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가 있고,전(傳)이 있어서 관심을 불러 일어키는 곳.
그 발자취를 따라 걷노라면 수더분한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곳.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 가만히 바다가 속삭인다.
“나 예전부터 이 자리에 이대로 서 있었는 걸요.”
그랬다.
☞ (사)걷고싶은부산에서 그들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잊혀진 채로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렇게 부름을 받아 김춘수님의 싯귀처럼 꽃이 되어 나타났다.
바닷길로,벼랑길로,또 산길로,그러다가 막히면 매연 내품는 포장도로로 끊어질 듯 이어져 갔다.
길은 언제나 그렇게 이어졌다.
옛사람들에겐 생존의 길이자 기원의 길이였고 산짐승들에겐 먹잇길이였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힐링의 길로 탈바꿈을 하고만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갖게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지평을 바라보며 이야기속을 유영하듯 몰입해 들어갔다.
길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이름을 외울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갈맷길이면 어떻고,해파랑길이면 또 어떠하며,무슨무슨 해안길이면 어떠하랴.
29어울림 친구들과 미포에서 동해남부선 폐철로를 따라 용궁사까지 걷고난 후 시간이 없어 시랑대를 들리지 못한 것이 눈에 밟혀 설 연휴기간에 아내와 함께 찾아 나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하였으나 늦게 출발하면서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었고...
이동하면서 달맞이길의 해마루를 찾았다.
..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오면 만나는 팔각정자가 해마루.
해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아래는 청사포). 그리고는 서둘러 차량이동을 한다.
지난번 지나갔던 죽도공원(송정공원)에 차를 대놓고...
죽도공원을 오른다.
갈맷길 안내판이 있고...
송정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갈매기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뒤로 돌아가니...
돌출된 바위에 팔각정자가 있다.
송일정이다.
송일정 아래의 바위섬.
갈맷길 전체구간은 예전엔 군의 작전과 경계구역이였다. 사십여 년 전에 나도 이 지역(미포-청사포)의 해안경계를 서면서 군생활을 하였다.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스쳐갔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느긋하게 걸어볼 심산으로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이다.
돌아본 죽도공원.
진행방향 우측으로 시랑산이 보인다. 지난번에는 왼쪽 절개된 산허리를 바로 올라갔지만 이번엔 우측의 해안을 따라 시랑대와 용궁사를 갈 계획이다.
하여튼 바다를 바짝 붙어서 돌아가면...
갈맷길 리본이 촘촘이 붙어 길안내를 하고 있다.
우측 해안으론 낚시꾼들이 구석구석 진을 치고 있다.
비가 온다고 하였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조망좋은 곳에서 가져온 막걸리로 목도 축이고...
빠뜨릴 뻔한 해안길을 행복하게 걷는다. (幸福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어디에서 본 듯...)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던 초소를 지나...
먹이를 찾아 걸어갔을 산짐승들의 길을...
오래간만에 함께한 아내와 둘이서 느긋하게 걸었다.
해안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는데,저 앞에 시랑대가 보인다. (돌탑이 보이는 저곳이 시랑대이고 그 너머에 용궁사가 있다.)
임도급 길은 군부대가 주둔할 때 다녔던 길.
작은 안내판이 있는 용궁사의 담벼락이 나타나면 담벼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작은 안내판.
조금 내려가면 다시 안내판이 서 있다.
용궁사 담벼락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시랑대라고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벽해변석애(碧海邊石崖: 푸른 바다 바위벼랑에...)
석상일주송(石上一株松: 바위 위의 소나무 한그루)
시랑대(侍郞臺)는 지금의 내무부 국장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이조참의 권적(영조9년/1733)이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자 해안절경이 빼어난 원앙대에 매료되어 낙향의 아픔을 달랬던 곳.
좌천된 사유인즉 암행어사 박문수의 호남관찰사 임명을 반대하다가 영조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뒤틀린 심사를 달래기 위하여 공무는 제쳐두고 친구와 더불어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때웠다는 이야기.
이후로 권적(1675-1756)의 옛날 벼슬을 따 원앙대를 시랑대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는 또 이러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시랑대의 본래 이름은 원앙대(鴛鴦臺)였다.
마을 사람이 원앙대 아래 해룡단(海龍壇)에서 미랑스님과 함께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
기우제가 끝난 후 사람들은 제각각 돌아가고 미랑스님 혼자 원앙대에 앉아 사랑을 나누는 쌍쌍의 원앙새를 보고 있었다..
그때 동굴 아래에서 아름다운 동해 용왕의 공주인 용녀(龍女)가 나타났다.
용녀공주는 원앙대로 올라 달빛에 젖은 겹겹의 옷가지를 벗고 미랑스님과 반석 위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다.
미랑스님의 씨앗을 잉태한 용녀가 용왕의 눈을 피해 해산을 하려하자 이 사실을 안 용왕이 크게 노하여 산더미 같은 노도(怒濤)를 일으켰다.
파도에 휩쓸린 용녀를 하늘의 옥황상제가 가엾게 여겨 아기와 용녀를 천상으로 구해 올려 천상의 옥녀로 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파도가 치는 날이면 미랑스님이 애절하게 용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시랑대의 경치가 얼마나 절경을 이루었으면 멀리 중국에서도 해동국(海東國) 조선의 시랑대를 못보고 죽으면 한이 된다고 했다지 않은가?
고종 31년(1894) 기장군수 홍문관 교리 손경현(孫庚鉉)이 이곳에 놀러와서 ‘학사암(學士0)’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시랑대의 본래 이름은 원앙대(鴛鴦臺)였다. 기장현읍지도 기장군군지도 원앙대라 적고 있다.
조선시대의 참의 벼슬은 고려시대의 시랑(侍郞)벼슬이라, 주위 선비들은 고려 때의 벼슬 시랑을 이끌어 들여 권적을 '권시랑'이라 하고 '미랑대'라고도 한
대(臺)를 시랑대라 했다.
또한 원앙이 까마귀떼처럼 무리지어 날았다고 비오포(飛烏浦)라고도 불렸다.
귀양살이라 하지만 오히려
신선이 노는 봉래산을 가까이 두고 있다.
이 사람은 이조참의로 지내다가 여기에 왔노라.
시랑대란 석자를 푸른 바위에 새겨
천추의 긴 세월동안 남아 있게 하리라.
(謫居猫得近蓬萊 人自天曹二席來
三字丹書明翠壁 千秋留作侍郞臺)
권적의 시 외에도 숱한 시인 묵객들의 시들이 각자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훼손되어버리고 이렇게 달랑 두 문(文)이 남아있다.
또한 월천선생(新澳, 1714~1786)은『시랑대기』에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여 마치 긴 칼을 세운 듯,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절경......
높아진 파도는 암벽을 천갈래 만갈래 솟아 흐르면서 분수가 되어 옥처럼 반짝인다”고 감탄하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시랑대 동북쪽에 있는 기우암(祈雨岩)에서는 가뭄 때에 기우제(祈雨祭)를, 그 북쪽 바위에 각자(刻字)되어 있는 ‘제룡단(祭龍壇)’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豊漁祭)를 올렸다고 한다.
시랑대 아래 돌탑이 있는 위치에서 바로 아래에 있는 용궁사를 바라보지만 담벼락이 쳐져있어 바로 갈 수는 없다.
용궁사는 언제나 참배객과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다시 올라와 담벼락을 따라 가다가 좌측 산길로 올라 붙어야 한다.
왼쪽에 보이는 철문이 항상 잠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로 올라 이렇게 계단길로 내려오게 된다.
다시 들른 용궁사 대웅보전.
용궁사를 빠져나와...
일출암과...
제용단이 있는 곳에서...
국립수산과학원이 보이는 빨간 다리를 건너간다.
수산과학관은 휴관이고...
갈맷길 1코스가 안내되어 있다.
돌아본 용궁사.(사진 좌측의 돌탑 세개가 있는 위치가 시랑대가 있는 곳.)
우측으로 바다를 끼고 걷는다.
동암항을 지나서는...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고 또 막걸리도 한 잔하고...
울고 싶어도/못 우는 너를 위해/내가 대신 울어줄게/마음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네가 그토록/사랑하고 사랑받은/모든 기억들/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내가 대신 노래해줄게/일상이 메마르고/무디어질 땐/새로움의 포말로/무작정 달려올게”
(이해인 ‘바다의 말’)
오랑대(五郞臺)를 만난다.
전(傳)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옛날 기장으로 유배온 친구를 찾아온 선비 다섯 명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주(詩酒)를 나누며 춤을 추고 놀던 곳.'이라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해광사의 부속시설인 용왕당이다.
용왕으로 상징되는 대상 뒤로 바다가 펼쳐보인다.
무속신앙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땅에 불교가 전파될 때 민초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토속신앙을 다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기도하는 뒤에서 카메라를 갖다 대기가 뭣해서 급히 돌아선다.
오른쪽의 민두름한 산은 남산봉수대가 있는 봉대산(228.2m). * 기장에는 기장7경인'아이봉수대'와 봉대산(129.2m)이 월내에 또 있다.
돌아본 오랑대.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곳이다.
젖병등대와...
무슨 장난감 태권V를 형상화한 등대와 축구공과 월드컵이 그려지는 등대가 있는 지점을 지나...
죽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지만 '죽도는 패스'다.
대변이 보이는 이 지점에서 잠깐 앉아 쉬었다가...
자세한 해파랑길 2-4구간의 안내도를 살펴보고...
자세히...
도로변의 대변초등학교의 잠겨진 교문 옆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다.
안내문과...
대원군 척화비.
가덕도의 척화비에 비하여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이를 온 백성에게 일깨워 주고자 전국의 중요 지역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비는 네모나게 깎은 돌의 모서리를 자른 간단한 형태이다. 비에는 굵은 글씨로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그 옆에도 작은 글씨를 새겼는데. 내용은 “자손만대에 경고한다.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운다.”이다. 척화비는 고종 8년(1871) 전국 각지에 세웠다가, 고종 19년(1882)의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이어 개항을 맞게 되자 대부분이 철거되고 이처럼 몇기의 비들만 곳곳에 남아 있다.<자료인용>
모든 척화비(斥和碑)는 내용이 똑같다.
비석에 새긴 글자는 모두 24자. 큰 글자도 12자이고 작은 글자도 12자이다.
큰 글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이고 작은 글자는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이다.
큰 글자 뜻을 두세 마디 요즘 말로 압축하자면 외국과 섞이지 말라는 것. 쇄국정책을 편 절대권력 대원군의 뚝심이 척화비다.
오래전에 촬영되었다는 영화 '친구'의 촬영지를 지나고...
임란공신 의병장 김산수 김득복 장군 부자묘를 지나...
월전마을에 당도한다.
그 새 아내는 욕심만 가득한 지아비를 따라 불만을 꾹꾹 삭이며 여기까지 군말없이 동행하였지만 이제 신발을 벗어버린다.
그래. 여행은 여기까지다. 일단 자동차부터 회수하고 보자.
저물어 가는 월전(月田)마을을 돌아본다.
월전은 달밭
마음이 밭이라면
달뜬 마음이 월전이다
월전에 가 보라
바다 가장 가까운 언덕
파도소리 스며드는 언덕에서
마음에 뜬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랑에 빠졌거나
빠질 것 같은 사람들
차가운 날도
물 속은 따뜻하듯
차갑고 시린 사랑도
그 속은 따뜻하려니 <하략>
-동길산 詩 '월전등대'-
기장 6번 마을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갔지만 버스 두 대 중 한 대가 고장이 나 거의 한시간마다 다니고 있다.
그래서 먼저 밥부터 먹자고 하였다.
연휴를 맞아 나들이 차량으로 붐비는 월전마을은 장어(붕장어)구이가 특산물이어서 장어축제도 열리는 곳이다.
포장마차형 가게들이 줄지어 선 풍경과 가게들마다 호객꾼들이 한 사람씩 나와 호객행위를 해대는 덴 생동감있어 뵈지만 그건 아니올씨다이다.
횟집으로 들어갔다.기장에 오면 우리는 추억의 '아나구회'를 먹고 싶었기 때문.
그러나 손님이 넘쳐나는 오늘은 붕장어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너무 바쁘기 때문이리라.
하는 수 없이 모듬회를 시켜서 실컷 먹고난 뒤에야 이렇게 포스팅.ㅋㅋ.
이제 배도 부르겠땅 천천히 나가자.
6번 마을버스는 기사도 친절하였지만 함께 탄 승객도 친절하여 송정 갈려면 '기장성당 정류소'에서 갈아타라고 한다.
기장성당의 노선 버스.
아래는 '기장성당 정류소'의 노선버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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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따져보니 4시간 30여 분정도를 걸은 셈이다.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은 우리 아내에겐 아마도 무리가 되었을 것.
밤 새 아내는 끙끙대며 힘들어 했다.
마누라도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요.
모든 게 몰입하게되는 나의 욕심에서 기인된다.
나머지 답사치 못했던 황학대와 죽성왜성 그리고 남산봉수대는 뒤로 미루어야만 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미지(未知)의 새/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매운 해풍(海風)에/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虛無)의/불/물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언제나/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하략)
<김남조님 '겨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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