로 자리했으나 지금은 ‘거창’ 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와

맑은 물, 숲이 어우러진 빼어난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건계정은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뿐 아니라

글이나 문학 소재로 자주 등장하던 곳이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숲옛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숲옛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500년 전통의 농촌체험마을 숲옛마을

이곳에는 영천의 맑은 물 위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양의 거북바위가 있다.

그 위에 건계정이 지어졌다. 건계정은 거창 장(章)씨 문중이 천9백5년에 세운 것이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까지 점령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중국에서 귀화한 장종행의 아들 두민이

군사를 지휘해 홍건적을 몰아내고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훈을 세웠다.

이에 대한 공로로 공민왕은 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고 후손은 두민의 공을 기려 정자를 세웠는데

그 정자가 바로 건계정이다.

건계정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휴식을 취했다면 다시 거창군청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한다.

그 후 거창시내버스터미널에서 ‘숲옛마을’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른다.

거창 숲옛마을은 덕유산 자락이 품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갈계리에 오래된 숲인 갈계숲이 있고 은진 임씨가 살기 시작한 지 5백년이 넘은 옛 마을이라 숲옛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을에는 임씨 고가와 재실, 갈천서당 등 고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5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답게 체험장에서는 엿 만들기, 두부 만들기, 떡메치기 같은 우리 전통음식 위주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엿 만들기는 무려 여덟시간이나 달인 조청을 사용한다. 또 떡메치기는 친환경적으로

농사지은 찹쌀과 흑미를 혼합해 흑미 찰떡을 만들어 먹는 체험이다. 체험 활동까지 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질 것이다.

 이곳에서는 마을 민박과 야영이 가능하니 사전예약을 하고 하룻밤 묵어가는 것이 좋다.

다음 날 절경이 뛰어난 수승대로 향한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로 사신을 보내면서 그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해 수송대로 불렸던 곳이다. 천5백4십3년 퇴계 이황이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 아름답지 못하다며 수승대(搜勝臺)로 바꿀 것을 권했다. 이후 수승대 주변으로 구연서원 요수정뿐 아니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황산마을 옛 담장과 정온 선생 고택 등이 어우러지며 수려한 경치 속에서 문화유산 답사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 됐다.

 

수승대의 ‘거북바위’는 거북이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거창의 명소다.
수승대의 ‘거북바위’는 거북이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거창의 명소다.

 

 

산나물이 유명한 농가 맛집 ‘돌담사이로’.(사진=웰촌)
산나물이 유명한 농가 맛집 ‘돌담사이로’.(사진=웰촌)

 

병풍대·곤달비·개머위 장아찌 3인방!

여행의 마침표는 역시 맛집이다. 인근 농가 맛집 ‘돌담사이로’는 전통한옥을 이용해 농가 맛집과 민박을 겸하고 있다.

이 일대는 돌담마을로도 유명하다. 3백여 년 된 은유 고택에 자리한 ‘돌담사이로’는 직접 채취한 산나물의 향기가 그윽한 곳이다. 산내음 정식의 대표 메뉴는 병풍대·곤달비·개머위로 만든 장아찌 3인방이니 잊지 말 것! 그중 병풍대는 “병풍대를 만나면 그동안 캔 나물을 다 버리고 병풍대만 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향과 맛이 뛰어나다.

이곳은 주인이 직접 캐고 뜯은 나물과 버섯만 사용한다. 고추장 대신 향토 양념 고추다지미를 넣어 산나물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나물밥은 ‘돌담사이로’만의 자랑이다. 또 가죽 부각과 아카시아 부각으로 만든 ‘거북바위에 핀 아카시아’와 돼지수육은 인근 명승지인 수승대의 거북바위를 형상화한 음식으로 거창의 풍경을 입안에서 음미할 수 있다.

문의 거창군청(055-940-3114), 건계정(055-940-3423), 숲옛마을(055-942-2247), 수승대(055-940-8530),

돌담사이로(055-941-1181)

1박2일 코스 

 


 12: 20  용암정

 

 

용암정(경남 문화재자료 제253호)은 1801년(순조1) 용암 임석형 선생이

위천 강변의 바위 위에 지은 정자로 경관이 뛰어나다.

 

 

 

 

 

 용암정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한다.

 

 


 거북바위

 수승대의 명물인 거북바 위가 보인다.

 

 

구연교

거북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출입금지 안내판 설치)  

 

 

 

 

 

 수승대는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의 가운데 위치한 거북바위(龜淵岩)

 

 

요수정 (樂水亭)

 

 

요수 신권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요수정

 

 

요수정(樂水亭)

이 정자는 구연대와 그 앞으로 흐르는 물, 뒤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수승대의 경관을 동천으로 승화시키고


 

 

원각사 입구

수도꼭지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물통에 물도 받고

 

 

 물놀이장 옆을 지나

 

 

물놀이온 인파들

 

 

수승대교 / 출령다리

 

 

 수승대 현수교

 

 

 

 

마지막 잠수교입구 에 시계탑  현재 시간 오후 1시 반이군요

 

 

잠수교를 건너

 

 

 

 

저분 참 시원하겠습니다.

 

 

13: 35   주차장에도착 

배낭을 차에두고  수승대 우측 길을 따라 일행들이 기다리는 

문화 유적길을 답사한다.

 

 

 

 

 

 

 

 

관수루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는 1740년(영조 16)에 세워졌다.

구덩이를 만나면 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흘러간다

 

 

 

  구연서원.

 

 

요수 선생이 1540년(중종 35)에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1694년(숙종 20)  구연서원으로 명명되었다고하고  

 

 

 

보호수고목

 

 

거북바위 반대편에서 보는 모습

수승대의 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는 많은 글들이 새겨져 있다.

 

 

거창 목재 문화 체험관

 

 

 주차장에도착

 

수승대 주차장에서 수승대 문화유적 여행길 트레킹을  모두마치고

대구로 귀가하여  박영식대장 식당에서 하산주를 하고 

하루일정을 모두마친다.

 


황산전통한옥마을

 

어디든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고민 중이라면 잠시 집중하시라. 연로한 부모님,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안성맞춤! 편안한 가족휴가지로 손색없는 고택체험을 준비했다. 특히 신혼부부이거나 2세를 계획 중인 부부라면 귀가 솔깃해질 고급정보까지 갖췄으니, 이곳에 가면 ‘드림베이비’를 얻을 수도 있을지니! 16세기 초 시작된 거창 신씨들의 집성촌, 황산전통한옥마을을 소개한다.

원학고가 사랑채

원학고가 사랑채

한옥마을과 고택체험이라.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영남의 안동하회마을과 호남의 전주한옥마을을 필두로 경주 양동마을,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그리고 서울의 북촌과 서촌, 남산한옥마을까지. 이들 중에는 아예 관광지로 박제되어 구경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도 있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경계 육십령 넘어 가는 길

황산전통한옥마을 돌담길. 담의 위아래 돌의 크기를 달리한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난다

황산전통한옥마을 돌담길. 담의 위아래 돌의 크기를 달리한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난다

이런 살아있는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고택체험, 즉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옛날 ‘이리 오너라’를 외치며 대갓집 객식구로 입성해 넉넉한 주인이 베푸는 음식과 잠자리에 쉬어가는 길손이 되어볼 수 있는 셈. 물론 그 시절의 인정까지 모두 화폐로 환산 가능한 21세기에 공짜는 없다.

앞서 소개한 한옥마을들은 모두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 살펴볼 경남 거창의 황산전통한옥마을은 익숙하지 않을 터. 그만큼 덜 알려진 공간이다. 오히려 황산전통한옥마을 초입 건너편에 자리한 ‘수승대’를 아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고즈넉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 시끌벅적한 수승대를 더하면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여행에 생기를 보탤 수 있다.

수승대 거북바위. 퇴계 선생을 비롯해 여러 문장가들이 바위에 글을 남겼다

수승대 거북바위. 퇴계 선생을 비롯해 여러 문장가들이 바위에 글을 남겼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자리한 수승대. 원래 이름은 보내는 곳이란 뜻의 ‘수송대’였다

[왼쪽/오른쪽]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자리한 수승대. 당시에는 백제 사신이 신라로 넘어갈 때, 기약없는 송별회를 하던 곳이었다. 원래 이름은 보내는 곳이란 뜻의 ‘수송대’였다

 수승대의 문루, 관수루. 1740년 건립했다. 서원의 학생들이 시름을 달래던 공간이지 않았을까 건축가의 뚝심이 전해지는 관수루 기둥. 나무 그대로의 개성을 살렸다

[왼쪽/오른쪽]수승대의 문루, 관수루. 1740년 건립했다. 서원의 학생들이 시름을 달래던 공간이지 않았을까 / 건축가의 뚝심이 전해지는 관수루 기둥. 나무 그대로의 개성을 살렸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이 자리한 경남 거창으로 향하는 길, 거창보다 동쪽에 자리한 영남지방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면 백두대간 위에 자리한 육십령을 지나게 된다. 위로는 덕유산(1614m), 아래로는 백운산(1279m)과 닿는 육십령은 좌우로는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 경계에 자리한다. 즉, 육십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자연스레 나누는 백두대간에서 영남과 호남을 잇는 고개였던 것. 응당 교통의 요지였을 것이며 또한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백제 사이의 요충지인 동시에 격전지였으리라. 전쟁을 치를 때마다 속한 나라가 바뀌던 육십령 주변 백성들은 얼마나 모진 고통을 겪었을까.

행정구역상 경계를 넘나들며 이어지던 생각은 구불거리는 길 위에서 곧 사라진다. 26번 국도에 올라 함양땅에 들어선 뒤 37번 지방도로 갈아타며 곧 거창에 들어선다. 드디어 황산전통한옥마을에 도착, 길 건너에는 사철 관광지로 사랑받는 수승대가 자리한다. 이 땅이 백제에 속했을 때, 백제의 사신을 신라로 보낼 때 헤어지던 곳이다. 신라땅으로 들어서는 사신의 생사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을 터. 그 모두를 지켜봤을 거북바위가 오늘도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500여년 이어져 온 거창 신씨 집성촌

황산마을 취재에 동행한 거창군 표선자 문화해설사님. 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된 보호수 마을에서 키우는 소. 거창은 한우로도 유명하다

[왼쪽/오른쪽]황산마을 취재에 동행한 거창군 표선자 문화해설사님. 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된 보호수 / 마을에서 키우는 소. 거창은 한우로도 유명하다

황산전통한옥마을로 들어서면 큰 정자 앞에 주차공간이 있다. 부족한 경우에는 고택체험을 하는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해 집 앞에 주차하면 된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거창 신씨 집성촌, 고택이 즐비해 ‘황산고가마을’로도 불린다. 16세기 초, 요수 신권이 정착하면서 거창 신씨 집성촌으로 자리 잡았다. 이 마을의 나이는 500년 정도 된 셈이다. 영조 이후 이곳 출신 급제자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번영했단다.

황산전통한옥마을 전경

황산전통한옥마을 전경 황산전통한옥마을

황산전통한옥마을

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수령의 보호수 왕의 사랑을 기다리다 스러져간 여인의 슬픈 사랑을 품은 능소화

[왼쪽/오른쪽]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수령의 보호수 / 왕의 사랑을 기다리다 스러져간 여인의 슬픈 사랑을 품은 능소화

“이 마을을 보면 부드러운 산줄기에 안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또 마을 가운데 물줄기가 있지요? 땅의 기운이 아주 평안해요.

명당이라고 불릴 만하죠. 마을 뒤의 산줄기는 호음산, 물줄기는 호음천이에요. 호음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양쪽으로 나뉘어요.

모두 황산전통한옥마을에 속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고택체험은 마을 어귀에서 봤을 때 호음천 왼편의 고택에서 이루어지지요.

이 마을은 500여년 되었지만 지금 남아있는 고택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졌어요. 건축물만 보더라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가 뒤섞여 있죠. 완전히 전통적이지 않지만 이게 바로 당시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거창군 표선자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황토 돌담길을 따라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 17호)로 들어섰다.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채·중문채·안채·곳간채가 이어진다. 제일 먼저 닿는 사랑채를 지탱하는 기둥의 나무, 자체에 문양이 들어갔다. 이북에서도 추운 지방에서나 자라는 나무란다. 그 먼 곳의 나무를 어찌 여기까지 옮겨왔을까.

기둥부터 심상치가 않다. 또 일반적인 영남지방의 양반가옥과 달리 겹집에 팔작지붕이다. 또 궁궐에서나 쓸 수 있던 돌받침과 기둥 장식도 눈에 들어온다. 창살도 한땀한땀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 집을 지은 이의 재력과 권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집이다.

원학고가의 모습 원학고가 안채

[왼쪽/오른쪽]원학고가의 모습과 원학고가 안채 / 1927년 다시 지어진 원학고가 안채. 드림 베이비가 탄생한 공간원학고가를 지키는 박정자 종부 화려한 창살만으로도 집주인의 권세와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왼쪽/오른쪽]원학고가를 지키는 박정자 종부 / 화려한 창살만으로도 집주인의 권세와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시할머님께서 여기 안채에 머물며 학이 세 마리 달려드는 태몽을 꾸고 시아버님을 낳으셨다고 해요. 이 고택이 ‘원학고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죠. 시아버지께서 장관, 교수 등을 지내셨고 후손들도 잘 풀리는 건 다 이 집의 기운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젊은 부부들이 그 얘기를 듣고 ‘드림 베이비’를 꿈꾸며 찾아오더라고요.” 종부 박정자씨의 설명이다. 지난 2012년 한국 명품고가로 선정된 원학고가는 미리 예약하면 묵어갈 수 있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드림 베이비’를 꿈꾼다면 한번쯤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원학고가 외에도 주변에 ‘신종법·신진법·신인범 고택’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 채의 고택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집성촌인 덕분에 모두 가족인지라 담장이 낮다. 세월의 흔적만큼 이끼를 잔뜩 품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명당의 기운을 흡수해 보는 건 어떨까.




거창 수승대는 . 이곳은 여름 휴가철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피서지이다. 여기는 물도 맑고 깨끗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우거진 솔숲, 맑은 물이 항상 흐르는 개울, 개울바닥에 깔려있는 바위와 수마석(水磨石)이 탐이 나는 곳이다.

 수승대 관광단지 위치도

 

 해마다 여름철에 이곳에서 국제 연극제가 7월에서 8월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어 피서 철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수승대 관광지관리센터

 

요수선생장수지지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트레킹의 출발지는 수승대에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구연서원(龜淵書院)과 관수루(觀水樓)가 눈에 들어온다. 관수루(觀水樓)는 요수(樂水) 신권(愼權),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사림(士林)이 세운 구연서원(龜淵書院)의 문루로 영조 16년(1740년)에 건립하였다. 관수(觀水)란 <맹자>에 나오는 말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군자의 학문은 이와 같이 자기의 구석구석을 채워야 인격이 완성된다고 했다. 정말 관수(觀水)의 함의(含意)가 우리들에게 나아갈 지표를 말 해 주는 것 같다. 관수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구연서원(龜淵書院)이 보이고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비석이 학문의 연구와 지식의 오묘함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관수루

 

구연서원

 

산고수장(山高水長)비석 

관수루를 지나면 거북 모양의 특이한 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수승대(搜勝臺) 이다. 수승대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갈천(葛川)이 위천으로 모여 구연(龜淵)을 만들면서 빚어 놓은 거북 모양의 커다란 천연 바위 대(臺)이다. 대의 높이는 약 10m, 넓이는 약50 제곱m에 이르며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과 같아 구연대(龜淵臺) 또는 암귀대(岩龜臺)라고도 한다.

수승대- 구연대(龜淵臺)  암귀대(岩龜臺)

 

수승대(搜勝臺)는 옛날 백제의 국세(國勢)가 쇠약해져서 멸망할 무렵, 백제의 사신을 이 대에서 송별하고 돌아오지 못함을 슬퍼해 처음에는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1543년 이황선생이 거창을 지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고 수송과 수승이 소리가 비슷하므로 <수승(搜勝)>으로 고친다고 이른 한시에서 비롯됐다. 수송대 바위 둘레에는 이황 퇴계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다

암귀대

 

솔숲속의 요수정

 

퇴계(退溪) 이황이 갈천(葛川) 임훈(林薰)에게 아래와 같은 시를 지어 보내어 이름을 수승(搜勝)으로 바꾸었다. <퇴계집> 별집 1권에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다.

 

寄題搜勝臺 退溪 李 景 浩

 

搜勝名新煥(수승명신환) - 수승대로 대 이름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봉춘경익가) - 봄을 맞은 경치 더욱 좋으리.

遠林花欲動(원림화욕동) - 먼숲 꽃망울은 터지려 하고,

陰壑雪猶埋(음학설유매) -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하네.

未寓搜尋眼(미우수심안) - 좋은 경치와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唯增想像懷(유증상상회) -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네.

他年一尊酒(타년일존주) - 뒷날 한 동이 술을 가지고 와,

巨筆寫雲崖(거필사운애) -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라.

 

이에 갈천(葛川 ) 임훈(林薰 : 1500-1584)은 <갈천집) 제1권 <수송의 뜻을 풀어서 제군에게 보이다(解愁送意以示諸君)>라는 시를 지어 남겼다. 그는 이 시의 주에 “이 때 퇴계선생이 대(臺)의 이름을 수승대로 바꾸었기에, 이시를 지어 해명한다.”고 하였다. 시는 다음과 같다.

 

葛川 林薰

花滿江皐酒滿樽(화만강고주만준) - 강언덕에 가득한 꽃과 술동이에 가득한 술,

遊人連袂謾粉紛(유인연몌만분분) - 소맷자락 이어질 듯 흥에 취한 사람들이네.

春將暮處君將去(춘장모처군장거) - 저무는 봄빛 밟고 그대는 떠난다니,

不獨愁春愁送君(부독수춘수송군) - 가는 봄의 아쉬움 그대 보내는 시름에 비길까?

이 퇴계의 “寄題搜勝帶” 에 대한 요수(樂水) 신권(愼權)의 시

 

樂水 愼權

 

林壑皆增采(임학개증채) - 자연은 온갖 채색을 더해 가는데,

臺名肇錫佳(대명조석가) - 대의 이름을 아름답게 지어주시네.

勝日樽前値(승일준전치) -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愁雲筆底埋(수운필저매) - 구름 같은 근심을 붓 끝에 묻네.

深荷珍重敎(심하진중교) - 귀중한 가르침을 마음깊이 느끼지만,

殊絶恨望懷(수절한망회) -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매우 한스럽네.

行塵遙莫追(행진요막추) - 속세에 흔들리며 좇아가지않고,

獨倚老松崖(독의노송애) - 홀로 벼랑가의 노송에 의지하네.

 

요수정을 거쳐 숲길에 조성된 트레킹 로드를 따라 따라 올라간다. 귀에 들리는 것은 물소리, 숲에서 들리는 것은 새소리, 가끔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수승대 둘레길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하모니인 것이다.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개울물과 수림에 현옥(眩惑)되어 어느새 용암정(龍巖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북상면 갈계(葛溪) 숯에 도착했다.

 

 

갈계(葛溪)숲은 은진(恩津) 임시(林氏) 집성촌인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위취하고 있고, 중종(1540년) 때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목사(光州牧使)와 이조판서를 지낸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유적이 남아있고 그가 노닐던 숲으로 갈계숲과 갈계리라는 명칭 모두 임훈의 호인 갈천(葛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갈계숲

 

위천

 

갈계숲은 평균 높이 20여m 수령 200~300년 된 소나무, 물오리나무, 느릅나무로 이루어진 숲으로 면적이 약 2만 제곱m 에 이른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송계사계곡과 소청천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갈계마을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면서 자연섬을 형성시키는데 이곳에 아름다운 수목이 우거진 갈계숲이 있다. 숲에는 갈천(葛川) 임훈과 그의 형제들과 관련된 유적이 남아있다. 임훈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34년 숲속에 건립한 가선정(駕仙亭)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원래 이름은 임정(林亭)이었다고 한다.

가선정(駕仙亭)

 

또 하나의 정자는 임훈의 첫째 아우인 도계(道溪) 임영(林英)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도계정(道溪亭)이 있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와 같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병암정(屛巖亭)이라는 누정(樓亭)이 있다.

 

도계정(道溪亭) 

 

 

 

거창추어탕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 소재, 추어탕 전문점.                                                      

한식 >해물,생선요리


카테고리한식 > 해물,생선요리
연 락 처055-943-0302
홈페이지 입력된 정보없음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472-99
도로명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강남로 114 봉천식당
이용정보
  • 단체석
  • 신용카드
  • 주차
  • 포장
단체석 신용카드 주차 포장
영업시간

매일  AM 09:00 ~ PM 21:00 



맛집소개

경상도 거창식만의 특별한 노하우로 만든 전문 추어탕집이다. 거창식 추어탕은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여러 방송국에도 유명 맛집으로 소개되었고, 또한 전국화된 남원추어탕에 도전장을 내고 경상도 추어탕만의 맛을 전국에 소개하고 있다.

업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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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정보

  • 어탕라면 5,500원
  • 추어탕포장 5그릇 13,000원
  • 추어탕 5,000원
  • 언양식 불고기 2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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