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모든 나라에 있으나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땅의 산을 바라보는 산관(山觀)은 각기 다르다. 생활의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정복의 대상으로, 또 뒷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라면 공 포의 대상 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의 산은 예부터 낳는(始와開)산이었다. 가락국의 수로왕이 구지봉에서 나오고, 신라 육촌의 촌주들 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으며, 단군이 내려온 신단수도 산이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인 자식의 점지를 산에서 얻어왔다. 우리 모두도 결국 산에 빌어 낳은 자식들의 후예인 셈이다. 곧 우리의 산은 잉태하여 새롭게 시작하고 여는(開) 곳이다. 우리의 산은 삶과 정신(生과精)의 산이다. 의식주의 모두를 산에 묶어 두고 살아온 우리다. 세 칸짜리 집을 지어도 들 한가운데가 아닌 한 뼘 산이라도 그 산에 의지하듯 등지고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평안함을 느낀 우리네다. 어린이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산부터 그리듯이 이 땅의 멋이라는 것과 가락 이라는 것 모두 가 산과 더 불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식을 쌓으러, 고시공부하러도 산으로 가고, 머리 아픈 사람들도 산을 찾는다. 해서 상상과 여유를 얻어온다. 각급 학교의 교가에 그 지역 산이 빠지면 기 가 없어 보인다. 우리의 산은 쉬(死와輪)는 곳이다. 요즘이야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등산하고 온 것이겠거니 하지만, 얼 마 전까 지만 해도 들에 있는 산소에 갔다 오고도 산에 갔다 왔다고 했다. 우리는 영원한 쉼터를 산에 마 련하고 환생을 기다린다. 우리의 산은 저만치 홀로 있는 산이 아니었다.늘 사람과 더불어 살고 살아오고 있다. 눈을 뜨면 산이 보여야 안심하고 안식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우리들이다. 결국 우리는 산이 없 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귀결 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사상에서도 들(野) 은 땅(地)이 아닌 산의 일부분이라 는 것이 고래의 인식이다. 산은 정상을 뜻하지 않는다. 남산의 철책 속만이 남산이라는 생각은 현대가 낳은 지극히 짧은 소견이 다. 청계천을 건너면 남산골로 접어들었던 산이 점차 그 소임을 박탈당한 것이다. 우리 옛 산의 개념, 즉 『산경표』에서 이르는 우리 산의 개념은 그 산자락 앞의 들까지를 포용한 하나의
덩치를 두고 어느 곳이든지 그 산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래서 결코 정복의 대상일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정신을 살찌우면 되는 산이었다. 산줄기의 연결, 즉 대 간과 그에서 뻗은 모든 정간은 물뿌리(水分岐)로서 모든 생명체의 시작인 물의 산지라는 인식이었다.
@. 백두대간이란?
우리의 전통 지리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백두대간은 이 땅을 동과 서로 크게 갈라 놓은 산줄기의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산줄기는 각각 1개의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인식되었다. 백두산 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 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 이는 '산자분 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 따라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이라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 초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어 왔으며, 18세기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의 영향을 받은 이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이후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심 혈을 기울여 완성한 <대동여지도>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지도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 이르러 서쪽으 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 이 땅을 대륙과 이어주는 뿌리이자 줄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총 길이는 1625여km이며, 백두산과 지리산의 사이에 북쪽의 2000m급 고봉들과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품고 있다.(우리가 배웠고 우리의 자손들이 배우고 있는 지리 지식에 따르면 마천령 산맥 일부-함경산맥 일부-낭림산맥 일부-태백산맥 일부-소백산맥 일부를 잇는 선에 해당) 이 가운데 남한 구간은 지리산에서 향로봉 까지 약 690km에 이른다.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어 각지의 언어, 습관, 풍속 등 과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록한 조선시대의 행정경계가 되었으며, 현대 에 이르러서도 자연 스러운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 하고 지리를 밝히는 근본이 된다. 현재 백두대간의 남한 구간은 1990년대초부터 일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열기로 대부분이 답사가 되 어 많은 자료들이 쌓여 가고 있다. 학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간에는 1326종 식물과 희귀 야생동물들의 살고 있어서 꼭 보존해 야 할 생태계의 보고라 한다. 이렇게 쌓인 자료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여러 환경 단체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정부 부처(환경부, 건설 부 등)에서도 생태의 보존과 보호에 우선적인 배려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 한 상황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이 백두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분단의 장벽으로 인해 북한 쪽의 구간을 답사할 수 없는 안타까 움은 너무도 크다. 『산경표』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설과 1800년대 초기에 어떤 이가 여암 신경준이 지은 책을 참고로 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습니 다. 최근 『한글 산경 표』를 펴낸 이에 따르면 "『산경표』는 1770년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중 신경 준이 집필한 「여지고」의 <산천>을 보고 누군가 편찬한 것이며 그 시기는 1800년 이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백두 대간의 지리적 사실>> (1) 능선에는 물이 없다 (2) 계곡은 물길 머리에서 있는 능선보다 반드시 더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3) 두 능선 사이에는 반드시 하나의 계곡이 있다. 또한 두 계곡 사이에는 언제나 능선이 하나있다 (4) 물기은 끊기는 법이 없이 이어져 흐른다
<<백두 대간의 인문적 사실>> (1) 능선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2) 사람은 물가에 산다. 물길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
@.백두대간 주요 지명 정리 및 특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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