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눈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다 해 봤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동행 길을 코앞에 두고 발목까지 쌓인 눈 때문에 포기한 것도 세 차례나 된다.
봄이 오면 나아질 걸로 믿었는데 올해 봄 날씨는 고약하다 못해
신경질이 날 정도다.
경산시 용성면 매남4리, 흔히 구룡마을로 불리는 곳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뭔가 단단히 삐친 듯했다.
빗길을 걸을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섰다.
경산시에서 919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자인을 지나 용성에 닿는다.
용성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보면 송림지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매남4리를 따라가면 된다.
첫 갈림길에서 석장사쪽으로 올라가도 되고,
1.5km쯤 더 가다가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와 구룡마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거의 180도 틀어서 콘크리트길을 따라가도 된다.
오늘 걸을 전체 구간은 7km.
갈림길 입구에 차를 세우고 길을 나선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린 탓에 길과 나무와 공기도 모두 촉촉하다.
길 오른편 산 아래 청도 봉하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안개에 싸인 풍경은 묘한 신비감을 더한다.
길 안내를 맡은 용성면사무소 김상열씨는 “포장도로가 생겨서 차들이 오가기
전만 해도 구룡마을 사람들은 비료 한 포대를 사려면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나서야 했다”며 “한때 숨어있는 오지마을로 곳곳에 소개됐지만
사람 손을 타면서 땅값도 오르고,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아쉬워했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미워졌다.
도대체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부아가 치밀었다.
길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호젓하기만 할 것 같던 산길은 인간이 남긴 더러운 흔적들로 짓밟히고 말았다.
길가 산비탈에 버려진 쓰레기는 양도 많을 뿐더러 버린 작태마저 교묘했다.
여름에 수풀이 우거지면 보이지 않겠지만 버린 쓰레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터. 김상열씨는 “워낙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청소하러 내려가기도 쉽지 않다”며
한숨 지었다.
##.용왕 딸, 아홉 아들 키웠다는 전설
씁쓸한 마음을 안고 길을 재촉했다.
앞쪽으로 비구름이 내려앉아 모습을 감춘 구룡산(675m)이
보일 듯 말 듯 다가선다.
이곳에서 능선 줄기를 타기 시작하면 비슬지맥을 따라 경남 창녕까지
한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고 한다.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수백m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지경이니 먼 경치는
그저 짐작할 따름이다.
구룡산은 경산, 청도, 영천의 경계를 이루는 산.
비록 높지 않은 산이지만 재미난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 동해 용왕에게 세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왕비가 죽고 계모를 맞았다.
옛 이야기에 착한 계모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이번 계모도 예상대로 구박이 심했다.
결국 용왕은 불쌍한 막내딸을 조선 땅에 보냈다.
막내는 처음에 금강산을 찾아갔지만 용왕의 동생이 이미 터를 잡고 있어서
남쪽 태백산 줄기를 따라 계속 내려오게 됐다.
그러던 중 정상이 평평하고 나무가 우거진 산을 발견했는데, 지금의 구룡산이다. 막내딸은 이곳에서 아홉 아들을 낳아 잘 길렀는데,
막내만 유독 말썽을 부렸다고 한다.
전설에는 아홉 아들이 용(龍)이라고 하는데,
당시 용의 모습으로 살았는지 아니면 본디 용인데 사람의 모습으로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튼 막내 용은 요즘으로 치면 문제아였던 모양이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친정 아버지인 동해 용왕을 찾아가 벌해달라고 간청했고,
용왕은 막내딸을 어여삐 여겨 용궁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아홉 마리 용은 하늘로 승천해 생활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주는 법. 말썽쟁이 막내 용은 하늘 생활도 지겨웠는지
다시 본래 살던 구룡산으로 막무가내로 내려오다가 용왕의 노여움을 사
그만 죽게 됐단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해서 구룡산이요,
그 용들이 승천한 곳의 정상에 있었다는 샘이 구룡정이고,
막내 용이 다시 내려오다가 죽은 곳이 남쪽에 있는 반룡산이다.
천주교 용성성당 구룡공소가 눈에 들어온다.
1815년 을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청송, 영양 등지에 흩어져 살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오며 교우촌이 생겼고,
1921년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인 안세화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공소가 세워졌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종탑이 길 옆에 서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구룡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를 만날 수 있다.
언덕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을 따라 20여m쯤 오르다가 왼편으로
밭을 가로지르면 산악회 리본이 달린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봄꽃 지천에 울창한 송림 어우러져
여기서 20여분만 산을 오르면 정상을 만난다.
산 아래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복사꽃과 자두꽃이 지천으로 깔렸지만
아직 이곳에는 봄기운이 미치지 못했다.
정상을 덮고 있던 비구름은 잠시도 길을 터 줄 생각이 없나보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산길을 올랐다.
구름인 듯 안개인 듯 짙게 드리워진 그속에서 비록 짧지만 꿈결같은 산책을 했다. 무채색 투성이로 겨울을 보낸 산은 옷을 갈아입을 채비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연두빛이 터져나오고, 붉은 기운을 머금은 진달래 꽃봉오리가 손끝만 대면 터질 듯 부풀어있다.
다시 산을 내려서 구룡마을로 향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곳이지만 들판이 제법 널찍하다.
김상열씨는 “이렇게 높은 곳에도 물이 끊이지 않아서 예전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지금은 아래에서 하도 물을 빼내서 그런지 물이 부족해졌다”며
“한때 지표수를 모아서 생활용수로 쓰기도 했는데 얼마 전 지하관정을 뚫어 물을 뽑고 있다”고 했다.
구룡마을 뒤편을 지키고 선 거대한 소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마을 입구 표지석에는 ‘구룡’과 ‘고랭지 배추’라고 적혀 있다.
해발고도가 높다보니 가능한 농사다.
마을을 지나 석장사쪽으로 내려서는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작은 개 10여 마리가 각자 자기 집에 묶인 채 낯선 사람을 향해 맹렬히 짖어댔다.
산세는 깊고 인적은 드물다보니 고라니를 비롯한 야생동물도 많다.
밭마다 채소를 가꾸는데 피해가 극심하다고 했다.
궁여지책으로 개를 키우는데, 수확철이면 개를 풀어서 산짐승을 쫓는단다.
구룡산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한 곳.
겨우내 워낙 눈이 많이 내린 탓에 휘어지고 부러진 소나무가 곳곳에 눈에 띈다.
쌓인 눈의 무게가 얼마나 컸으면 어른 다리만큼 굵은 소나무가 뚝뚝 부러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길을 따라 석장사를 지나면 다시 아스팔트 포장길을 만난다.
여기서 길을 따라 1.5km쯤 올라가면 앞서 출발점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차를 타고 오가는 길.
하지만 여유롭게 걸으면 훨씬 예쁜 길임을 알 수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경산시청 공보담당 김주원 053)810-6061,
*.경북 청도 구룡산의 전설; 아홉용이 살았다는 구룡산
용성면 매남4리 동북쪽에 해발 400여 미터의 고지를 이루고 있는
우뚝 솟은 산이 바로 구룡산 이다.

이 산은 청도군과 영천시를 경계로 하고 있어 청도 구룡, 영천 구룡,
자인 구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이 산의 위치가 3개의 시군과 경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룡산은 곧 전설 속에 산으로 처음 구룡이라 명명하게 된 동기가
동해의 용왕 이야기와 연계된다.
이야기인 즉은, 옛날 동해의 용왕에게 딸이 셋 있었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왕비가 세상을 뜨고,
왕실은 새 왕비를 맞아들게 되었는데
새로 들어온 왕비는 처음 전처의 소생인 세 공주를 사랑해 주었으나
날이 갈수록 계모의 본질을 들어내며 학대가 심해졌다.
이를 지켜보던 용왕은 용궁에서 학대를 받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그 중 한 딸을 육지에 나가 살도록 하였다.
세상으로 나온 용왕의 딸은 해동 조선의 정기를 지닌 명산
'금강산'을 찾아갔으나
이미 그곳에는 용왕의 동생이 터를 미리 잡고 하늘에 비를 다스리고 있음에
그도 같이 그곳에 자리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의 태백산 줄기를 따라
살기 좋은 남으로 계속 내려오다 보니 수목이 울창하고
정상이 평평한 좋은 산을 발견하고 이곳에 영주의 터전을 잡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구룡산 이라 한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이곳에 터를 잡아 천우를 다스리며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아홉의 자식을 두게 되었는데,
이가 곧 구룡이란 지명의 어원이 된 것이다.
용왕의 딸이 낳은 자식 중 여덟용은 모두 어미용의 말을 잘 따르며
효성 또한 지극하였으나
그중 막내아들이 항상 말썽을 부리며 어미용의 속을 태웠다고 한다.
어미용은 항상 막내를 타이르며 바르게 자라기를 바랬지만
한번 벋나기 시작한 막내의 행실은 바로 잡히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용이 지켜야할 계율마저 저버리고 말아
어미용을 몹시 난처하게 하였다.
그래도 어미용은 계속 막내를 설득하며 바른길을 종용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음으로 하는 수 없이 어미용은 동해의 부왕을 찾아
이를 벌해줄 것을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 때 바다의 용왕은 어미의 고생을 어여삐 여겨 용궁으로 다시 부르고
아홉용은 더 높은 하늘에 올라가 생활하게 하였는데,
이때 승천하게 된 샘이 바로 구룡정이다.
아홉의 용이 높고 넓은 하늘에 올라가
세상의 비와 구름을 관장하며 천우를 다스렸으나,
말썽꾸러기인 막내는 이 또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용왕의 영을 거역하고 본래의 살던 곳을 그리워하며 구룡산으로 치닫다
용왕의 노여움을 사 병을 얻어 그만 죽게 되었는데,
막내용이 죽은 자리가 바로 반룡산이라 전해지고 있다.
구룡산의 아홉용이 하늘로 올라간 뒤로부터 이 산 정산에 생긴 마을을
구룡리라 부르게 되었고,
그때 용이 승천하였다는 곳에는 깊은 웅덩이로 변해 남아있다.

구룡리 북서쪽 건너편에는 장재란 자연부락과 앞 냇가에는 용암이라는 큰 바위굴이 있다.
이 굴은 옛날 이곳에 살고 있던 용이 막 승천하려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한 여인의 피 빨래하는
부정한 모습을 보고, 큰 바위에 머리를 박고 승천하지 못하였다는데,
그때에 그 용이 들이박은 바위를 용암이라 한다.
이 용암에는 용이 살았다는 샘이 있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이 샘의 물은 얼지 않는다 하며,
그 샘은 깊고 물 색깔이 짙푸르러 아무도 이 근방을 접근하지 않으며
지금도 이 샘가를 지나면 마치 용이 나타나 금새 입에 불을 품으며 승천하려는 듯한
으슥함 마저 준다.
구룡산 일대에는 큰 바위가 귀의 모양과 같이 생겼다하여
귀바위(耳岩)라는 자연부락과
남쪽에서 먼저 매화가 봄소식을 전하는 곳이라 하여 매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신라 때에는 구룡산 아래 '송림사'와 '구룡사'라는 큰절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때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파편들과 전설만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동남쪽의 반룡산 또한 구룡산의 준령으로,
신라시대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그 흔적조차 희미한데,
근래(1960년대)에 새로 지은 것이라는 대웅전은 당시의 웅장함만 간직한 듯,
깨어진 석조물에 몸체를 의존한 채 복원될 날만 기다리려는 듯 남아있다.
이 사찰이 있는 곳을 용전(龍田)이라 부르는데,
원래 이 일대는 반룡사에 따라붙은 불지로,
융성기 때에는 사찰에서 씻어 내리는 쌀뜨물이 청도 금천까지 흘러내렸다고 한다.
조선말기 큰 화재 시 급히 불상을 청도의 한 사찰로 옮겨 화재로 인한 화는 면했으나,
당초의 삼존불중 주불인 아미타불만 되찾아 모시고,
좌우의 협시불은 당시 피난처의 거부로 되돌려 받지 못하였다 하며,
(1991.10.19)는 주불마저 주지승이 며칠 동안 이 절을 비운 틈에 잃었다 하니
황망하기 그지없다.
반룡사가 자리한 산은 원래 구룡산 이라 하였으나,
이곳에다 절을 짓고부터 반룡산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산의 준령은 청도 소천과 용성 곡란의 용산 줄기와 갈라지며,
소천을 지나는 산 준령은 다시 남산의 대왕산과 연결되는 명산중의 명산이다.
이 산들이 소재한 용성면은 이 산들의 정기로 국회의원, 시장, 군수
그 밖의 관직에 등용된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은
이름난 산 아래 명인들이 태어남을 말해 주는 듯 하며,
근래에는 재계의 인사들까지 이 지방에 터를 구하기 위해 잦은 행보가 있다함은
바로 명산이 있어 복 받은 고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 Song By Dawn
*.경북 경주,영천,청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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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산(九龍山)은 경산시 용성면 매남 4동(구룡동)에 있는 산이다. 옛날 동해의 용왕님에게는 서딸이 있었는데, 용궁에서 학대받음을 안타까이 여긴 용왕님은 그 딸을 육지에서 살도록 하였다. 해동 조선의 정기를 지닌 금강산에는 이미 용왕님의 동생이 자리잡고 있었다. 태백산 줄기를 따라 살기 좋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보니 수목이 울창하고 꼭대기가 넓고 편편한 이상스러운 산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곳에 영주의 터전을 잡게 하였다. 이 용은 때때로 구름을 낳고 비를 내리게 하여 육지의 억조창생을 도왔다.
비를 내리게 하는 용은 열 마리의 귀여운 새끼를 낳았고 날이 갈수록 탐스럽게 자랐다. 다른 새끼들은 모두 어미 용의 말을 잘 듣고 효성이 지극한데, 유독 막내 새끼만은 항상 말썽을 부리고 불효막심하였다. 어미 용은 항상 막내를 타일렀지만 끝끝내 듣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동해의 용왕님에게 벌을 주도록 청하였다.
용왕님은 고생한 어미용을 용궁으로 부르고 9마리의 용은 넓은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하여 이 세상의 비와 구름을 관장케 하고 말성꾸러기의 용은 그곳에서 쫓아내었다. 쫓겨난 용은 지금의 용산에서 살다가 본래의 살던 곳이 그리워 찾아가다가 용왕님의 노여움을 사서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이곳이 지금의 반룡산이라고 한다. 이 구룡산은 9마리의 용이 하늘에 올라간 뒤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으며, 그곳에 생긴 동리를 구룡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주 영천 청도를 넘나드는 사룡산 - 구룡산. 정확히 말하자면 경주와 영천의 경계가 사룡산 능선길이고, 상봉은 영천과 청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이웃한 구룡산은 영천과 청도를 가로지르다 정상은 영천으로 약간 올라 서 있다. 낙동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사룡산(四龍山·685m)과 구룡산(九龍山·675m) 산행은 겨울에 원없이 낙엽깔린 능선길을 내달릴 수 있는 코스다. 전형적인 육산인 이 산들은 적당한 오르내림과 고요함으로 겨울산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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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구룡산 아래쪽에 위치한 이 용천약수의 수질은 알칼리성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구룡산 아래쪽에 위치한 이 용천약수의 수질은 알칼리성으로
산성 체질에서 오는 동맥경화증 예방과 고혈압, 당뇨, 비만체질 개선에 효험이 있을뿐 아니라
위산과다와 만성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수터 안내판에는 일부 성분이 과다하게 함유되어 있으나
음용수로 부적합 하다거나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릴수 는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특히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부산, 대구 등 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먼 옛날 구룡산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지상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흘린 눈 물이 떨어져 약수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용천약수는 하루 생산량 800리터 정도로 가뭄을 타지 않고 1년 내내 약수생산량이 일정한 것이 특징이다.
약간의 황색을 띤 용천약수는 강한 철 냄새가 나고 맛은 약간 떫으면서도 담백하다.
이 약수로 닭백숙 을 만들면 기름도 별로 뜨지 않은 채 맛이 담백하다고 한다.
정상리에는 구룡의 전설 외 에 몰락한 김씨일가의 전설과 옛지명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 지명과 전설에 대해서는 약수터 옆의 정상가든 주인 황문석씨가 한가할 때면 자세 히 설명해 주기도 한다.
다시찾는 근교산 *.청도 정상약수터~영천 구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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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요? 전설이 있죠. 옛날에 산중턱 연못에 용이 열마리 모여 살다가 어느날 한꺼번에 승천했답니다. 그런데 그중 한마리가 그만 이 산으로 도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산이름이 그렇게 붙은 거라고 들었습니다.』평범하기 그지없는 겉모양의 구룡산(九龍山·615m)에는 뜻밖에 재미있는 사연과 볼거리가 많았다. 구룡산은 경북 청도군과 경산시 영천시의 경계선이 꼭지점처럼 모여있는 산이다. 산의 외모 자체는 그저 수더분하고 시원하게 조망이 열리는 지점도 많지 않아 행여 「심심한」 산행이 될 수도 있는 코스라 할 수 있다.하지만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의 정상약수터에서 올랐다가 영천시 대창면으로 내려오는 산길은 한 주민의 「전설자랑」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꽤나 많았다. 부지런하게 이곳 저곳에 눈길을 준다면 꽤나 「즐거운」 등산코스다. 산행경로는 경북 청도군 정상리 정상마을∼정상약수터∼천주교대구대교구 용성분당 구룡공소∼경산쪽 구룡산정상 표지석∼구룡마을∼영천쪽 구룡산정상을 거쳐 경북 영천시 대창면 운천리 하산길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5시간30분∼6시간 정도. 청도에서 동곡을 거쳐 초입인 운문면 정상마을로 가기까지는 차편이 드물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정상마을 버스정류소에 하차하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마을 뒤쪽 삼거리까지 나와야 한다. 삼거리에는 「정상가든 용천약수터」 「약수사용 닭 오리 토끼 염소」 등의 글귀가 적힌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의 안내대로 오른쪽 길로 우선 올라선다.200m 정도 걸어가면 「정상리 길머리」라는 표지석과 마주서는데, 표지석 뒤 담배가게를 기준으로 왼쪽길이다. 정상약수터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가면 된다. 10분 거리다. 약수터에는 평일인데도 승합차를 타고 온 노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수백년 째 솟고 있다는 이 약수는 물빛이 탁하고 「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노인들은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오는데는 특효」라고 예찬론을 펼친다. 위장병 계통에 좋다는 설명이다. 약수터 뒤로 올라가는 산길을 따라 산행은 시작된다. 눈 앞의 언덕 위에 선 노송 한 그루를 보고 올라서면 된다. 소나무까지 거의 다 와서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인다. 샛길 입구를 쳐다보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시덤불과 잡목이 엉킨 길이 너무나 묵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 입구만 통과하면 길은 또렷하다. 20분 정도 경사 급한 산길을 올라가면 아스팔트 도로위에 올라선다. 오른쪽은 경산시 용성면으로, 왼쪽은 청도 운문면으로 통하는 도로다. 도로를 따라 경산쪽으로 100m만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샛길처럼 뚫린다. 표지판에 「천주교대구대교구 용성본당 구룡본소」라고 적혀있다. 표지판의 안내대로 들어섰다가 이내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 산사면으로 올라붙는다. 중요한 지점이다. 중간 바위전망대에서는 가지산 억산 문복산 고헌산 등 영남알프스 일대 산들의 「사열」을 받을 수 있다. 묵은 산길을 한동안 걸어가자 「천주교 공소」의 영역 안에 들어온 듯 마치 산책로처럼 운치있는 길이 펼쳐진다. 길 군데군데 경건한 종교적 글귀가 적힌 십자가들이 서 있다.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 조망이 트이는 좁은 공터에서 뜻밖의 광경을 대하게 된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서 있는 것이다. 등산객의 처지에서는 산중에서 「불상」이 아닌 「예수상」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드문 일이 아니다. 십자가 바로 뒤에 구룡산 정상임을 알리는 경산시장 명의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정상에 도착한 취재팀은 지도를 살펴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구룡산 정상은 이 곳이 아닌 건너편에 솟아있는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인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사연은 간단했다. 맞은 편의 「진짜」 구룡산 정상은 경북 영천시에 속한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높은 산을 별로 갖지 못한 경산시쪽에서 2000년 1월 1일을 기념해 엇비슷한 고도의 이 봉우리에 정상석을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진짜」 구룡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진행방향 기준으로 직진해서 내려선다. 개미집이 무수하게 많은 산길을 지나 15분 정도면 구룡마을에 내려선다. 해발 650m에 있는 마을이다.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는 이 마을 주민들은 구룡산에 얽힌 전설들을 훤히 「꿰고」있다. 용의 전설이 있는 마을답게 야산보다 높은 이 마을에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 주민들에게 부탁하면 수통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마을 저수지 앞으로 난 농로로 접어들면 구룡산 정상으로 올라설 수 있다. 「진짜」 정상은 경산쪽과는 달리 수풀에 가로막혀 조망이 전혀 열리지 않는다. 수풀에 쌓인 정상에서 진행방향 기준 오른쪽으로 하산길이 열린다. 또렷한 산길을 거쳐 콘크리트포장 농로에 내려섰다가 다시 숲속으로 이어지는 이 하산로를 1시간 30분 이상 길게 타고 내려오면 복숭아와 사과나무가 지천인 영천시 대창면 운천리 마을로 내려설 수 있다. # 교통편 산행초입인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까지 들어가려면 청도와 동곡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동곡터미널에서 정상으로 가는 오전 시간대 버스가 9시 한번밖에 없으므로 이 시각을 잘 고려해야 한다. 청도까지 열차를 이용한다면 부산역에서 오전 6시15분 열차(7시11분 청도 도착)를 반드시 타야한다.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 동곡으로 들어가는 오전 7시35분 첫 버스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동곡터미널에서 오전 9시 새마을버스편으로 동곡까지 들어가면 된다. 근교산동호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경북 영천시로 하산하게 된다. 하산지점은 대창면 운천리 남창마을. 마을 앞 도로에서 영천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4시20분, 6시, 8시20분(막차)에 있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부산행 직행버스가 오후 6시25분, 6시45분, 7시10분(막차)에 있다. 6천1백원. 부산행 차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영천∼경주간(10분 간격 운행 8시55분 막차)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주∼대구간 버스도 10분 간격으로 밤 10시20분까지 차가 있으나 이 차편을 이용하려면 대구 동부터미널서 동대구역가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며, 동대구∼부산간 무궁화호 열차는 밤 10시42분이 막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