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 참고자료 모음

[스크랩] 성주-선석산,영암산 산행기(세종대왕자태실-선석사 )

최두호 2017. 11. 21. 12:44

 

 

성주-세종대왕자태실-선석사-용바위-선석산[누진산](742m)

 

산행일 : 2012. 4. 1 (일)

산행구간 : 세종대왕자태실 안내소-세종대왕자태실-선석사-불광교-태봉바위-용바위-선석산(누진산)-

      

특징 :

세종대왕의 왕자들이 태어날 때 생긴 태(탯줄)을 보관하는 명당에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이 있는 곳으로

육산으로 이루어진 선석산과 암봉과 암릉으로 이루어진 영암산이 함께하며 북으로 금오산, 동으로 팔공산,

남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황악산이 함께하는 사방으 로 조망이 뛰어나다.

 

 

산행거리

안내소-0.2k-세종대왕자태실-0.2k-안내소-0.3k-선석사-0.3k-안내소-0.8k-불광교-0.9k-태봉바위-0.2k-

용바위-0.3k-선석산 

 

                                                   선석산-영암산 개념도

 

성주 월한면 인촌리 세조대왕

자태실입구인 들머리에 도착하여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 지점.  좌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 우측으로 선석사-선석산으로 가는 진입로가 있다.

좌측편 우거진 소나무로 조성된 낮으막한 봉우리를 돌계단 따라 올라서자 마치 모태의 평안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세종대왕자태실이 반긴다. 이곳에는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문종을 제외한 17왕자와 원손(元孫) 단종의

태실을 조성한 우리나라 최대의 태실이다. 

(태실胎室 또는 태봉(胎峰)이란 ? 태(胎: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를 태항아리에 넣어

길지에 봉안한 시설물을 말하는데 이를 통하여 왕실의 무궁한 계승 발전을 도모하고 왕실과 백성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한다

                                      세종대왕자태실 모습과 분포도

 천년의 고찰 선석사 모습.  이곳에는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태실법당이 있다.

  불광교를 지나고....                                                              비룡산 갈림길을 지나.....

불광교를 지나 급경사 오름길을 15분여 힘들게 오르자 낙엽 쌓인 평탄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비룡산갈림길에서 5분 지나면 태봉자리를 이곳에서 살펴 보았다는 설이 있어 "태봉바위"라고 불리는 태봉바위에

도달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주 좋다.

 

 

 태봉바위에서 바라 본 성주 참외 비닐하우스단지와 세종대왕자태실 전경.

          저수지와 맞닿은 우측 소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봉우리 정상이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는 곳이다.

 용바위와 용바위에서 바라 본 성주 참외 비닐하우스 단지 모습.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하고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켰다하여 용바위라 부른다고 하나 형상이 글쎄다.....

 

선석산 정상석                                                                   선석산(누진산이라고도 함)과 이정표 모습

 

선석산에서 영암산으로 가는 도중 등산로는 이러한 호젓한 낙엽길로 폭신한 느낌의 감촉이 여간 좋다.

 

 돌고래 모습의 기암을 지나고....                                           돌문이고개 이정표도 지나...

돌문이고개 이정표(선석산정상 1.7k, 영암산1.1k, 보손지2.2k)가 반기며 이곳에서 부터 영암산으로 가는오름길이

시작되며 15분여 지나면 암릉구간으로 접어든다.

 

암벽구간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암벽 로프구간

암벽구간 갈림길 이정표(보손지2.85k, 영암산정상(로프구간270m), 정상 350m)에서 우회(350m)하거나  우측사진

로프구간 암벽을 올라서면 서로 만나게 된다.

 

포프구간을 올라서 바라 본 앞으로 가야 할 암릉 모습. 중앙으로 영암산 정상이 보인다.

 

 

근교산&그너머 <599> 성주 선석산~영암산
만추에 찾는 세종대왕 자(子)태실 천하명당이 따로 없도다

 

 
이번 주 소개하는 산은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땅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두 산은

성주와 칠곡의 경계에 오똑 솟아 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칠곡 금오산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손에 잡힐 듯하다.

 

스케일이 큰 지도를 펴놓고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두 산을 기점으로 동일 위도상으로 동쪽에는 팔공산이,

서쪽에는 민주지산이 포진해 있고 남서쪽에는 성주와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석화성'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선석산~영암산은 어떤 산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과 비교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듯싶다.

  
우선 덩치가 작아 '나홀로 산행지'로 존재하기에는 2% 부족하다.

두 산을 한데 묶어 산행을 해야 제 맛이다.

 

산세가 각각 딴판인 점도 공통점이다.

의성의 간판인 금성산이 부드러운 육산인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은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선석산과 영암산도 마찬가지. 선석산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영암산은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다.

한 번의 산행에 두 종류의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선석산이 숲이 좋고 산길이 산책로처럼 비교적 순해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반면 영암산은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된다.

 

이번 산행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는 선석산 아래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과 선석사.   
 
세종대왕 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돼 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전통적으로 명당 중 명당에만 안장한다.

이런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는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현재 태실법당을 짓고 있다.

 

산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불광교~선석사 갈림길~삼거리봉(선석산·비룡산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정상 직전 삼거리~선석산(742m)~잇단 선석사 갈림길~돌문이고개~(칠곡)보손지 갈림길~정상 직전 갈림길~영암산(782m) 정상석~북봉(784m)~김천시 남면 '월명성모의 집'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산행 초입 길찾기에 유의하면 이후 능선길에선 이정표가 있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세종대왕 자태실을 둘러본 후 관광안내소 옆 이정표 상의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임도급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의 종착역은 사실상 들머리인 나무다리인 불광교. 가만히 보니 계곡합수점이다.

다리 옆 나무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불광교를 건너 물 마른 건천과 나란히 걷는 너른 직진형 돌길 대신 우측 급경사길로 오른다.

직진형 돌길로 올라가도 선석산으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급경사길은 처음엔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25분쯤 뒤 소나무 아래 시야가 트이면서 선석산 산줄기 뒤로 암봉인 영암산이 보여

주변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산길 주변으로 바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길 흔적이 뚜렷해지면서 경사가 수그러진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은 선석사에서 올라오는 길,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걷기 좋은 완만한 오름길. 7분여 뒤 또 갈림길.

나무에 '선석산' '비룡산' 방향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산행팀은 삼거리봉으로 명명하고 직진한다.

잠시 후 길 우측으로 아파트촌이 보인다.

금오산 금오동천의 산행기점으로 유명한 칠곡군 북삼읍이다.

읍이라도 인구가 많은지 상당히 번화하다.

 

여유로운 이 길은 성주(좌)와 칠곡(우)을 가르는 군경계이다.

5분쯤 뒤 '태봉바위'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 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란다.

조그만 저수지 앞 볼록 솟은 동산이 세종대왕 자태실이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문외한이 봐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5분 뒤 '용바위'를 만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해 예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봐선 평범한 바위로 보이나 끄트머리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수긍이 간다.

저 멀리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용바위에서 2분이면 정상 직전 삼거리.

좌측은 앞서 사실상 들머리였던 불광교 하산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선석산 정상은 여기서 300m 남았다고 적혀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선다.

잡목에 둘러싸여 동쪽인 칠곡 약목면 이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선석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다.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각인 듯 싶다. 난센스다.

 

하산은 이정표 뒤 '영암산 2.8㎞' 방향으로 내려선다. 호젓한 낙엽길이다.

안 보이던 붉은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고, 발밑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천연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차츰 숲 사이로 암봉인 영암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론 명산으로 손꼽히는 근육질의 금오산

역시 숨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부담없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옛길인 데다 소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의 색조화도

일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의 숲길 구간이다.

좌측으로 선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옛길도 열려 있다.

 

일순간 지금과 달리 길이 약간 넓어지고 '보손지 2.2㎞, 영암산 1.1㎞'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선석산과 영암산의 경계이자 칠곡 북삼읍과 성주 월항면을 잇는 일명 돌문이고개이다.

산 아래나 멀리서 보면 푹 꺼진 잘록이다.

성주 쪽은 아예 길이 없고, 오른쪽 북삼읍 보손지 쪽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는지 길이 반듯하다.

 

5분쯤 뒤 놀랍게도 눈앞에 거의 직벽이 다가와 있어 순간 섬뜩해지지만 밧줄과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보손지 갈림길을 지나 12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로프 구간(270m), 우측은 우회길(350m)이다.

 

몇 걸음 내려서니 우측으로 집채만한 병풍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우회길인 셈이다.

얼핏 봐도 높이 20m, 폭 30m쯤 된다. 돌계단을 따라 한 굽이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근육질 암릉의 위용을 드러낸다.

동시에 주변의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선석산에서 방금 지나온 마루금이

손금처럼 보이고 좌측 칠곡 쪽에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북삼읍 보손지와 약목면이, 진행 방향으론

밧줄이 요리조리 매여 있는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정상석이 있는 영암산 정상까진 13분이면 닿는다.

밧줄을 잡고 두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된다.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이 정도면 힘겹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신 방심은 금물이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멋진 소나무와 돌탑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산할 마루금과 김천과 성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가 동시에 보인다.

 

하산은 직진. 암릉을 에돌아간다. 그 길도 아주 거칠다. 9분이면 암봉 앞에 선다.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직접 타고 오르는 수밖에. 바위가 발을 내딛기 쉽게 깨어져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북봉인 784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2m 높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곳에 영암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본격 하산길. 꽤 험로지만 뜻밖에도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이 길은 옛길이라기보다 905번 지방도로 하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간벌하며 조성한 등산로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등산로를 벗어나 우측 칠곡 쪽 사면에 치우쳐 있다.

단풍 명산이 부럽지 않다.

이따금 좌측 뒤로 북봉과 가운데 암봉 그리고 소나무가 식별되는 정상석이 있는 782봉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내려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35분 뒤 갈림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쪽으로 와도 10분 뒤에 '월명 성모의 집'에서 만난다. 784봉에서 47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성주 명물 참외씨 먹인 돼지 '참외포크' 일품

  
영암산은 생긴 모양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산 아래 성주땅에서 올려다보면 3개(782봉과 784봉 그리고 그 사이)의 암봉으로 이뤄져

정상부가 마치 방울을 닮았다는 것. 해서 '방울 영(鈴)', '바위 암(岩)' 자를 조합해 영암산으로 불린다.

 

선석산은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연관이 있다.

신라 효소왕 때(692년) 의상 대사가 현 사찰의 서편에 창건, 신광사로 명명했지만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선사가 주지로 오면서 절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를 위해 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와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로 명명했다 전해 온다.

그 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뜰 앞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빙산의 일각'만 나와 있는 셈이다.

 

산행 들머리의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멀리 떨어져 있다.

 

태봉바위와 용바위에선 가야산이 거의 보이질 않지만 산속 안내판에는 보인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이웃한 용바위에선 낙동강도 손에 잡힌다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참외씨 먹인 돼지고기 전문점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054-931-0770).

성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외 산지. 일반적으로 참외씨는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특히 비타민E 함유량은 참기름의 26배, 옥수수 기름의 5배다.

실제로 성주 참외포크는 노화방지 물질인 비타민E 성분이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무려 68배나 높은 반면 콜레스테롤은 2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은 어떨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육질이 두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은 아주 담백하다.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은 남편이 직접 참외포크를 생산하고, 부인인 강현순 씨가 식당을 경영한다.

국내 몇 안 되는 국산 돼지고기 판매점이기도 한 이곳은 최고의 고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이미 성주에선 가장 유명한 참외포크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먹은 후엔 매생이 칼국수와 굴국밥이 준비돼 있다. 된장찌개를 원할 경우 비빔밥으로 나온다.

150g 1인분 8000원.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주차장) 순. 날머리 '월명 성모의 집'에서 들머리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 위치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택시(054-931-7673)를 불러야 한다. 1만5000원.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북대구터미널로 가서 갈아타야 하지만 오후부터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글 = 이흥곤 기자  

 

 

<산행지도>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안녕하세요.

오늘 방문 한곳은 버섯요리전문점, 산들마을 왜관점 입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전경사진이에요^^

특히 주차장이 넓어서 주차하기가 너무 편하드라구요^^

 

 

 

실내사진도 한번 찍어봤어요^^

안에도 넓고 특히 룸이 따로 있어서 단체회식이나 계모임에 많이들 오신대요~

 

 

 

 

저희는 점심도 못먹고, 저녁에 첫끼라~

엄청 많이 시켰어요^^ 산들마을에 인기메뉴 버섯생불고기와 버섯생오리불고기..

그리고 버섯전골까지...

먹으면서 하나하나 찍어봤어요~

 

 

먼저 버섯생오리불고기입니다.

저는 버섯하고 먹는 불고기의 야들야들한 그 소고기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건 잘 조리되고있는 사진들~

또먹고싶어요!!!!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다 조리해주시면 먹기만 하면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버섯불고기가 저 입맛에도 인기메뉴!!!

또놀러가고 먹고싶어요~

 

 

자! 두번째 생오리버섯생불고기입니다.

신선한 생오리와 버섯의 만남? 좀 색다른 조합이였어요^^

 

 

이건 조리하면서 위에 부추를 넣는게 특징^^
신선한 부추와 버섯과 오리!!! 꼭 한번 드셔보세요~

 

 

마지막으로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버섯전골^^

야채가 신선하면서도 국물은 담백!!!

 

 

 

보글보글 끓는 버섯전골ㅋㅋ

추운날 따뜻한 국물이 최고인듯~

 

 

비오는날에는

담백한 국물 어떠신가요~?

 

 

마지막엔 이렇게 볶음밥까지^^

엄청 배가 불러서, 움직일수가 없을정도~

 

 

 

 

이건 메뉴판사진!!!

연인끼리, 친구끼리 먹기에 좋구요. 물론단체손님까지~

무엇보다 맛있고, 서비스가 좋습니다. 또한 음료수가 무한제공!!!!

 

 

 

나오는 반찬메뉴들 모와봤어요^^

반찬들은 계절마다 조금씩 바뀐대요~

 

 

 

마지막은 이렇게 차가버섯차와 커피들....

입맛대로 마시면 될거같애요^^

 

 

 

[왜관맛집, 칠곡맛집] - '산들마을 왜관점'

 

전화번호 : 054 - 972 - 3322

 

찾아오시는길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77-192번지

                                      GS슈퍼마켓과 삼보쇼핑마트 맞은편 위브골목내 10M

 

 

세강목욕탕사우나

054-973-5600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302-3

 

*영암산 782m , 선석산 742m, 비룡산 579m 경북 성주 초전면, 김천 남면,칠곡 북삼면

 

 

 

 

 

  

 

 

(경북 칠곡) 영암산-선석산-비룡산 ; 골산과 육산의 조화로운 종주  

 

- 영암산 동릉... 암릉 산행의 짜릿한 맛 일품

- 선석산은 부드럽고 넉넉한 육산의 산책로 같아..

- 선석산... 서진산, 누진산 등 잘못된 이름에 혼돈 와..

- 태종바위에서 바라 본 세종대왕자태실.. 명당자리

- 하산 후 신유장군 유적지 구경 ..

 

 

* 미타암-중리지-동릉(암릉)-영암산-세종대왕자태실갈림길-선석산-세종대왕자태실갈림길-비룡산-두만지-신유장군유적지

* 산행시작~종료시간 ; 09시 03분 ~ 3시 37분

* 총 산행시간 ; 6시간 34분 = 산행 4시간 36분 + 정지 1시간 58분

* GPS 실거리 ; 약 12.9 km (이동+정지 평균속도 2.0 km/h)

 

 

* 산행지도와 고도표 ...... 참고하십시오. (랜덤하우스중앙 동아지도 사용)

본 지도의 등로(or 고도)는 GPS 트랙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서

GPS 수신상태에 따라 등로(or 고도)와 약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차이가 날 경우는 (별로 없지만) 약간의 편집, 수정작업을 하여 만듭니다.

※ 화살표 표시는 갈림길이 왼쪽이나 오른쪽 방향 표시일 뿐 특정지점 등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 원본 및 GPS 트랙자료

 

 

◎ <날짜> 2011. 12. 10. (일) 대체로 맑음.

 

 

◎ <인원> 마굿간, 전천호, 갈대 (3명)

 

 

◎ <산행지 소개>

 

 

.영암산은 김천시 남면과 성주시 초전면, 칠곡군 북삼면의 경계에 자리한 산이다.

구미 도립공원인 금오산(977m) 정남녘에 자리한다. 영암산 남동쪽으로 선석산(742.4m)과 비룡산(576m)이 당차게 능선을 이어 달려간다.

영암산의 이름은 성주 쪽에서 바라보면 3개 바위 봉우리로 형성된 정상부가 흡사 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방울 영' 자와 '바위 암' 자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방울바위산 또는 방울암산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인 금오산의 유명세에 눌려 가려져 있었던 산이다.

영암산은 바위봉우리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는 남북으로 놓인 영암산의 머리 부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북봉)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가장 남쪽 봉우리를 영암산으로 알고 있고, 거기에 표석까지 세워 놓았다. 사실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북봉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다.

반면 남쪽 봉우리는 사방이 바위절벽으로 된 바위봉우리로 경관도 좋고 조망도 좋다. 또 성주쪽에서 보면 이 남봉이 방울처럼 보여 산 이름은 예서 얻은 것이다. 성주 초전면쪽에서 북봉(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은 보이지도 않는다.

북봉에서 남봉까지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편으로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다.

 

 

.선석산은 참외의 고장 성주군 북동쪽의 월항면과 칠곡군 약목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안장한 태실봉을 품고 병풍을 두른 듯 펼쳐진 산이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신광사라 했는데, 신라 화엄10찰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었다. 그때의 절은 지금의 절 서쪽에 있었다 한다.

공민왕 10년(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겼다. 이때 절터를 판판하게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절 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다 한다. 그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내밀어져 있다.

영암산과는 달리 바위가 없으며 등성이가 넓고 번번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다. 따라서 선석산은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순하다. 고스락은 둘레에 큰 나무들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이 선석산 아래에 옛절 선석사가 있고, 육관도사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이라 했다는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이 있다.

 

 

.세종대왕 왕자 태실 ;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조선조는 왕과 왕자의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의 태를 묻었던 태실도 많다. 그러나 19기를 한데 모은 태실은 여기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밖에 없다. 이 태실은 그 자리와 방식이 특이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태실은 왕실에서 태를 묻은 석물 시설로, 조정의 관상감에서 장소를 물색하고 안태사로 하여금 태를 묻게 했다 한다.

조선조에서는 풍수지리설의 위력이 컸던 때문에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고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다. 여기 태실은 1438년(세종 20년)에서 1442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수양대군(세조)을 비롯해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까지 19기의 태실을 안장한 곳이다.

뒤에 수양대군의 폭거에 불복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를 산 아래 버렸으나, 1975년 기단석을 찾아 복원해서 현재 기단석만 남아있다(사적 제444호).

이 태실은 태실의 의궤에 따라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분청사기로 된 태호를 넣고,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석 개첨석을 덮었다. 대군과 단종의 태실, 그리고 단순한 군의 태실이 구분되어 있다.

 

.원래 이 태실 자리는 고려 말 문신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유명한 이장경의 묘지였다. 이장경은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했고, 손자 이승경은 원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고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조선조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도 그의 후손이며, 이직의 손자 이정녕은 당시 세종의 누이동생의 남편(부마)이었다. 세종은 안태사의 말을 듣고 자기의 매제 이정녕을 파면까지 하며 이장경의 묘자리를 빼앗아 태실로 만들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안태사가 태실을 앉힐 명당을 찾아 여기 인촌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피하려고 근처의 재실에 들어갔다. 그 재실이 이장경의 재실이었고, 안태사는 이장경의 묘가 명당임을 알아보고 세종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녕은 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보고를 무시한 죄로 파면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장경의 후손들에게도 과실은 있었다 한다. 이장경의 묘터를 잡아준 스님은 이장경의 후손들에게 '아무리 후손들이 잘 되더라도 여기에 묘각을 세우거나 재실을 만드는 등 묘의 치장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다. 그러나 많은 후손들이 영달하자 교만해져서 그 스님의 당부를 잊고 재실을 짓고 묘를 치장했던 것이다. 재실을 짓지 않았다면 안태사가 그 재실에서 비를 피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장경의 묘터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 <산행 코스 및 주요지점 통과시간>

 

 

* 가는 길 ; 대구역(08*16. 무궁화호 2,500원)-약목역(08*41 도착 / 08*45 출발)~택시(6,800원)~영암골기사식당, 미타암 입구 (건너편에 숭오1리 버스정류장)(08*53)

 

* 오는 길 ; 신유장군유적지관리사무소(3*37)-걸어서 약 23분-약목버스정류장(복성2리)(~4*22 출발)-버스-왜관남부정류장(4*35 도착)-걸어서-왜관역(4*40 도착 / 4*51 출발 무궁화호 입석 2,100원)-대구역(5*10 도착)

 

09*03

4번국도에 있는 영암골기사식당, <←미타암>안내문 / 건너편에 숭오1리 버스정류장

09*07

묘. 철탑, 미타암 <미타암>표석

09*11

(↑*) 보손지, <사방댐> 표석

09*13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삼거리(“Y)..좌측

09*19~20

중리지 앞 삼거리(Y") 우측 들머리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산길진입

~

묘1

09*29

전망대 (중리지 조망)

09*40~50

임도(=↑=) <↓보손지 0.9 / ↑영암산 1.5>

09*52

10*00

10*05~09

전망대(금오산, 북삼읍 조망)

10*14

암릉 시작

10*45

암릉 끝

10*49

북봉(784m) (신거리고개,월명성모의집 갈림길)("T) (지형도;영암산)

~

밧줄 구간

10*59

전망봉 (암릉 조망)

11*03~13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

~

계단 下 2곳 - 밧줄 下

11*19~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 밧줄 下

11*23

묵묘터

11*24

갈림길("T) <←보손지 2.85 / ↓영암산(로프구간) 270 / →영암산 350>

11*31

보손지 갈림길(1)(-↑) <←보손지 2.2 / ↑서진산(선석산) 2.2 / ↓영암산 0.6> <선석.영암 6>

11*39

보손지 갈림길(2)(-↑) <←보손지 2.2 / ↑서진산(선석산) 1.7 / ↓영암산 1.1>

11*42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 <↑선석산 1.6 / ↓영암산 1.2 / ↗세종대왕자태실 2.7>

12*01~47

중식

12*51

바위전망대 (영암산 조망)

1*03~1*08

정상석 2개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삼각점, 묘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1*10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 , <↓정상 80m><↘불광교 1.8>小푯말

1*13~14

<용바위>안내문(↑*)

~1*15~

의자바위

1*19

<선석.영암 4>위치목

1*20~22

<태봉바위>안내문(↑*)

1*25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Y) .. <↖비룡산>小푯말

1*34

묘1

1*38

두만리 갈림길(-↑) <두만리>小푯말

1*40~59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 벤치2, <↓서진산(선석산) 1.4 / ↖비룡산 1.1 / ↗각산리(대흥사) 1.4>

2*05

임도 만남(Y")

2*07

임도 우측 대흥사 갈림길(↑-) <↓서진산(선석산) 2 / →대흥사 1.7 / ↑비룡산 758>

2*13~15

각산리(대흥사) 갈림길(↑=). 벤치2 <→각산리(대흥사) 1.2 / ↓서진산(선석산) 2.2 / ↑비룡산 300>

2*16

남계리(구화사) 갈림길(-↑) <←남계리 구화사 0.6 / ↓서진산(선석산) 2.5 / ↑비룡산 250>

2*20

돌탑

2*22~36

<비룡산 576m> 산불초소 <↑남계리(두만지) 1.3 / ↓각산리(대흥사) 1.5 남계리(구화사) 0.85>

2*44~

갈림길(“Y)..좌측 (우;능선)

2*49~53

배시기 갈림길(↖-), 샘터(1) <→배시기 2140 / ↓비룡산 380 / ↖두만지 820>.

3*00

돌탑, 너럭바위, 샘터(2)

3*06

대형 돌탑

3*08

<↓비룡산 1.3> 개울

3*11

산길 끝 (별장 ?)

3*14

영광사슴농장 (*↑)

3*19

두레두레식당 (-↑)

3*21

두만지(-↑)

3*27

두만지(←|)

3*30

<신유장군유적지>안내문.. 구경

3*37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

 

 

 

☞ 미타암 ~ 중리지

.약목에서 김천 방면 4번 국도상에 있는 숭오1리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미타암>안내문과 영암골기사식당이 있는 포장길 따라 가면 묘와 철탑이 있는 미타암(가정집을 개조한 듯)에서 <미타암>표석 우측으로 틀자마자 바리케이드가 있는 임도 따라 진행하면 보손지 사방댐 표석을 지나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임도 삼거리(“Y)에서 좌측으로 가면 중리지가 나타난다. 중리지 앞 삼거리(Y")에서 우측 임도 옆 산기슭에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이정표에서 산길로 올라간다. (임도 무시)

 

 

☞ 영암산 동릉 ; 공룡능선 같은 암릉이 펼쳐져...

.초반 가파른 오르막을 시작하자마자 묘를 지나 허벅지 힘 팍팍~ 들어가는 오름길은 중리지가 바라보이는 전망대를 지나면서 점차 오르막이 수그러지더니 좌우로 난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보손지 0.9 / ↑영암산 1.5>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묘 2곳을 지나면 등로 우측에 금오산과 북삼면이 조망되는 전망대를 맞이한다.

이어지는 오름길은 점차 바윗돌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나타나니 처음 마주치는 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밧줄이 걸린 암봉에 올라서니 아기자기한 암릉이 펼쳐지자 생각 외로 영암산 동릉의 암릉이 공룡능선을 연상하듯 옹골찬 모습이네...

암릉 위에서 정상부의 봉우리가 보이면서 이어지는 암릉은 스릴감 넘치며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걸친 밧줄을 타고 올라서면 다시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네...

 

 

☞ 북봉 (능선3거리).. 지도상 영암산 위치

.암릉이 끝나고 흙길이 이어지면서 능선삼거리에 올라서니 밋밋한 토봉으로 된 지형도상 영암산 위치이나 볼거리 없는 봉우리(북봉 784m)라 정상석의 위치를 남쪽 봉우리로 넘겨 준 것인데 실지로 ‘성주’ 쪽에서 보면 이 봉우리(북봉)는 보이질 않는다고 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신거리고개, 월명성모의집으로 내려갈 수 있다.

좌측으로 가면 정상부에 두 개의 봉우리(우측의 봉우리가 정상)가 보이는 전망터에서 밧줄구간을 내리 오르면 두 번째 봉우리격인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봉에서 뒤돌아보면 지나 온 동릉의 암릉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정상에서는 이 암릉을 바라 볼 수 없다)

 

 

☞ 영암산 정상 (남봉)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이 있는 영암산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북삼면 일대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가야 할 선석산 줄기가 바라보인다.

영암산 남쪽 아래 수직바위에 설치된 수직계단 2곳을 내려오고 밧줄구간을 내려오니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에 걸친 밧줄구간을 다시 내려가게 된다.

동네 뒷산처럼 그저 그런 산 인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괜찮은 산이구나...

묵묘터를 지나자마자 조금 전 내려온 로프구간을 우회하여 내려오는 또 다른 길과 합류되는 갈림길을 지나 <←보손지 2.85 / ↓영암산(로프구간) 270 / →영암산 350> 능선은 순하게 이어진다. 아니 부드러운 내리막 숲길이다.

 

 

☞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선석산으로...

.친절한 이정표가 있는 보손지 갈림길(-↑) 2곳을 지나는데 보손지가 아닌 중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니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 이다.

곧이어 나타나는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을 지나 선석산을 향하는 등로는 산책로 같은 너무 순한 길이다.

한동안 순하게 이어지는 등로는 영암산이 바라보이는 바위전망대를 지나 점차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시묘산 갈림길이 있는 선석산에 올라선다. 특이하게 서로 다른 이름의 정상석이 2개 있고 삼각점과 묘도 있네..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 선석산의 이름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는 정상석이 있는데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오로 생긴 아이러니한 일이라 한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제법 넓은 터를 가진 정상 터이지만 나무 때문에 조망은 별로네..

정상석을 뒤로하면 정면에 쉼터 같은 넓은 공터가 있는데 좌측으로 내려가야 된다.

 

 

☞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이는 용바위와 태봉바위

.곧 조그마한 푯말이 나무에 걸린 <↓정상 80m>, <↘불광교 1.8>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을 지나 <용바위>안내문이 있는데 언뜻 보이기는 바위 모양이 용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데 아마도 산 아래서 봤을 때 용머리 형상이겠다고 추측해보기로 하고 용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태실봉과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인다.

용바위 안내문에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보이는..” 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네...

<용바위>안내문에서 몇십걸음 지나자 바위 모양이 의자와 같은 의자바위를 지나 <선석.영암 4>위치목을 지나면 <태봉바위>안내문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인데 이 자리에서 태봉자리를 살폈다는 설이 있단다.

조그만 저수지 밑에 선석사가 있으며 능선들이 좌우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가운데 오뚝한 태실봉 (선석사 우측에 볼록 솟은 동산)에 세종대왕 자태실이 있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다.”

 

 

☞ 비룡산을 향해...

.태봉바위를 뒤로하면 곧 능선이 갈라지는 곳 왼쪽에 <↖비룡산>小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 가는 길이다. 비룡산으로 향한다. 순탄한 길이다.

산책길처럼 순한 능선이 계속되는 가운데 곳곳에 착한 이정표나 푯말이 있어 헛갈리는 지점은 없다.

묘를 지나 <두만리>小푯말이 걸린 두만리 갈림길(-↑)을 지나고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쉼터 같다.

여유롭게 쉬어 간 후 다시 출발하면 좌측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면서 우측으로 조금 오르니 임도 우측에 대흥사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비룡산을 향해 완만하게 오름길이 시작된다.

 

 

☞ 비룡산

.임도 같은 넓은 길은 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 각산리(대흥사)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남계리(구화사) 갈림길(-↑)을 지나면 비룡산 산불초소가 보이면서 바위군이 있는 돌탑을 지나 올라가면 비룡산 정상이다.

<비룡산 576m> 산불초소 <↑남계리(두만지) 1.3 / ↓각산리(대흥사) 1.5 남계리(구화사) 0.85>

시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금오산이 바라보이고 하산지점인 두만지와 신유장군 유적지가 보인다.

 

 

☞ 두만지

.하산 길은 초반 가파르게 내려가다 이정표 없는 갈림길(“Y)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우측은 능선) 배시기 갈림길(↖-)이정표 아래 샘터(1)가 있다. 겨울날씨에도 물이 잘 나오네.. (우측으로 오르면 능선과 만나겠네..)

<→배시기 2140 / ↓비룡산 380 / ↖두만지 820>.

이제 능선을 벗어난 등로는 산사면으로 진행하다 넓은 터에 돌탑, 너럭바위, 샘터(2)를 지나 대형 돌탑을 지나면 조그마한 개울 옆 <↓비룡산 1.3>이정표를 지나면 별장(?)에서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시멘길로 이어지고 영광사슴농장(*↑)과 두레두레식당(-↑)을 지나 두만지를 따라 가면 도로와 만나는 지점 <두레두레 / 구화사....여러 간판이 있다> 건너편에 <신유장군유적지>를 둘러보고 생활체육시설 운동장으로 내려와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신유 장군 (1619~1680) 유적지 ; 이 고장 약목 출신인 장군은 인조 23년에 2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직을 거쳤다. 효종 9년(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후 장군은 경상좌병사, 황해병사, 삼도통제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후 숙종 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38호로 지정된 이곳 숭무사에는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신유 장군 유적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 효종 때 무장 신유(1619~1680)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장군의 자는 경숙, 호는 봉하, 본관은 평산이다. 효종 9년(1658)에 일어난 나선정벌에서 장군은 정벌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는데 17세기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의 최초 접촉에 대한 원정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사당과 경역은 1979~1981년 보수, 정화했으며 내삼문인 선위문을 지나면 신유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무사가 있다.

 

 

 

 

 

산행 사진

 

4번 국도상에 있는 숭오1리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미타암>안내문과 영암골기사식당



 


포장길 따라 가면 묘와 철탑이 있는 미타암(가정집을 개조한 듯)

 

<미타암>표석 우측으로..

 
 
 

바리케이드가 있는 임도 따라 진행하면...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임도 삼거리(“Y)에서 좌측으로..


중리지 앞 삼거리(Y")에서 우측 임도 옆 산기슭에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이정표에서 산길로 올라간다. (임도 무시)

 

 


좌우로 난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보손지 0.9 / ↑영암산 1.5>

 
 
 

등로 우측에 금오산(1)과 북삼면(2)이 조망되는 전망대를 맞이한다.

 


(1)



(2)


암릉구간


밧줄이 걸린 암봉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걸친 밧줄을 타고 올라서면 다시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네...

 
 
 


능선삼거리에 올라서니 밋밋한 토봉으로 된 지형도상 영암산 위치이나 볼거리 없는 봉우리(북봉 784m)


정상부에 두 개의 봉우리(우측의 봉우리가 정상)가 보이는 전망터에서..


 

두 번째 봉우리격인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봉에서 뒤돌아보면 지나 온 동릉의 암릉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정상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이 있는 영암산 정상석이 있는 정상



 


북삼면 일대


가야 할 선석산 줄기가 바라보인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암산 남쪽 아래 수직바위에 설치된 수직계단 2곳을 내려오고..


밧줄구간을 내려오니 전망바위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에 걸친 밧줄구간을 다시 내려가게 된다.


로프구간을 우회하여 내려오는 또 다른 길과 합류되는 갈림길


친절한 이정표가 있는 보손지 갈림길(-↑)


보손지가 아닌 중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니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 이다.

 
 
 

영암산이 바라보이는 바위전망대


선석산에 올라선다. 특이하게 서로 다른 이름의 정상석이 2개 있고 삼각점과 묘도 있네..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곧 조그마한 푯말이 나무에 걸린 <↓정상 80m>, <↘불광교 1.8>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


 


용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태실봉과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인다.

용바위 안내문에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보이는..” 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네...


의자바위


<태봉바위>안내문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인데 이 자리에서 태봉자리를 살폈다는 설이 있단다.


<태봉바위>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

 
 
 

조그만 저수지 밑에 선석사가 있으며 능선들이 좌우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가운데 오뚝한 태실봉

(선석사 우측에 볼록 솟은 동산)에 세종대왕 자태실이 있다.


 

능선이 갈라지는 곳 왼쪽에 <↖비룡산>小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 가는 길이다.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쉼터 같다.


 


임도 같은 넓은 길은 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 각산리(대흥사) 갈림길(↑=)

 

 

 

 

임도 같은 넓은 길 

 

바위군이 있는 돌탑 


비룡산 정상이다. <비룡산 576m> 산불초소 


 

시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금오산이 바라보이고 ..

 


 하산지점인 두만지와 신유장군 유적지가 보인다.

 

 

배시기 갈림길(↖-)이정표 아래 샘터(1)가 있다. 겨울날씨에도 물이 잘 나오네.. 

 

넓은 터에 돌탑, 너럭바위, 샘터(2) 

 

 

 

대형 돌탑을 지나면.. 

 

조그마한 개울 옆 <↓비룡산 1.3>이정표를 지나면.. 

 

별장(?)에서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두만지 

 

두만지를 따라 가면 도로와 만나는 지점 <두레두레 / 구화사....여러 간판이 있다> 건너편에 <신유장군유적지>

 
 
 

<신유장군유적지> 

 

 


 


 


 


 


 


 

생활체육시설 운동장으로 내려와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