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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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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산척면(山尺面) 제천시 백운면(白雲面) 경계의., 天登山(807 m)
1. 박달재의 유래
해발 453미터! 산높고 골깊은 이 고개는 그 이름을 모르는이 드문 박달재 - <朴達峴> 이다. 치악산의 맥을 뻗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박달산, 시랑산을 이루니 이 박달재는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이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의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일들을 오늘날 뉘 소상히 알랴. 2. 박달재의 의미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嶺마루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게 天祭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괴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의 壇은 흔히 박달나무 단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는 박달 즉 백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백산 또는 태백산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3. 박달재의 전설 영남의 과거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동마을의 한 농가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난을 조심하라는 가훈을 가슴에 지닌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태도에 그집의 딸 금봉이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달도령도 금봉이의 절절하고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양인심사는 양인지라.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이란 말 아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구비를 꺽어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이는 만사에 뜻이없고 오로지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몇일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리움 내키는대로 평동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봉이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한편 박달을 보낸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달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아흔 아홉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이의 삼우날 평동에 도착하여 금봉이의 허망한 죽음앞에서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눈을 뜬 박달의 앞에 금봉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봉이가 고개마루 정상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은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빛 진달래 꽃이 아름답게 피고 진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제천 봉양의 시랑산 아래에 있는 고개 천등산 기슭을 넘는 고개는 다릿재이다. 옛부터 험준하여 몇날 며칠일 넘어야 했다고 한다.
애닯은 노래 가사가 대변하듯이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 덕분에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천등산
산 이름은 주변의 인등산 지등산과 더불어 천(天).지(地).인(人)삼재를 이루는 이름의 산.
이 주변 산세는 일반인 눈에는 평범해 보일 뿐이나 천지인(天地人)을 나란히 명명한 이유가 무엇일까?
북으로부터 천등산(807m),인등산, 지등산(535m)
............................................................. 전설에 의하면, 조선 시대 황규라는 지사와 이곳 삼등산 천하 명당자리에 관한 이야기. 또한 박달이란 순 우리말로 백산(白山)이라는 의미로 백두산,태백산과 같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곳. ...........................................................................
![]() 11:10 이곳에 도착.
박달재
소백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넘어야 하는 울고 넘는 박달재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박달재. 조선조 중엽 경상도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에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 집에 과년한 딸 금봉이 사립문 들어서는 영남 총각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은 박달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인 금봉이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못 이루던., 박달 역시 잠 못이루며 밖에 나와 서성거리던 금봉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가까워졌고 이튿날이면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으며 밤마다 만난 두사람
박달이 과거급제후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 생각으로 다른 일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박달은 오직 금봉이를 만나고 싶은 시 만을 지었다.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 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금봉의 죽음 앞에서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금봉의 뒤를 쫓으며 금봉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안는 순간에 낭떨어지로 떨어졌다 그후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
성황당 입구
경은사 입구
백운사 대웅전
민들레 꽃씨
미나리 아재비
고광나무
애기똥풀
미나리 냉이
![]() 잃고 살 것인가? 얻고 살 것인가?
![]() 뇌물은 용기를 잃고 거짓과 속임은 신의를 잃고
![]() 멸시와 천대는 이웃을 잃고 게으름과 태만은 살 곳을 잃고
![]() 음란과 방탕은 가정을 잃고 두말과 변명은 자기를 잃고
![]() 사리와 사욕은 정의를 잃고 분노와 분쟁은 자비심을 잃고
![]() 오만과 교만은 의로운 스승을 잃고 허영과 허욕은 진실을 잃고
![]() 원망과 불평은 기쁨을 잃고 간사와 아첨은 진심을 잃고
![]() 용서는 평안을 얻고 인내는 지혜를 얻고
![]() 신의는 이웃을 얻고 용기는 능력을 얻고
![]() 사랑은 기쁨을 얻고 자비는 천상천하를 얻고
![]() 정의는 만인을 얻고 겸손은 의로운 스승을 얻고
![]() 성실은 설 곳을 얻고 견성은 자유를 얻고
![]() 선행은 열매를 얻고 청정은 용기를 얻고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잃고 살 것인가? 얻고 살 것인가?
![]() 선택은 자유이다!
![]() |
길손을 맞고 있는 박달재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옵니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느 농가를 찾아가 하룻밤 묵었고 그 집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한양으
로 떠났습니다... 한양에서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인 박달은 과거시험에 낙방했고, 박달재 서
낭당에 올라가 장원급제를 빌던 금봉은 기다리다가 상사병으로 죽게됩니다. 낙방거사가 되어
돌아오던 박달은 금봉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박달재 고갯마루에서 금봉이의 환영을
쫓아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었다는 애닮픈 사연이지요. 박달재 고갯마루에 오르면 옛 성
황당이 있던 오른쪽 산등성이에 박달이와 금봉이의 동상이 중원평야를 굽어보고
있고,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비와 박달재 표지석이 습니다.
높 이 |
천등산(天登山) 807m |
위 치 |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제천시 백운면 |
특징/볼거리 |
북동쪽에 시랑산(侍郞山:691 m), 남쪽에 인등산(人登山:667 m)이 솟아 있다. 북동쪽 비탈면을 흐르는 계류는 제천천(提川川)을 이루며 충주호(忠州湖)로 흘러들고, 서남쪽 비탈면을 흐르는 계류는 영덕천(永德川)을 이루며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남동쪽으로 충북선 철도가 가로지르고, 북서쪽으로 장호원~제천 간 국도가 지난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사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본래 박달재는 이곳 시랑산에 있는 것이고, 천등산(806m)에 있는 고개는 박달재에서 약 9km 쯤 서쪽에 위치한 다리재이다. 산행시작은 박달재 휴게소가 있는 고개마루턱이다. 이 고개가 해발 453m 이므로 240m 남짓만 올라가면 되므로 산행의 부담이 적다. |
등산시간 |
2시간 30분 |
등산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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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코스 |
다릿재 -40분(1.3Km)- 소봉 -50분(0.9Km)- 정상 -60분(2.4Km)- |
가는 길 |
승용차로는 충주에서 영덕삼거리를 지나 산척면 소재지에서 다릿재 정상까지 가거나 광동교에서 우회전하여 웃광동 마을에 주차하면 되고 다릿재 정상을 넘어 원월초등학교 가기 전에 우회전하여 대월 마을에 주차 |
근교관광 |
ㅇ박달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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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랑산,박달재,주론산,구학산 GPS 종주지도
1. 시랑산~박달재~주론산~구학산~구력재 종주 GPS 종주지도
- 지금은 들머리와 지점이 링크가 안되어서 클릭해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산행자료에서 보아 주세요 -
2. 10만분의 1 지도
3. 학산리 광암~감악산~주론산~박달재~시랑산~마두산~공전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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