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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지 개비리길과 유채꽃 답사..1

최두호 2017. 11. 21. 12:41

 

창녕 남지 낙동강 고수부지 60만㎡(18만평)가 4월이면 온통 노란색으로 변한다. 낙동강 유채단지이다.

앞으로 보름 남짓 뒤면 이곳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19일 『자연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제8회 낙동강 유채축제』가 화려하게 막이 올라 23일까지 5일 동안 펼쳐진다.

낙동강 남지 유채단지는 단일면적으로 전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광활한 유채밭이 낙동강 풍광과 어우러져

장관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마치 하늘에서 온 천지에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풍경이 넋을 잃게 만들 정도다.

강 건너에는 용화산의 깎아지른 절벽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져 또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유채단지가 되어 있는 고수부지는 낙동강 유역 중 유일하게 제방이 없던 곳으로 낙동강 홍수 때면

늘 민가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번복해 왔던 곳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시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되자 수해복구사업으로 이주대책을 추진해 470여 가구를 이주시키고

제방을 쌓으면서 생기게 된 제외지로 이곳에 체육공원을 만들고,

여유 공간을 이용해 유채꽃을 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단일면적으로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유채밭이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이 곳은 매우 뜻 깊은 곳이다. 6.25전쟁 당시 남하하는 인민군을 막아낸 최후의 보류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격전지로,

남지철교는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유엔군에 의해 폭파되는 아픔을 간직한 채 지금도 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낙동강 유채축제만 보고 가기에는 창녕의 다른 볼거리들이 너무 아깝다. 창녕은 낙동강을 접하는 거리가 60km나 된다.

그런 만큼 낙동강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유채단지에서 강을 따라 약 5km 상류로 올라가면 낙동강을 끼고 깎아지른 절벽 위로 개비리길이 나온다.

이름만으로도 벌써 정겨움이 느껴진다. 남지읍 용산에서 창아지 나루터로 이어지는 개비리길은

낙동강 기슭의 절벽 길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지며 낙동강과 어우러져 눈부신 풍광을 이룬다.

개비리길의 개는 물가, 비리는 벼랑이라는 뜻으로 강가 절벽 위에 난 길을 뜻 한다.

한 편으로는 개 한 마리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벼랑길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옛 영아지마을 사람들이 남지장터에 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다.

유채밭에서 출발해 개비리길까지 트레킹을 하면 좋은 코스가 될 것 같다.

노란꽃들의 향기로운 향연 낙동강 유채축제,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명의 터 우포늪,

광활한 억새평원 화왕산, 78℃ 최고의 보양온천 부곡온천,

어느 곳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은 훌륭한 관광명소들이다.


 

남지맛집; 1.철교 황토집(민물장어, 메기메운탕, 오리)

김영애: 055-587-6917,010-4854-6927

함안군 칠서면 계내1길 62-23

2.아구아지매

055-526-0202

경남 창년군 남지읍 남지리 993-4

3.참맛 할매돌솥밥

055-526-5565

낙동강과 남강의 합수머리(두물머리) 남강의 남쪽은 함안군으로 용화산 아래에 반구대와 약 400년 전 간송 조임도란 이가 세운 합수정이 바로 이 곳을 내려다 보고 있고, 북쪽은 의령군 지정면이다.

갈대밭 전망대에서

큰 물이 지면 이곳에 설치한 시설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은까 걱정된다.

용산 양수장에 사람의 기척은 없으나 염소와 닭이 우리들의 길을 막아 선다. 암탉은 꽁지가 다 빠져 불쌍하다. 아마 수탉이 너무 많은가 보다. 사람들을 보고도 겁도 내지 않고 발걸음 가는 대로 앞장을 선다.

양수장을 돌아서면 소롯길을 다라 길을 접어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밭으로 들어설 수 있다.

 

  개비리길은 오랜 세월 휘돌아 가는 물살로 형성된 암벽(퇴적암)에 길을 낸 운치 있는 길이다.

  영아지에서 남지읍 용산으로 통하는 강가의 절벽 오솔길을 개비리길이라 부른다.

개는 포(浦)의 우리말이고 벼랑 또는 절벽의 이곳 토박이 말이다. 즉 물가의 벼랑길이란 말이 된다.

그런데 이 길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옛날 영아지 마을의 어느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남지 용산마을로 팔려가

헤어진 자신의 여자 친구를 만나러 자주 다녀서 길이 나게 되었는데 그 길을 사람들이 넓혀서 쓰게 되었다고 하여 개비리길이라고 한단다.

  창녕 남지읍에는 ‘아지’라는 마을이 둘이 있다. 앞이 가려있는 동리(앞실)라 하여 아까리라 부르던 것을 ‘아지’로 차자(借字)한 것인데,

앞실과 아까리가 서로 그 음이 비슷하므로 조선조 말에 마을 이름이 ‘아지리’가 된 것이다.

과거 창녕현과 영산현의 경계 지점이라 창녕현의 아지는 창아지, 영산현의 아지는 영아지가 된 것이다.

  저 끝부분에서 낙동강 돌출부 전투(박진 전투)가 벌어졌다.

북한군 4사단의 끈질긴 도하 작전을 물리치느라고 서로 간에 사상자가 많아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그 때는 박진 나루터였지만 지금은 박진다리가 놓였다.

  4대강 사업으로 강가의 모래톱이 사라지고 강물은 더 깊어지고 넓으졌으며 강둑의 수변지가 넓으져 모터 패러글라이딩하는 이들이 앉을 듯이 하다가 다시 날아 멀리 박진 쪽을 향하여 날아 간다. 

개비리길을 걸으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은 마삭줄이다. 

 < 마삭줄의 다른 이름은 귀번요, 내동, 백화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박사님의 조언>

마삭줄=백화등입니다. 한자명으로 白化藤이지요. 일부 도감에 식물전체가 대형인 것을 변종으로 백화등이라 되어 있으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이름을 붙인 분류학자 OHWI의 실수였읍니다. 마삭줄의 잎크기는 0.3mm 정도에서 부터 10cm넘는 크기까지 엽장과 엽폭이 가지가지이며 같은 개체도 영향과 환경에 따라 크기가 배 이상의 차이가 나며 엽폭과 엽장의 비율,광택,색깔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즉 마삭줄은 잎크기와 모양, 향기의 정도가 다양하다고 보시면 되겠지요.~ 라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

  그 구분 방법을  

<1 잎맥-마삭줄은 선이 뚜렷. 백화등은 선이 거의 없고 밋밋하다.

2 잎 두께-마삭줄은 얇고. 백화등은 두껍다.

3 잎 크기-마삭줄은 작고. 백화등은 크다.

4 가지 굵기-마삭줄은 가늘고 백화등은 굵다

5 줄기 굵어지는 정도-마삭줄은 오래 걸리고 백화등은 잘 굵어진다.

6 꽃 피는 수량-마삭줄은 적게 피고.백화등은 많이 핀다.

7 분 생활시 개화 난이도-마삭줄은 어렵고 백화등은 쉽다>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잘아는 식물분류 학자에게 물어 보니 마삭줄과 백화등은 다르긴 한데 그 구분이 너무 어려워 쉽게 알 수는 없으나 

   집에서 가꾸 때 그 덩쿨이 마삭줄은 왼쪽으로 백화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오른다고 합니다.

  마삭줄(백화등)의 개화된 모습의 백미를 보려면 방어산 마애사에 가 보세요.

 마삭줄-퍼옴

  개비리길 중간에 만나는 대나무 숲.

  한 때 살아 있는 황금이라는 뜻으로 ‘생금(生金)’이라 불리며 고부가 가치 재료로 여겨졌던 대나무.

   5년 여간 뿌리에만 영양소를 비축하였다가 마침내 때가 오면 놀라운 기세로 생장에 생장을 거듭하여 하루에 약 60에서 70cm 자라 거의 한 달만에 최고의 대나무가 된다고 한다.

 

 

 

회락정(回樂亭)이라는 회판이 붙어 있었다는 집이다. 아마 이 집의 앞으로는 논과 밭이 있었고 회돌아가는 낙동강의 전경이 참으로 멋졌을 것으로 느껴진다.

 

죽순이 있을까 둘러 보았지만 아직 그 생기를 드러내기에는 이른가 보다.

 숲의 생기와 빛의 아름다움과 한 사람의 조화 길게 이어진 저 길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무얷인가를 잘 보여 준다.  

 

부처손은 바위손, 장생불사초, 불사초, 만년송, 만년초, 회양초, 교시라고도 불리고, 한약명으로는 권백으로 불리운다.

여러해살이풀로 만병통치약으로 알려려 있다.

 

흰씀바퀴

 용산마을 회관

이 집에 들어 웅어회와 매운탕으로 배를 불리고

남지 유채꽃밭에 들러 남지철교까지 걷기로 하였다.

  

 

용화산 능가사. 능가사에서 용화산

 함안군 능가사

 

다리를 리모델링했네요...예전이 더 좋았는데...파란 페이트칠에 바닥까지 말끔하이~~

 

 

 

 

 

일제 강점기 대구~통영 사이 2등 국도의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서 1931년 가설공사를 시작하여

1933년 2월에 개통식을 가졌다.

해방 이후에는 경상남도 마산과 평안북도 중강진을 연결하는 국도 5호선의 교량으로 1994년까지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이 다리는 철근 콘크리트 T형교의 형태를 가지고있으며 길이는 391.4m 폭은 6m 트러스 높이는 6m이고

교각 부분의 트러스를 높게 하므로서 물결이 치는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트러스는 리벳 접합방법으로 제작되었는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제작공법이 같으며 계절의 변화에 다른 철재의 신축을

조절하는 이음장치로 연결하는 등 그 당시로서는 최신의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1950년 9월8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군의 도하를 방지하기 위하여 교량의 중앙부 25m를 폭파하였으나 1953년 복구하였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 및 보강 공사를 거쳐 주요 교통로로 사용되여 오다가 1993년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차량 통행이 금지된  민족의 역사와 애환이 서린 한많은 다리이며 한때는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되고 있다.

 

 

하루나는 유채의 다른 이름이다.

유채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재배하는 ‘어린 싹 채소‘ 무나 배추, 유채, 자운영 등을 육묘장에서 열흘 남짓 키운 뒤

10㎝ 전후에서 유채꽃이 피기 전에 수확해 주로 나물용으로 출하한다

유채는 학명이 Brassica napus로 어릴 때는 채소로 이용하기도 하나 주로 종자에서 나오는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유지작물입니다.

  월동초는 동채, 하루나, 씨나나빠, 동초 등으로 불리우며, 배추와 같은 Brassica campestris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로 늦가을에서 초봄에 산파하여 겉절이나 나물용 등의 용도로 재배하는 채소작물입니다.

- 출처 원예연구소 채소육종과 엽근채류육종연구실

 

 남장 엿장사는 사람들을 웃기고.......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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