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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서의 산 백월산

최두호 2017. 11. 20. 17:26
[주말산행코스]     호서의 산 백월산
 
충절의 땅 홍성의 진산…구월산·월출산과 함께 세(三) 월산(月山)

충청남도 서북부에 자리한 홍성 고을의 진산 백월산은 낮지만 경관이 아름답고 산행하기에도 매우 좋은 산이다.원래 백월산은 황해도 구월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서부 지역의 세 월산(三 月山)의 하나로 꼽혀왔다.

백월산은 코끼리바위, 바위턱 조망대 등 산비탈 곳곳에 기암괴봉이 있고, 바위등성이도 있으며, 서어나무 등 숲이 울창하다. 또 절과 이름난 약수터가 있는 등 다른 산들과 비슷하면서도 백월산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색다른 점도 여러 가지 있다.

첫째 백월산은 거의 평정봉으로 길이가 300여m에 이른다. 그래서 산 머리 곳곳에 꽃밭과 정자, 제단, 사당, 순찰대 건물 등이 있다. 이 꽃밭과 나무들은 군내 각 단체가 나누어 심고 가꾸고 있어 더욱 뜻이 있다.5월에 백월산의 머리는 갖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져 화사하다.

백월산에는 정자(조망대)와 50m가 넘는 명물 하늘사다리, 절골의 바위 협곡을 건너는 구름다리 등 산행시설이 잘 되어 있다.

백월산은 충절의 산이다. 산머리 거대한 바위를 등지고 벼랑 위에 홍주 청난사중수비와 단간으로 된 청난사가 있다. 청난사는 임진왜란 중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가신 등 다섯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산 머리에 충신의 사당이 있는 곳은 여기 백월산뿐일 것이다. 경술국치(한일합방) 전후 많은 의병들이 이 산으로 들어와 장열한 최후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 큰 바위중턱 조망대.
백월산은 민속신앙이 두드러지게 성한 산이다. 여기 청난사도 민속신앙의 당집을 겸하고 있어 사시사철 제물이 차려져 있고 자주 굿판도 벌어진다. 또 백월산 곳곳에 민속신앙의 기도터가 많다. 무속신앙인들이 스스로 순찰 감독하는 산림환경단속순찰대 건물까지 마련되어 있다.

백월산에서는 해마다 고천대제(제단까지 마련되어 있다)와 단군제가 열린다. 당집 앞의 큰 바위에는 지름 30cm, 깊이 20cm 정도 되는 확 모양의 둥근 구멍이 파여 있다. 군청의 임철용 공원녹지계장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 구멍에 소 피를 받아 단군제에 제물로 썼다 한다.

백월산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지사들 가운데 문무 각 대표라 할 수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백월산 서쪽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다. 홍성8경 중 만해 생가는 제3경, 백야 장군 생가는 제7경으로 되어 있다. 산행 뒤 성역화된 두 분의 생가를 둘러보며 두 분의 높은 뜻을 되새기고 기려보는 것은 산행의 격을 한층 높이게 될 것이다.

산행 뒤에 가까운 남당리 등 바닷가로 나아가 바닷바람도 쐬고 뒤풀이 겸 생선회도 먹을 수 있으며, 산 아래 홍성읍에 있는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도성을 둘러보는 것도 백월산 산행의 크나큰 매력이다.

홍성 북부에 명산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용봉산은 동쪽, 백월산은 서쪽에 있다. 두 산은 높이도 비슷하고 바위산으로 되어 있으며, 기암괴봉이 많은 점도 닮았다. 경쟁관계일 수도 있는 백월산과 용봉산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두 산 사이 소향 마을(현존)에 소향이라는 예쁜 처녀가 살았다. 백월산 장군과 용봉산 장군은 서로 소향이를 차지하려 싸움을 벌였다. 용봉산 장군은 투석봉에서, 백월산 장군은 중턱바위에서 산에 있는 바위들을 상대방에 던지는 싸움을 벌인 것이다. 마침내 백월산 장군이 싸움에 이겨 소향 아씨를 아내로 맞았다.그래서 용봉산에는 바위가 많이 있고, 백월산에는 적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홍성은 옛날에 홍주(洪州)라 했다. 조선조에서는 홍주목(洪州牧)으로 목사(牧使)가 주재하며 5개 군(서천, 서산, 태안, 면천, 온양)14개 현(縣)을 다스렸고, 고종 32년(1895)에는 부(府)로 승격되어 부사가 22개 군현을 관할하기도 했다.지금의 도에 준하는 홍주목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홍주성과 안회당(홍주목 동헌), 홍주아문, 조양문(홍주성 동문), 여하정 등이 지금 남아있다.

백월산의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산(月山)으로 되어있다. ‘본주 서쪽 3리 지점에 있는 진산’이라 적고 있다. 그러나 1750년에 만들어진 광여지도에는 백월산으로 나타나 있다. 그 뒤에 나온 대동지지에도 월산이라 되어 있고, 옛날에는 옥산(玉山)이라 불렀다고 써있다. 여기에 백월산은 동남쪽 40리 대흥과의 경계에 있다고 적혀 있고, 비봉산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되어있다. 

국립지리원의 지도 등 공식 지도에 일월산(日月山)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옛 지도에 백월산의 흰 백 자(白)에서 위 점 하나를 빼고 날 일(日) 자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다. 백월산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용화사 기점 원점회귀산행

진즉부터 백월산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나 얼마 전 5월 초에야 백월산 산행에 나섰다. 대전에서 떠난 일행은 홍성 출신으로 지식과 애향심이 대단하며 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장동림 역장, 장형근 쎄이스포츠 사장, 기린산악회 회장 정영수 박사 내외, 이연정 기린산악회 총무, 에너지기술연구소 안영수 박사, 엄은영 여성산악회 회장, 회원 김정순씨 9명이었다.

현지 백월산 들머리 미력골 고개에서 홍성군청의 한근철 부군수, 임철용 공원녹지계장, 계원 육동희씨, 이한식 문화재계장, 산림조합 배후식 상무와 합류하여 14명이 함께 산행하게 되었다.

▲ 1 청난사에서 바라본 백월산 고스락. / 2 고스락에 선 일행. / 3 사당 안에 모신 홍가신 등 다섯 충신의 위패와 제물. / 4 절골의 용궁수.

산비탈에서 시작한 산길은 곧 등성이에 오르고 줄곧 숲속의 등성이만을 고집하며 이어졌다. 도중에 들린 산혜암도 용화사처럼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길에 들어서서 30분쯤 되어 큰 바위턱 조망대에 올라섰다. 여기에는 크나큰 바위덩이가 대여섯 개 널려 있다. 동쪽과 북쪽이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어 시원하고 조망이 좋아 쉼터도 된다. 큰 바위턱 조망대에서 조금 오르면 좀 까다로운 바윗길이 나선다. 여기를 지나면 곧 나무로 된 하늘사다리가 시작된다. 50m가 훨씬 넘을 것 같은 계단이 하늘까지 뻗칠 듯 걸쳐 있다. 이 사다리를 오르면 곧 백월산 머리부분이다.

백월산 머리에 올라서면 첫머리에 꽤 넓은 꽃밭이 있고, 고천대제 제단과 높다란 정자(조망대)가 있다.이어 청난사(천제단터), 순찰대 건물, 코끼리바위를 지나 봉화대 모양의 돌탑과 표석이 있는 고스락에 이른다. 백월산에서는 북으로부터 삼준산 덕숭산 가야산 용봉산 봉수산 오서산이 조망된다.이 날은 날이 흐려 바다가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


▲ 1 절골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는 한근철 부군수. / 2 백월산 머리 청난사 옆에 있는 홍주 청난사 중수비와 한 근철 부군수, 임철용 계장. / 3 백월산 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코끼리바위.
우리는 절골길로 하산했다.절골은 위 부분이 좁은 바위 골짜기로 되어 있다.여기에 무속인들이 기도에 정화수로 쓰이는 용궁수가 있고,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도 있다. 골짜기 아래 부분에 널찍한 광장이 있다. 여기에 ‘백월대’라 쓴 큼직한 자연석이 있다. 여기에 격식을 갖춘 또 다른 청난사가 있고 청난비가 있다. 여기서 산혜암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여기서 골짜기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월산파크모텔을 지나 5번 군도에 닿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곧 산행을 시작했던 미력골 고개의 용화사 들머리가 된다. 산행시간은 2시간30분쯤 되었다.

산행을 마친 뒤 우리는 남당리 바닷가로 옮겨 장동림 역장과 친구인 이병천 홍성산림조합장이 베푼 귀한 갑오징어회 꽃게탕 광어회와 찰밥으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뒤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둘러보는 기회도 가졌다. 그래서 우리의 백월산 산행은 더욱 뜻있고 감동적인 추억으로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서 은행 지점장도 역임한 바 있는 장동림 역장과 임철용 계장은 내내 백월산에 관한 많은 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매우 귀중하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산행길잡이(마패봉 포함)

○바위턱 조망대길
(하늘사다리길) 용화사(미력고개)~송전탑~산혜암~바위턱 조망대~하늘사다리~팔각정 꽃밭~청난사 비~코끼리바위~고스락 <약 1시간30분 소요>
○절골길(용궁골길) 미력고개 월산파크모텔~절골 들머리~청난사~용궁약수~코끼리바위~고스락 <약 1시간30분 소요>
○구항면길 구항면청에서 시작하여 주능선을 타고 고스락까지 종주하는 길.<약 2시간 소요>
홍성읍 오관리에서 산머리의 순찰 통제소까지 차가 다니는 임도가 나있다.

교통

철도 고속도로 국도 어느 것을 이용하던 홍성을 먼저 찾아가야 한다. 홍성에서 5번 군도를 이용하여 용화사와 절골 입구가 되는 미력고개로 가면 된다. 군내버스가 5번 군도 미력고개를 지나 다닌다. 구항면에는 군내버스가 자주 다닌다.

명소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만해 한용운 선생은 기미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공약3장을 쓰시기도 한 훌륭한 독립운동가이셨다.또 ‘님의 침묵’으로 민족혼을 일깨운 저항시인이셨고 불교개혁의 주장을 펼치신 스님이시기도 했다.

백월산에서 가까운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생가가 복원되어 성역화되어 있다. 여기에 생가는 물론 사당, 전시실, 만해체험관, 시비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홍성8경 중 제3경.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 사상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시다.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나신 장군은 나이 15세에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많은 땅을 소작인들에게 분배한 위대한 선각자이셨다.

성동사관학교 등을 설립하고 대한독립군단, 한족연합회 등을 조직 결성하셨으며, 임시정부 요인으로 계셨고, 동포의 단결에 힘썼으며, 항일투쟁의 지도자이셨다. 고려공산청년회원에 의하여 암살당하셨다.

역시 백월산에서 가까운 갈산면 행산리에 생가가 복원 성역화되어 있다. 넓은 터에 백야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본체, 문간채, 사랑채로 된 생가는 물론 사당, 전시관, 동상, 전승기념비, 관리사가 들어서 있다.


/ 글·사진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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