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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 대간길이란??

최두호 2017. 11. 20. 17:25

   *.산은 생명체의 근간인 물의 산지  

 

  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모든 나라에 있으나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땅의 산을 바라보는 산관(山觀)은 각기

다르다.

 생활의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정복의 대상으로, 또 뒷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라면 공

포의  대상 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의 산은 예부터 낳는(始와開)산이었다. 가락국의 수로왕이 구지봉에서 나오고, 신라 육촌의 촌주들

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으며, 단군이 내려온 신단수도 산이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인 자식의  점지를 산에서 얻어왔다.  우리 모두도 결국 산에 빌어 낳은 자식들의 후예인 셈이다. 곧

우리의 산은 잉태하여  새롭게 시작하고 여는(開) 곳이다.

  우리의 산은 삶과 정신(生과精)의 산이다. 의식주의 모두를 산에 묶어 두고 살아온 우리다. 세 칸짜리

집을 지어도 들 한가운데가 아닌 한 뼘 산이라도 그 산에 의지하듯 등지고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평안함을  느낀  우리네다. 어린이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산부터 그리듯이 이 땅의 멋이라는 것과 가락

이라는 것 모두 가 산과 더 불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식을 쌓으러, 고시공부하러도 산으로 가고, 머리

아픈 사람들도 산을 찾는다.  해서 상상과 여유를 얻어온다. 각급 학교의 교가에 그 지역 산이 빠지면 기

가 없어 보인다.

  우리의 산은 쉬(死와輪)는 곳이다. 요즘이야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등산하고 온 것이겠거니 하지만, 얼

마 전까 지만 해도 들에 있는 산소에 갔다 오고도 산에 갔다 왔다고 했다. 우리는 영원한 쉼터를 산에 마

련하고 환생을  기다린다. 우리의 산은 저만치 홀로 있는 산이 아니었다.늘 사람과 더불어 살고 살아오고

있다. 눈을 뜨면 산이  보여야 안심하고 안식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우리들이다.   결국 우리는 산이 없

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귀결 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사상에서도 들(野)

은 땅(地)이 아닌 산의 일부분이라 는 것이  고래의 인식이다.

  산은 정상을 뜻하지 않는다. 남산의 철책 속만이 남산이라는 생각은 현대가 낳은 지극히 짧은 소견이

다.

  청계천을 건너면 남산골로 접어들었던 산이 점차 그 소임을 박탈당한 것이다.

우리 옛 산의 개념, 즉 『산경표』에서 이르는 우리 산의 개념은 그 산자락 앞의 들까지를 포용한 하나의

 

 덩치를 두고 어느 곳이든지 그 산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래서 결코 정복의 대상일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정신을 살찌우면 되는 산이었다. 산줄기의 연결, 즉 대

간과 그에서 뻗은 모든 정간은 물뿌리(水分岐)로서 모든 생명체의 시작인 물의 산지라는 인식이었다.

 

 

    @. 백두대간이란?

 

 우리의 전통 지리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백두대간은 이 땅을

동과 서로  크게 갈라 놓은 산줄기의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산줄기는 각각 1개의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인식되었다. 백두산

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

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 이는 '산자분  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 따라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이라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 초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어 왔으며, 18세기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의 영향을 받은

이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이후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심

혈을 기울여 완성한   <대동여지도>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지도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 이르러 서쪽으

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 이 땅을 대륙과 이어주는 뿌리이자 줄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총 길이는 1625여km이며, 백두산과 지리산의 사이에 북쪽의 2000m급 고봉들과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품고 있다.(우리가 배웠고 우리의 자손들이 배우고 있는 지리 지식에 따르면 마천령

산맥 일부-함경산맥   일부-낭림산맥 일부-태백산맥 일부-소백산맥 일부를 잇는 선에 해당) 이 가운데

남한 구간은 지리산에서 향로봉 까지 약 690km에 이른다.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어 각지의 언어, 습관,

풍속 등 과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록한 조선시대의 행정경계가 되었으며, 현대

에 이르러서도 자연 스러운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

고 지리를 밝히는 근본이 된다.

 현재 백두대간의 남한 구간은 1990년대초부터 일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열기로 대부분이 답사가 되

어 많은 자료들이 쌓여 가고 있다. 학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간에는 1326종 식물과 희귀 야생동물들의

살고 있어서 꼭 보존해 야 할 생태계의 보고라 한다.

   이렇게 쌓인 자료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여러 환경 단체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정부 부처(환경부, 건설

부 등)에서도 생태의 보존과 보호에 우선적인 배려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

한 상황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이 백두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분단의 장벽으로 인해 북한 쪽의 구간을 답사할 수

없는 안타까 움은 너무도 크다.

『산경표』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설과 

1800년대  초기에 어떤 이가 여암 신경준이 지은 책을 참고로 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습니

다. 최근 『한글 산경 표』를 펴낸 이에 따르면 "『산경표』는 1770년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중 신경

준이 집필한 「여지고」의  <산천>을 보고 누군가 편찬한 것이며 그 시기는 1800년 이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백두 대간 !!???    

  1. 백두 대간 이란 ??

  2. 백두 대간이란 무엇인가 ?

  3. 백두 대간 구간별 지도

  4. 백두 대간의 산경도와 산맥도

  5. 1대간 1정맥 13정맥이 지나는 지역들

  6. 수계 파악의 근간으로본 산맥 접근

  7. 산~! 생명과 물의 산지

  8. 백두 대간의 지명 및 특이점

9. 정간과 13정맥들

    ① 장백정간  ② 낙남정맥  ③ 청북정맥  ④ 청남정맥  ⑤ 해서정맥  ⑥ 임진북예 성남정맥

    ⑦ 한북정맥  ⑧ 낙동정맥  ⑨ 한남금북정맥  ⑩ 한남정맥  ⑪ 금북정맥  ⑫ 금남호남정맥  

    ⑬ 금남정맥  ⑭ 호남정맥

10. 백두 대간의 큰 분기점 및 고갯길

   왕시루봉 - 지리산 천왕봉 - 노고단 - 성삼재 - 고남산 - 남덕유산 - 질매재 - 백학산 -

  대야산 - 저수재 - 선달재 - 피재 - 두타산 - 공룡능선 - 선자령 - 단목령 - 향로봉

         

<<백두 대간의 지리적 사실>>

     (1) 능선에는 물이 없다  

     (2) 계곡은 물길 머리에서 있는 능선보다 반드시 더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3) 두 능선 사이에는 반드시 하나의 계곡이 있다.  또한 두 계곡 사이에는 언제나 능선이 하나있다

     (4) 물기은 끊기는 법이 없이 이어져 흐른다

 

<<백두 대간의 인문적 사실>>

     (1) 능선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2) 사람은 물가에 산다.  물길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백두대간 주요 지명 정리 및 특이점

 

성삼재

만복대

정령치휴게소

고리봉

고기리 마을

수정봉(임망치)

 

 

20분소요

은성초교에서

 

잡목지,마을식수

여원재

장동마을

고남산

통안재

매요리

지리산휴게소

남원24번국도

 

 

 

 

쌀,연료없음

사치재

복성이재(치재)

봉화산정상

야영터

광대치능선

중재

 

식수

철쭉남원/장수경계

 

 

식수충원

백운산(무령고개)

영취산(민령)

깃대봉

육십령휴게소

할미봉

장수덕유산

 

 

이후길좋음

첫지원함

 

아래참샘(월성재)

삿갓골대피소

지봉

빼재

소사마을(고개)

대덕산휴게소

부항령

무룡산-동엽령)

 

삼봉산

 

 

 

 삼도봉

밀목재

석기봉

물한계곡

화주봉

우두령

 밀목재1시간

 

 

 식수

 

 

 바람재

황악산

여시골산

계(궤)방령

가성산

장군봉

 황악산까지급경사

 

심한내리막길

식수

 

 

 눌의산

추풍령

작점고개

큰재(백학산)

윗왕실재

지기재

 

 사기점고개

원두막(용문산/국수봉)

인성분교옆길로진입

잡목지대(개머리재)

 

 신의터재

화동중고

화령재

봉황산

비재(비조재)

못재(제)

 

 

대간길찾기어려움

 

 

 갈령삼거리

형제봉

(피앗재)천황봉

밤티재

아랫늘티

개구멍바위

늘재(늘티)

중간에샘터(할매바위)

 

 

30분거리에마을

배낭분리후통과

청화산난코스

청화산

조항산-고모치

통시바위

집채바위

밀재

대야산

갓바위재-의상저수지

 

 

오른쪽계곡아래식수

 

 

 춧대봉

곰넘이재

버리기재

악휘봉전

악휘봉갈림길

은치재

 

 

 

 

 

식수

구왕봉

지름티재

희양산

평전치

백화산

이화령

급경사구간(지름티재)

 

 

 

 

 

조령샘

조령산

치마바위

조령3관문

마패봉

하늘재

 

고 지현옥

넘지말고우측으로

마패봉으로1간

 

 

포암산

대미산(눈물샘)

차갓재

황장(정)산

벌재

저수재

 

 

 

 

 

 

너럭바위

싸리재

도솔봉

죽령오름

소백산

비로봉

 

 

독도법주의

길환상적

 

 

고치령

마구령

선달산

박달령

옥돌봉

도래기재

 

 

 

 

옥설산이옳음

길좋음

구룡산

신성봉

부소봉

태백산

화방재

유일사

 

 

 

 

 

식수

수리봉

만항재

만항재

싸리재

중함백

비단봉

잡목지대

 

평지길

 

 

밭지대

매봉산

피재

건의령

덕항산

자재암

광동댐이주단지

산이없어질위험

매봉산30분소요됨

송충이많음

잡목지대

10분거리에샘,물풍부

 

큰재

댓재

두타산(남자산)

청옥산(청옥산)

연칠성령

고적대

 

멋진길

 

식수(샘터)

 

 

이기령원방재

상월산

원방재

백보령(백봉령)

자병산

생계령

지긋한잡목지대

 

 

부식없고간단한간식

폭발위험무시

표지판주의

석병산

삽(삼)당령

석두봉

닭목재

고루포기산

능경봉

 

동동주맛좋음

멋진길

 

 

 

대관령

국사서낭당

선자령

곤신봉

매봉

소황병산

 

 

 

 

 

 

진고개산장

동대산

두루봉

신배령

약수산

구룡령

겨울만폐쇄

 

원시림

 

 

진드기조심

갈전곡봉

병지거리

아침가리

명지거리

쇠나르리

조침령

 

 

 

 

 

마을에서식수,심한잡목

북암령

단목령

점봉산

망대암산

한계령

귀떼기청봉

 

 

 

큰암능통과

 

 

중청봉

대청봉

희운각대피소

공룡능선

마등령

너덜지대

 

 

 

 

 

상습안개지역

저항령

미시령

상봉

신성봉

대관령

마산

 

속초앞바다

 

 

 

 

진부령

 

 

 

 

 

 

 

 

 

 

 

 

 

 

 @.수계 파악의 근간으로 산맥 접근  

  

  이와 같은 산경원리 개념이 고래로 전하여진 풍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풍수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다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하지만, 삼국의 풍수는 풍수라는 표기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개념의 사상으

로 변모되어 있다. 한반도의 지세는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뻗었다는 도선의 풍수설, 즉 도선비기(道詵秘

記) 이론은 지형지세는 국가와 개인의 길흉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 고려의 정치사

회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수세기 동안 이 나라 지리학을 지배했다.

  공익을 우선한 이 설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즉 길지와 명당의 소유욕으로 특권

계급의 영욕의 도구로 타락해 버렸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대변하는 지리사상으로도 정착해 자연히 후기

조선시대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산경은 전 국토를 대상으로 자연지리에 바탕을 두고 지형지세

를 과학적으로 정립했다는 의미에서 실학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고려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오악, 십이종산, 외명산, 사명산 등으로 알려져 온 명산들이 있으나

이 가운데 팔도 산맥의 종산이 된다는 십이종산(삼각, 백두, 원, 낭림, 두류, 금강, 오대, 태백, 속리, 장

안, 지리)의 산들이 간․정맥의 선상에 있을 뿐 실제로 산경의 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보여 주고

다. 다만 지형지세로 이루어진 수분기(水分岐) 중심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로써 조선시대의 산맥, 즉 산경을 정리하면,

 1) 대간, 정맥의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비롯된다. 이 땅의 근골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

지의 백두 대간으로서 모든 수계를 크게 동서로 양분한다.

 

 2)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 쳐 나온 이차적인 산줄기로서 큰 강의 유역능선, 즉 분수능선이다. 따라서 정

맥은 산줄기의  높이, 규모, 또는 명산, 종산, 진산 등과 관계하지 않고 아무리 낮고 미약한 김포평야의

낮은 구릉이라도 한강의 남쪽 유역을 가르는 능선이므로 중요한 한남정맥의 줄기가 되는 것이다. 정맥들

로 형성된 강은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이다.

 

  3) 기맥은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간과 정맥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서 내(川)를 이루는 분수릉이다.

이와 같은 산경의 개념은 현대의 산맥개념과는 달리 모든 산줄기는 강, 즉 물줄기를 건너뛰어 연결될 수

없고, 산줄기의 시작과 끝남의 지점이 명확하다. 따라서 정맥의 시작은 특정한 산이고, 그 끝남은 강 하

구의 해안선까지 연결되어 있다. 산경은 수계를 경계하는 능선이므로 전국토의 지세지형을 보다 쉽게 이

해할 수 있다. 이로써 수계 중심으로 발달된 이 땅의 도시형성과 관계되는 유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분하여 골(谷)까지의 수계 파악도 쉽게 하여 당시 해안에서 내륙 깊은 곳까지 조운(漕運) 영

역도 쉽게 가름할 수 있었다.

 

 일인(日人) 고토의 지질구조론적 산맥관 ( 참고 : 고토 분지로와 '조선산악론')

  현재 우리가 배워온 산맥의 이름들은 장백, 마천령,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구조곡), 광주, 차령, 소백, 노령 등이다.

  산맥을 『국어사전』(현민사간)에서는 '여러 산들이 잇달아 길게 뻗치어 줄기를 이룬 지대'라고 정의하

고 있고, 『지형학사전』(일본 니노미야 서점)에서는 '산지가 선상으로 길게 연속되어 있을 경우, 이것을

산맥이라 한다. 산맥은 하나의 산계 가운데 동일한 원인으로 형성되어 공통된 형성사를 갖는다.'라고 정

의하고 있다. 앞의 것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술회한 정도이고, 뒤의 것은 지질학적인 의미가 담

겨 전문적이다.

  현재의 한반도의 산맥과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朗)에 의해서

였다. 고토는 1900년과 1902년 두 차례에 걸쳐 14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지질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1903년 동경대학기요(東京大學紀要)에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조선산악론)'이라는 논문과

지질구조도(1:2,000,000)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반도의 지질과 지형연구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

가되고 있으나, 이 일본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합방 이후 감행한 수탈의 기초조사였다.

 

 현재의 산맥은 일반 상식적인 산맥과는 달리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이것들의 삼차

원적인 배치를 기본선으로 하고 있다. 즉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광주

산맥이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작되어 북한강 서쪽으로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관악산과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차령산맥은 설악산과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되어 남한강을 건너 금

강 하류를 끼고 돌아 대천 뒤쪽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예는 다른 산맥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자연히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

다. 이것은 산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땅 위의 어떤 선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하고 있

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리학과 지질학은 현대과학으로 그 구분이 명확함에도 우리는 1세기

전의 전근대적인 산맥개념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일본은 지질구조 개념의 산맥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꾼지 이미 오래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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