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누리길 2구간 (2-4 왕건행운길)
(초례봉 ~동곡지<안심역>)
누리길 2-4 왕건행운길 트래킹 경로 : 초례봉 - 포토존 - 동곡지,승방재(나불지)갈림길 - 동곡지 - 신서혁신도시 - 안심역


초례봉(醋禮峰)
약 1500년전 어씨라는 초부(樵夫)가 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선녀와 만나 가례(嘉禮)를 이루고
이 봉우리에서 초례를 치렀다고 해서 초례봉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초례봉은 이렇게 사랑받고 있으나, 그 봉우리 이름에는 한번 되살펴 볼 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초례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일부에서는 나무꾼과 선녀의 초례 전설까지
제시하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공통되게 그것을 '조리봉'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봉우리에 인골(人骨)을 암매장하면 그 후손은 거부가 되는 동시에 이 고을은 대단한
한발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지금도 날씨가 가물면 이 산 위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냄과
동시에 암매장 흔적을 확인한다고 한다.
또한 초례봉은 태조 왕건이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한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래가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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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半夜月)
후삼국시대 왕건이 견훤군사에 패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날은 반야(半夜)이고, 중천에 달(月)이
떠 있어서 이곳을 '반야월'이라 했다고도 한다.또한 율하동리가 고적에 숙종대왕이 야행시
도착할때 초생달이 있었다하여 '반야월'이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숙종이 민정시찰로
경제시책(대동법)을 확인하기 위해 돈지붕 아래 작은 고을에 사는 村老와 밤늦게까지 세상살이며
나라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대왕께서 돌아갈때쯤 "노인의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라고 하니, "이작은 고을에사는 村老가 무슨 큰 소원이 있겠소. 그런데 李公! 내가사는 이고을에
아직 이름이없소, 하니 이름이나 하나 지어주시지요"라고 하였다.
숙종께서 "거참! 아직 고을 이름이 없다니"하면서 밖을보니 밤하늘에 반달이 떠 있길래 半夜月
이라 이름지어 주었다고 한다. |
안심(安心)
후삼국 말기 왕건과 견훤의 공산전투(동수전투)에서 왕건이 파군재 부근에서 대패하여
쫓기던중, 이지역에 도달하여 환성산 줄기의 초례봉쪽으로 피신하여 내려오다 날이새자 마음을
풀고 안심하였다고 해서 안심(安心)동으로 유래되었다한다.
1914년 경북 경산군 안심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81년 7월 안심읍이 대구직할시 승격으로
편입되어 현재의 안심1,2,3,4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 |




이곳에서 보면마치 초례를 치를때쓰는 신부의 탕건과 흡사하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승방재로해서 계곡길로 동곡지로 갈수도있고 능선을 타고 송림숲을 걸어 내려가도
동곡지로 내려가는데 능선길을 택하여 진행한다.















신서혁신도시(첨단의료산업단지) 공사현장을 가로질러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한다.




안심역도착
이로써 왕건누리길을 두구간을 2회로 나눠 약35Km정도의 왕건체험로드를 왕성한다.나름 국토해양부선정으로 동구청에서 많이
준비했으나 일부는 너무 개인의 취향에 의한 스토리로 조성되어 약산은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더 신경써서 이야기가 있는
역사테마길로 보완이 되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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