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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천-수도산 모티길 ...<매일신문>

최두호 2017. 11. 20. 17:59

[동행-경북을 걷다] (17)  김천-수도산 모티길
길 모티 모티마다 새로운 모습…살아있는 산림박물관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옷매무새는 넝마를 걸쳐입은 듯했다.
쫓기다시피 급히 뛰어내려온 흔적이 역력했다.
남편인 듯 보이는 남자는 거푸 담배만 피워댔다. 분노랄까, 허탈이랄까.

그 형언할 수 없는 낯빛으로 뚜렷한 대상도 없이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깊은 상처를 입은 짐승이 구석에 웅크린 채 살아보겠다는

독기조차 잃고 허연 입김을 뿜어대는 모양이었다.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평생 일궈온 텃밭과 피곤한 몸을 누이던 집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수 만마리의 성난 짐승떼가 산 위에서 휩쓸고 내려오는 듯했다.

한때 마을이 있던 자리는 거대한 황토빛 강물로 바뀌었다.

길이며 집이 있던 자리는 토사와 뿌리뽑힌 나무들로 온통 뒤죽박죽이 돼

마치 짐승떼가 쏟아놓은 거대한 배설물 더미처럼 보였다.

 

2002년 8월 김천시 증산 땅을 찾았던 기자의 눈에는 그 처참한 흔적이 각인됐다. 전국적으로 18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5조5천억원 가까운 재산 피해를 낸

태풍 루사가 남긴 생채기였다.

루사는 말레이시아 반도에 사는 사슴과의 이름.

사슴 한 마리가 짓이기고 간 생채기는 너무도 컸다.

8년이 지나 다시 찾은 그곳에는 말라붙은 피딱지처럼,

계곡 곳곳에 콘크리트 방호벽이 남아있었다.

오늘 찾는 길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서 황점리로 이어지는

‘수도 녹색숲 모티길’이다.

‘모티’는 경상도 사투리로 모퉁이를 뜻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산판(나무를 베어내는 일터) 길을 산림청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임도로 정비했고,

이후 김천시가 ‘모티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숲체험길로 널리 알리고 있다.

증산 땅에 이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성주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무주쪽으로 가다보면 벽진면-금수면-성주호를

거쳐 대가천 줄기를 흐르는 무흘구곡을 거슬러 증산에 도달한다.

또 김천에서 3번 국도를 따라 거창쪽으로 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성면-지례면-대덕면을 거쳐 증산 땅에 당도한다.

증산면은 김천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한다.

수도산(해발 1,317m), 단지봉(1,321m), 목통령`형제봉(1,022m) 등

1천m 고지의 준령이 주위를 둘렀다.

 

산판길 임도정비 거쳐 이젠 숲체험길로,

임도정비 거쳐 이젠 숲체험길로 면소재지에서 대덕면쪽으로 1.5km쯤 가면

수도리로 가는 길이 보인다.

길 옆 계곡은 무흘구곡이 시작되는 옥동천이다.

수도리 마을 가운데 차를 세워둘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모티길’로 접어들기 전 오른쪽 길을 따라 1km쯤 올라가면

수도산 중턱 1,050m 고지에 신라 고찰인 수도암이 자리 잡고 있다.

절에 있는 보물 제319호 ‘석불 약사여래좌상’에는 재미난 설화가 전해온다.

석불은 원래 거창 부처골에서 만들었는데,

어떻게 옮길까 고민하던 중 난데없이 흰 수염을 휘날리며 노승이 나타났단다. “걱정할 것 없네. 내가 부처님을 모시고 갈 터이니 자네들은 따라오기만 하게”라는 말을 남기고 노승은 석불을 업고서 나는 듯 달려갔다.

그런데 노승은 그만 수도암 입구에 와서 칡 덩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노승은 수도산 산신들을 불러모은 뒤 “고얀 놈들, 부처님을 모시고 가는데 칡 덩굴에 걸리게 하다니. 앞으로 절 주위에 칡을 모두 없애리라”하며 호령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과연 수도암 주위 300여m 근방에는 칡이 살지 못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산 중턱 수도암엔 재미난 칡 덩굴 전설이…

모티길은 무려 15km에 이른다.

4시간쯤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하지만 차를 수도리에 세워두었다면 종착지인 황점리에 이르러서

돌아올 길이 막막해진다.

길 중간쯤에 팻말을 보고 되돌아오던가,

2개 조로 나뉘어 수도리와 황점리에서 따로 출발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숲길은 아름답다.

산림청이 펴낸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김천 황점리 임도’라는 제목으로

소개될 정도다.

길 안내를 맡은 김천시 박운용 관광산업담당은

“산림청에서 자작나무 군락과 낙엽송 보존림을 가꾸었고,

수종 개선을 하면서 음나무 조림지 등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살아있는 산림박물관을 거니는 듯 느껴진다”고 했다.

모티길은 안으로 굽어드는 산모롱이와 밖으로 휘어진 산모퉁이가

심심할 틈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다.

 

함께 길을 나선 이도화 증산면장은 “등산객들이 찾아와

‘도대체 여기에 모퉁이가 몇 개나 되느냐?’고 물으면 그냥 아흔아홉개라고

 답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기야 누가 일일이 모퉁이 숫자를 헤아릴까?

처음 올라설 때 다소 힘이 들지만 나머지 구간은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수도산 중턱을 따라 비교적 평탄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산행이 그다지

힘들지도 않다.

하얗게 쭉 뻗은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산 사면 전체를 벌목해 버린 현장이 나온다.

무슨 일인가 유심히 봤더니 ‘음나무 조림지’다.

잡목을 베어내고 다양한 식생을 갖추기 위해 모티길 곳곳에 이런 조림지를

가꾸고 있다.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가시 투성이 음나무 묘목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저 멀리 나뭇가지 위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까치집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까치집이 아니라 겨우살이다.

이렇게 많은 겨우살이를 볼 수 있는 산길도 드물다.

겨우살이가 똬리를 튼 숙주나무는 아직 새 잎이 나지 않아 앙상하기만 하지만

겨우살이는 연녹색 잎사귀가 파릇파릇하다.

 

15km 4시간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걸음

숲은 풍성하다.

4월 말이면 두릅나무는 새 싹을 돋아내고,

골짜기에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이름을 일일이 대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봄나물이 나무 사이 바닥을 뒤덮는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떼를 지어 와서는 싹쓸이하는 바람에 인근 마을

주민들은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숲을 즐길지언정 해쳐서는 안될 노릇이다.

길은 중간을 넘어 11km 언저리에 닿는다.

 한때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낙엽송 군락이 있던 곳.

지금도 1930년대 심은 낙엽송 보존림을 만날 수 있다.

377그루의 낙엽송은 수령이 80년을 헤아린다.

모티길에서 잠시 빠져나와 수십m 길이로 치솟은 낙엽송 사이를 걸어볼

수도 있다.

막바지에 이르면 아스라이 사라지듯 이어지는 모티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짧지 않은 거리지만 지겹거나 따분하지 않다.

길을 내려서면 원황점에 이른다.

원래 유황을 구워 상납하던 황점이 있던 마을이라해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원황점을 지나 대가천 물길을 따라 903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다시 증산면 소재지에 닿을 수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김천시청 관광산업담당 박운용 054)420-6062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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