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인들 사이에서 산을 여러 개 잇는 종주산행은 경험 많은 건각들에게나 가능한 산행으로 인식돼 있다. 100리 안팎의 긴 능선을 걷는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면서 어둠 속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박 2일에 걸쳐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이른바 ‘불수도북’이나, 2박3일 만에 해내는 지리산 태극종주 같은 산행은 자신의 체력과 인내심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등산인들에게는 도전적인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의 가팔환초 역시 비슷한 개념의 종주산행 코스다.
- ▲ 가산은 유순한 산세와 더불어 멋진 조망이 펼쳐지는 산이다. 산아래에는 벌써 봄기운이 스며드는 듯하다. 가산~한티재 사이 능선 상의 너럭바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대구 산악인들. 왼쪽부터 차문환, 윤은호, 이건형, 서태숙씨.
-
‘가팔환초’란 가산(架山·901.8m)과 팔공산(八空山·1,192.8m), 환성산(環城山·804.1m)과 초례봉(醮禮峰·636.7m) 등 대구와 칠곡·영천·경산시 경계를 이루다 대구시 동구 신서동에서 능선자락을 떨어뜨리는 4개 산을 잇는 종주 코스를 일컫는다. ‘불수도북’과 비슷한 개념의 이 종주코스는 기점에 따라 40km 안팎의 길이로 대개 16~20시간 내에 주파한다.
“25km가 넘는 거리인데 지금 출발해서 해떨어지기 전에 갓바위까지 가겠어요? 어림도 없을 걸요.”
가산 남서쪽, 칠곡군 동명면 학명리에 위치한 계정사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대구 웰빙산악회 회원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다. 얘기가 서로 잘못 전달되면서 웰빙산악회원들은 약속시간을 30분 앞당긴 오전 6시 반에 도착해 있었고, 취재팀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왔으니 1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기분 좋을 리 만무다. 출발시각이 늦으면 평소보다 더 빨리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도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산 산길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따라 나 있다. 계정사를 출발해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로 쉬지 않고 1시간20분 올려치자 가산산성. 곧이어 철계단으로 연결된 가산바위 위로 올라서자 유학산에서 소학산을 거쳐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칠곡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구미 금오산, 그리고 대구시가지 뒤로 비슬산과 합천 가야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 가산 정상 부근의 용바위에서 바라본 팔공산 서릉. 중계탑이 여럿 서 있는 봉 중 오른쪽 봉이 비로봉이다.
-
“가팔환초 종주는 대개 새벽 4시에 출발해 오후 7시에 끝내요.”
“저 양반 말 들으면 큰일나요. 저 사람은 특수부대 출신이에요. 124군부대-.”
서광서씨는 ‘테제베’란 별명으로 불리는 준족. “15시간이면 종주를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말에 같은 산악회 여성회원인 서태숙씨가 한마디 해대자 서광서씨는 “13시간 안에도 끝낼 수 있다”며 한술 더 떴다.
눈길 덮인 산길은 가산산성 중문을 거쳐 가산 정상으로 이어졌다. 산 아래는 잿빛 세상이지만 가산산성 일대는 흰눈이 단단히 얼어 있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한겨울이었다. 산성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다 조망 좋다는 용바위에 올라서자 동서로 내닫고 남북으로 품을 활짝 펼친 팔공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서 오늘 점심장소인 한티재까지 5.4km, 한티재에서 팔공산 동봉까지 약 8km, 거기에 관봉(冠峰·853m)까지 8km를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다리가 무거워진다.
“내성과 외성이 잘 보존된 구간이 많아요. 아시죠. 가산 기슭 다부동 일대가 6·25 때 격전지였다는 사실을. 정말 비참했대요. 2만5,000명 넘게 사망했다니. 그래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엔 성 안에 주막도 있었어요. 지금은 저수지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요.”
- ▲ 점심장소이자 휴식처인 한티재 주차장.
-
가산~갓바위는 60km 극복등행대회 코스 일부 구간
서태숙씨 말대로 가산 북서쪽 다부동 일원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다. 다부동과 유학산 일원은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육군 제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서 싸워 이긴 곳으로 북한군 1만5,000명 외에 우리 군 1만 명 등 총 2만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라면 다 불어요. 빨리 와요~.”
한티재 가는 능선 길은 제법 거칠다. 짤막한 오르내리막이 반복되고 간간이 바위지대가 나타나 힘이 빠지게 한다. 그렇게 거친 능선길을 따라 할아버지할머니바위를 지나치고 치키봉(757.3m)을 넘어 부계봉(736m)에 도착할 즈음 새벽 일찍 취재팀을 계정사에 태워다 주고 한티재로 옮겨가 점심까지 준비하고 있는 대구 산악인들이 발길을 재촉케 한다.
11시45분경 도착한 한티재는 칠곡과 군위를 잇는 79번 지방도로가 가로지르고 커다란 휴게소와 널찍한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다. 구한말 천주교 박해에 저항하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대구시산악연맹 차재우 전 회장 일행과 대구시연맹 부설등산학교 총동창회(회장 홍만식), 웰빙산악회(회장 문상길) 회원 등 대구 산악인들의 환대 속에 따뜻한 오뎅과 떡라면으로 배를 채운 일행은 젓가락을 놓기 무섭게 휴게소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을 행진곡 삼아 팔공산으로 접어들었다(12:30).
- ▲ ‘중계탑’이 하도 많아 ‘방송탑봉’이라고도 불리는 비로봉.
-
“시루봉, 투구봉을 알아야 팔공산을 조금 안다 할 수 있어요. 팔공산은 대구 쪽 남사면으로 길이 많이 나 있지만 북사면에 명소와 기암이 많아요. 조선시대 나온 ‘산중일기’에 나온 명소만 해도 대단해요. 여러 해 동안 사라진 절터를 여러 군데 찾아냈어요. 그런 명소를 잇고 이어 산길 100개를 내는 게 꿈이에요.”
팔공산으로 접어들자 서태숙씨는 한층 더 열정적으로 팔공산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계정사 출발 이후 담담한 표정으로 산행을 해 온 차문환씨는 “가산에서 갓바위까지 잇는 능선이 한때 60km 극복등행대회 코스였다”며 “대구경북산악운동이 태동한 곳 역시 팔공산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동화사 지구의 수태골 위 바위골은 오랜 세월 클라이머들의 훈련장으로, 갓바위에서 가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하중 훈련을 위한 종주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팔공산으로 접어들면서 등산객들이 한결 많이 눈에 띈다. 설연휴 마지막 휴일을 맞아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능선길은 눈이 얼어붙어 자칫 균형을 잃으면 넘어지기 십상이었으나 그래도 등산인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산길을 따라 오르내렸다.
“와~, 오랜만에 별을 보네요. 대구시내선 볼 수 없어요.”
“오늘 갓바위까지 뽑는 거지요? 그럼 이따 만나요.”
- ▲ 관봉. 차재우 회장(오른쪽) 뒤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팔공산 동릉이 눈에 들어온다.
-
파계사 갈림목인 파계재(한티재 2.1km·동봉 6.2km·갓바위 13.5km·파계사 1.3km)에 도착하자 차재우 회장과 박호근씨가 밤늦게 갓바위 주차장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파계사로 내려선다.
“늘 애를 먹이는 구간이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힘드네요.”
파계재를 지나면서 부드럽던 산길은 험로로 변해갔다. 가파르고 빙판 진 눈길은 다리뿐 아니라 허리와 팔까지 한층 더 힘이 들어가게 하고, 미끄러질 때마다 허리가 휘청거리고 동시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게 한다. 이렇게 급경사 오르막을 타고 파계봉(991.2m)에 올라섰건만 팔공산 정상을 이루는 비로봉(帝王峰·1,192.8m)과 동봉(彌陀峰·1,167m)·서봉(三聖峰·1,150m)은 멀기만 하다. 그런데도 웅장한 산봉을 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이소. 이 재미 아닝교.”
‘테제베’ 서광서씨와 권혁만(대구클라이밍센터)씨는 쉴 적마다 번갈아 막걸리와 간식을 내놓으며 일행의 갈증을 달래주고 허기를 메워준다. 권혁만씨는 다리가 멀쩡하지 않은 산꾼이다. 26년 전 사고 때문이다.
“1985년 팔공산 바위골에서 무려 25m나 추락해 무릎과 대퇴부를 다쳤어요. 걷는 게 기적이라고 했을 만큼 큰 사고였어요. 병원에 누워 있을 때 후배들이 6개월 동안 대소변을 받아주고, 병원비 마련해 주겠다고 일일찻집도 열었어요. 이게 다 팔공산 산행으로 맺어진 정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빚을 갚겠다는 마음에서 사정이 어려운 산악인이 있다면 꼭 찾아가곤 합니다.”
- ▲ 눈 덮인 톱니능선 우회로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는 대구산악인들.
-
가마바위를 지나자 톱날능선 뒤로 팔공산 정상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톱날능선은 눈 녹은 다음에야 산행이 가능한 구간. 북쪽 사면으로 난 우회로를 따르지만 바위 턱은 눈이 얼어붙어 긴장케 하고, 사면길 역시 미끄러워 애를 먹인다.
“예전엔 가장 힘겨웠던 구간인데 이젠 거저먹기예요.”
데크를 따라 서봉으로 오르는 사이 등 뒤로 오늘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뾰족한 암봉 두 곳에 ‘삼성봉’과 ‘서봉’ 등 각기 다른 이름의 정상석이 서 있는 서봉 정상에 서자 비로봉과 서봉을 거쳐 팔공산 동릉 끝에 슬그머니 올라앉은 관봉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허릿길을 따르다 오도재(느지미재·1,080m, 서봉 0.9km·동봉 0.7km·수태골 주차장 2.9km)를 거쳐 비로봉 정상에 올라섰다. 30여 년 만인 2009년 12월 1일 개방된 비로봉은 옛날 5악 중 한 봉우리로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던 성스러운 곳이건만 여러 방송사 중계탑과 기지국들로 둘러싸여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때문에 제왕봉, 상봉, 상상봉, 칼바위등, 천연수봉과 같은 옛 이름 외에도 ‘방송탑봉’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서태숙씨에게서 비로봉과 비로봉 북쪽 산성봉과 청운대 등에 관한 옛 얘기를 들으며 동봉으로 향하는 사이 날은 급속히 어두워지고 산기슭 산사들에 이어 동화사 시설지구의 식당가에서 불빛이 하나하나 켜진다.
- ▲ 좌)김유신 장군과 얽힌 얘기가 전하는 명마산 ‘장군바위’. 우)명마산 남쪽 계곡에 있는 용담샘.
-
“어떡할까요? 능선재에서 폭포골로 빠질까요? 에이 내친김에 갓바위까지 뽑죠, 그래야 내일 산행이 수월할 테니까요.”
느린 걸음에 답답해하던 서광서씨는 동봉을 향하는 사이 슬그머니 하산해 버리고, 서태숙씨는 “체력도 떨어지고 내일 강연 때문에 준비할 게 많다”며 비로봉에서 곧장 염불암 쪽으로 하산한 상황. 시간은 저녁 6시. 이제 칠흑같은 어둠이 몰려들 시각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능성재에서 하산하는 게 낫겠다 하던 차문환씨와 불편한 다리로도 계속 동행해 준 권혁만씨는 갓바위까지 함께 걷겠다며 힘을 북돋아준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동릉을 바라보며 데크를 내려서자 눈길의 연속이다. 랜턴 불빛으로 산길을 최대한 밝혀보지만 순간순간 엉뚱한 샛길로 빠지고, 급경사 내리막에선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도 병풍바위는 희미한 달빛 아래 백옥 같은 암벽을 빛내고, 그 아래 양진암은 고향집 불빛만큼이나 정겨운 불빛을 밝혀준다.
샛길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제 길로 올라서기를 또 한 차례 반복한 다음 빙판 같은 눈길이 사라지자 ‘공산폭포 3.0km·동봉 2.8km’ 빗돌이 서 있는 신령재 갈림목(동봉 2.7km·공산폭포 3km·수도사 4.5km·동화사 3.8km). 오른쪽 폭포골을 1시간 반쯤 따르면 동화사로 내려서지만 예서 대구 산꾼들이 이렇게 도와주는 데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 ▲ 동봉 정상. 대구시가지뿐 아니라 비슬산, 가야산이 보이는 조망 명소다.
-
“와~, 정말 오랜만에 별을 보네요. 대구시내에선 별을 볼 수 없어요.”
오후 8시경 바른재(옛 검마재·공산약수터 70m)에 도착하자 밤하늘에는 별이 점점 많아지고, 갓바위 일원은 가로등 불빛이 밤하늘을 잇는 천상의 길처럼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풍경에 힘을 얻은 일행은 삿갓봉(931m)을 넘고 능성재(느패재)를 지나 갓바위부처로 널리 알려진 관봉을 향해 다가선다.
갓바위를 600m 남겨놓은 갈림목(동봉 6.7km·선본사 1km·북지장사 2km)에 다가서자 여태껏 밤하늘을 수놓았던 선본사 쪽 가로등불빛 대신 능선동 쪽 가로등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어둠 속에 수를 놓고 있고, 허리길 따라 갓바위를 감아 돌아서자 능선동 쪽 갓바위 탐승로로 내려선다.
대구시내에서 하룻밤 묵은 뒤 다시 갓바위에 올라선 것은 이튿날 오전 9시. 어젯밤 10시경에는 촛불 속에 은은한 미소를 짓던 갓바위부처는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데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고, 불자들 역시 그 미소를 배우려 함인지 끊임없이 절을 올린다.
- ▲ 헤드랜턴 불빛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동봉을 내려서는 대구산악인들.
-
용덕사를 거쳐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무명봉(약 680m)에 올라서자 대구와 경산을 잇는 909번 지방도로에는 차들이 꼬리를 물며 달린다. 그 뒤로 무학산(589m) 능선은 장벽처럼 뻗어 있고 그 오른쪽으로 환성산이 우두머리처럼 당당하게 솟아 있다.
관봉에서 능성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팔환초 종주산행 코스에서 별 볼 일 없는 구간이려니 얕잡아봤건만 그게 아니었다. 기암과 너럭바위 조망대가 이어지고, 김유신이 불국사 원효굴에서 삼국통일의 도업을 닦고 굴 밖을 나설 때 맞은편 산에서 백마가 큰소리로 울며 승천하는 광경을 보고 명마산(鳴馬山·655m)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장군바위도 삐죽 솟아 있었다.
단검을 세워놓은 듯한 3단 돌탑 같은 명마산을 앞두고 오른쪽 사면으로 내려서자 산길은 맑은 물이 샘솟는 용담샘을 거치고 실계곡을 건넌 다음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능성고개로 내려선다.
어제 15시간 가까이 걷는 사이 발목에 무리가 온 구자익 기자는 아침부터 기도객들로 붐비는 갓바위부처 앞에서 용덕사로 내려설 즈음부터 절뚝거리기 시작하더니 무명봉에 올라설 즈음부터 거리가 점점 벌어져 결국 이날 산행은 정오경 대구시와 경산시를 잇는 능성고개에서 마무리짓고 만다.
- ▲ 갓바위에서 명마산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
-
그리고 나흘 뒤인 2월 11일 다시 능성고개를 찾았을 때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산행에 동행한 대구경북비박산악회 회원들은 함박눈에 시종 함박웃음을 짓지만 멋진 조망을 기대하고 새벽부터 서울에서 달려온 취재팀에게는 실망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09:30).
능성고개에서 환성산 방향으로 이어진 콘크리트길을 따르다 능선으로 올라붙자 소나무 우거진 호젓한 산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바위지대가 시작되면서 산행이 더뎌진다. 그래도 바위 능선 꼭대기에 올라 돌아서자 능성고개 일원이 빤히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구름 안개 속에 팔공산 주릉이 신비감 넘친 자태를 드러낸다.
바윗길은 경사가 죽어드는 대신 한층 더 험해지고 막 내린 눈에 덮여 긴장감까지 더해지는데도 비박산악회 회원들은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환성산 정상을 장식한 중계탑이 빤히 보이지만 여전히 험한 바윗길이 계속 되고, 뒤돌아서면 기암이 돌병풍을 이룬 절벽이 우리가 걸어온 길을 감춰버린다.
된비알을 올려치자 느닷없이 능선이 왼쪽으로 90도 꺾어져 당황케 하지만 나무 네 그루에 칠해 놓은 파란색 페인트가 방향을 잡아준다. 살짝 내려섰다 다시 오르막길에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잘 닦인 헬기장을 거쳐 환성산 정상 감투봉(감태봉 또는 감태기봉)에 올라선다(12:00).
- ▲ 눈 덮인 환성산 능선을 오르는 대구경북비박산악회 김심원 고문.
-
낙타봉 직후 대구·경산 시계 능선으로 잘못 접어들어
환성산은 산 동쪽 골짜기에 자리한 환성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전해지는 산으로 산기슭 주민들은 고리성산이라 부르고 있다. 삐죽 솟구친 바위가 여럿 모인 감투봉은 눈까지 덮여 올라서는 게 까다롭다. 그래도 팔공산권에서 셋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좋은 전망대로 꼽히는 봉우리이기에 혹시 하는 기대를 갖고 올라섰으나 낙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만 겨우 눈에 들어올 뿐 다른 조망이 없다. 그나마 바로 아래로 적당한 터가 눈에 띄니 반갑다.
널찍한 공터로 내려서기 무섭게 김종숙(총무)씨와 김은현씨 배낭에선 주먹밥과 통닭을 비롯해 먹거리가 푸짐히 쏟아져 나오고, 차재우 회장 부부 배낭에선 생미역에 갈치속젓과 따뜻한 국이 나왔다. 여기에 반주까지 곁들여지니 머릿속을 꽉 채웠던 산행에 대한 고민이 싹 사라진다.
다시 산행에 나선 시각은 오후 1시. 30분 가까이 눈 덮인 능선을 내려서는 사이 툭하면 엉덩방아를 찧고 그때마다 김종숙씨는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필자도 철퍼덕. 그런데도 “누구든 한 번 넘어질 적마다 1,000원씩 내놔. 뒤풀이 하산주 값으로 쓰자”하여 즐거워하고, 그 웃음소리에 산을 감쌌던 구름안개가 벗겨지면서 대구 쪽 산봉들이 불쑥불쑥 솟구쳐 오른다.
- ▲ 안간힘을 다해 가파른 눈길을 오르는 김종숙씨.
-
동쪽 경산시 하양면 대국리와 서쪽 대구시 동구 평광동을 잇는 임도가 가로지른 새미기재(약 534m)는 널찍한 터에 흰눈이 소복이 쌓여 평화롭기 그지없다. 새미기재는 대구 불로동 도동 평광동 주민들이 하양장에 가려고 넘나들던 고개였다 전한다.
된비알을 올려치자 능선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슬쩍 틀면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낙타봉(658m)으로 이어진다. 길옆에 삐죽 솟은 낙타봉 정상에 올라섰으나 더욱 굵어진 눈발과 더욱 뿌예진 날씨는 조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능선이 맞긴 맞는 거예요? 초례봉이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낙타봉을 지나 이제 얼마 안 가면 초례봉에 올라서고 이후 1시간 반이면 신서동 안심역까지 내려설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능선길을 내려섰으나 초례봉은 나타나지 않고 지도와 달리 능선이 갈라진다. GPS로 확인한 결과 낙타봉 직후 남릉을 따라야 하는데 남동쪽으로 뻗은 대구·경산 시경계를 이룬 능선을 따랐던 것. 허겁지겁 서둘러 분기점으로 다시 올라섰으나 이미 1시간 반 이상 시간이 흘렀고, 오후 4시가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졌다.
- ▲ 낙타봉 능선.
-
경부고속도로 차량 행렬처럼 가팔환초 종주 스쳐지나가
“오늘은 잘 끝나려니 했더니 결국 ‘알바’ 했네요. 알바.”
‘알바’란 아르바이트의 준말로 종주꾼 사이에서 길을 헤맸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박산악회 회원들은 입으론 “알바했다”고 툴툴대면서도 얼굴에는 환한 빛이 돌았다. 뻥 뚫린 산길보다 지형도를 들고 다니며 새로운 산길을 찾는 산행을 즐기다 보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 한 술 더 떠 초례봉 직전 널찍한 헬기장이 나타나자 김종숙씨는“비박하기 딱 좋은 장소”라며 즐거워한다.
초례봉 정상은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마주 서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초례산’이라 적힌 이 봉은 나무꾼과 선녀의 초례 전설도 전하지만 이 일대 주민들은 조리봉으로 부르고 있다 한다. 초례봉에 도착한 비박산악회 회원들은 “있는 것 다 털어먹자”며 작은 배낭을 들추자 먹을거리가 수북이 쌓인다.
“자, 이쯤에서 곧장 안심역으로 가죠. 더 능선 타봤자 그게 그거니까.”
- ▲ 환성산 정상에 모인 대구 산악인들.
-
초례봉에서 완경사 능선을 따르는 사이 평상도 나타나고 산 서쪽 매여동으로 내려서는 갈림목도 나온다. 이렇게 초례봉을 30분쯤 내려서자 ‘←안심역·↑나불지·신서지’ 갈림목에 닿는다. 오후 5시 30분, 곧 날이 어두워질 시각이 되자 차재우 회장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안심역으로 내려서자” 권한다.
산길은 곧 유순한 계곡으로 내려서고 물줄기가로 이어지는 임도를 10분쯤 따르자 동곡저수지로 다가선다. 저수지 둑을 넘어서자 허허벌판이 펼쳐지고 그 뒤로 신서동 일원의 상가와 아파트,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서로 꼬리를 물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 불빛을 보는 사이 계정사를 출발해 가산을 넘어 한티재로 내려서고, 거기서 따뜻하고 정 넘치는 점심에 힘을 얻어 팔공산 주릉을 밤늦도록 내달리고 또 굵은 눈발 속에 걸어온 능성고개~환성산~낙타봉~초례봉 산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