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 참고자료 모음

[스크랩] 대구 종점투어 [매일신문]...15

최두호 2017. 11. 20. 17:46

[종점투어]   화원읍 본리
대구 외곽인 달성 논공과 고령 방면으로 운행하던 버스들은 2006년 노선 개편 이후 모두 '달성2번'에 통합됐다. 때문에 달성2번은 대구 남구의 서부정류장을 출발점으로 논공·신당리·노이동·본리2동·용연사·가야대(고령) 등 6곳의 종점으로 나눠 운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신당리행이 하루 21회로 가장 많고 노이동(논공) 7회, 용연사(옥포) 9회, 본리1동 11회, 본리2동(본리1동 경유) 6회순으로 운행된다. 지하철1호선 대명·성당못·송현·월촌·상인·월배·진천·대곡역과 연계 된다.

이번 주 종점투어는 달성2번 중에서도 본리1동을 종점으로 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종점 바로 뒤편에 조선후기 전통 양반가옥의 틀이 잘 보존되고 있는 남평문씨세거지와 맞은편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인흥서원이 있고 비슬산자락 안쪽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본리2동 마비정마을이 가깝기 때문이다.

화원읍 본리1동의 남평문씨세거지는 본래 삼국유사 저자인 일연선사의 건의로 사액, 개칭된 인흥사 절터였다. 이를 목화씨를 들여온 충선공 문익점의 18대손인 인산재 문경호가 1840년을 전후로 당시의 정전법에 따라 집터와 농경지를 구획정리하며 터를 잡은 곳.

계획된 마을답게 야트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단아한 한옥들이 정겨운 흙돌담을 경계삼아 자리한 세거지는 수봉정사·인수문고·광거당 등 한 울에 지어진 주요건물을 중심으로 70여 채의 전통기와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특히 모임장소로 쓰였던 수봉정사는 솟을대문에 거북모양의 빗장이 이색적인 목조건축물로 난간이 딸린 툇마루와 누마루의 조형미가 양반 기와집의 운치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옆의 인수문고엔 국내에서는 드물게 문중문고 수 만권을 소장하고 있고 마을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면 재실이면서 옛 문인들의 강론장소로 애용됐던 ㄱ자형태의 광거당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광거당 가는 길. 수봉정사 옆엔 수령 300년의 노거수이며 ‘문경호나무’라고 이름 지어진 희화나무가 푸른 이끼를 한 겹 껴입고 턱하니 버티고 있고 그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 안쪽으로 양쪽의 토담길이 정겹게 맞이한다. 겨울햇살을 받아 따뜻한 토담길을 막 벗어난 곳에선 금줄이 쳐져 있고 문화재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세거지를 나와 개울을 건너면 인흥서원을 만난다. 인흥서원은 고려 고종부터 충숙왕에 걸쳐 민부상서 예문관제학을 지낸 추계추씨(秋溪秋氏)의 시조이며 고려 말기의 문신인 노당(露堂)추적(秋適·1246~1317)의 위패를 봉안한 곳. 낮은 산자락에 동쪽을 향한 인흥서원은 전면 5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한 강당과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사당인 문현사와 동재·서재·외삼문인 숭봉문를 비롯해 서원 앞의 신도비각 등 5동의 소박한 건물로 서원철폐령의 화를 피해 창건 당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이 곳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명심보감판본 31매가 소장돼 있다.

서원 쪽에서 본 남평문씨세거지는 지형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세거지와 주변의 잘 구획돼 있지만 겨울철이라 들녘이 계절의 허허로움으로 가슴 속을 파고든다.

내친 김에 본리2동으로 가봤다. 2차선 아스팔트길이 비슬산 능선을 향해 뻗어있는 이 길은 자전거 하이킹에 나선 사람들과 청정미나리·표고버섯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와 만나게 된다. 길은 본리2동 마비정 마을에서 끊겨 있다.

비탈진 산자락에 자리한 마비정 마을은 현대식 양옥과 흙벽집이 혼재된 자연부락이다. 마을 안길은 마치 등산로처럼 가파르다. 낯선 사람이 마을 안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개들이 일제히 짖어댄다. 그 소리에 나온 주민 석윤수(69)씨에 따르면 마비정 마을은 현재 35가구가 거주한다. 6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석씨는 이전엔 70여 가구가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가리키는 골목 한 켠엔 ‘개발제한구역’이라고 쓰인 작은 녹색 푯말이 깊이 박혀 있다.

본리1동에서 볼 땐 먼 비슬산 자락이 마비정 마을에선 바로 코앞에 와 닿아 있다. 마을의 뒷 산자락 하나만 넘으면 비슬산휴양림이다. 마을의 가장 높은 지대에 이르자 비슬산 자락과 시리토록 파란 겨울 하늘, 마을이 삼위일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평선 가까이엔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명곡지구의 고층아파트가 시야를 가린다.

초가지붕이 아닌 콘크리트로 급조한 소외양간에선 송아지가 딸린 소가 긴 울음을 뽑아내고 시끄럽게 짖어대는 어미 개들 소리에 놀라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문밖 나들이에 나서는 풍경을 간직한 마비정 마을은 분명 대구의 이색지대임에 틀림없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