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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술과 가을이 함께 무르익는 경기도 포천

최두호 2017. 11. 23. 13:59

 

 

[흥] 술과 가을이 함께 무르익는 경기도 포천

 

                                                                                                                   [매일신문 2017.10.26 ]

 

너를 만나는 날, 나는 취할 것 같구나

 
산사정원의 백미인 ‘세월랑’에는 500여 개 술 항아리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 들어갔던 웅덩이에 빗물과 샘물이 유입되면서 형성된 포천 아트밸리 ‘천주호’.
 
포천 아트밸리 내 모노레일
 
산사원 전통술박물관

나뭇가지 끝마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10월의 끝자락다.

일부만 색색의 옷을 갈아입어 단풍과 푸른 잎이 공존하는, 그래서 대구에서는 아직 완연한 가을을 만끽하기엔 좀 이른 시기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을 찾아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가까운 경기도 포천에 닿았다.  거리는 멀어 대구경북에서는 찾기 힘든 곳이지만, 그런 만큼 여태 알지 못했던 명소들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포천에서는 술과 가을이 함께 무르익어 가는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200년 된 산사 나무 아래 일렬로 늘어선 500여 개의 항아리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세월과 함께 숙성을 기다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또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폐채석장의 환경을 복원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포천 아트밸리 역시 아름다운 자연과 조형물이 잘 어우러져 있어 찰나의 가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음식이자 약, ‘술’

옛사람들에게 술은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고 ‘약’으로 인식됐다. 신에게 바치는 음료이자,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고, 고통을 잊게 해 주며, 기쁨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 바로 술이다.

경기도 포천 운악산 기슭,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위치한 ‘산사원’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전통주 양조장이자 술 문화 갤러리다. 연평균 5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고, 이 중 10%는 외국인 방문객이다. 국내 대표적인 ‘체험형 산업 관광지’로 손꼽힐 만하다.

평일 날 오후 찾은 산사원은 꽤 한산했다. 주말에는 관광버스가 줄이어 들이닥쳐 단체관광객들은 사전 예약이 필수인 곳이지만, 평일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산사원에 들어서면 전통술박물관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성인 3천원의 입장료를 내면(미성년자 시음 불가`무료 관람) 20여 종의 다양한 술을 무한정 시음 가능하고, 한국의 향토주에서 전통 가양주 제조법, 세계 각국 술의 역사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매력은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 다양한 전시물과 함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전시가 아닌 ‘스토리’ 구성을 통해 문학과 어우러진 맛깔난 볼거리,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그중 ‘술이 있는 풍경’은 방문객에게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게 만든다. 주말에는 사전 접수를 통해 가양주 빚기를 체험해볼 수도 있다.

<주안상>

귀한 손님 주안상은 해주반에 전골냄비/ 건건안주 진진안주 고루 갖춰 약주 내고/ “봉순아! 사랑에 주안상 내 가거라.”// 마름대접 각별해야 한 해 농사 잘될테니/ 개다리상 옹기주발에 열무김치 부침개라도/ 걸걸하게 차려내어 넉넉하게 탁배기상/ “양평댁! 봉놋방에 탁배기상 내다주게.”/ 우리 낭군님 울적할 땐 사각상에 놋주전자/ 갖은 야채 제육편육 담백하게 소주상이예요./ “놓아 두어라. 내 손수 들고 가마. 뒷설거지 잘하고 들어가 쉬어라. 너도 오늘 곤하겠구나.”(산사원 술이 있는 풍경 2)

◆경치에 취하고, 술 익는 냄새에 더 취한다

박물관도 좋은 볼거리지만 산사원의 진짜 매력은 정원에 숨겨져 있다. 1만3천200여㎡(약 4천 평)의 대지 위에 500여 개에 달하는 술항아리들이 줄지어 놓인 ‘세월랑’을 비롯해 부안당, 취선각, 우곡루 등 다섯 채의 한옥이 자리 잡고 있다.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호젓한 장소다.

그중 아름다움의 극치는 세월랑 주랑이다. 어른 두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한 650ℓ의 대형 옹기 독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도 볼거리지만, 이 장독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전통 증류주 숙성고인 세월랑에서는 굳이 코를 킁킁거리지 않더라도 술이 익어가는 고릿고릿한 냄새가 코끝을 따라다닌다. 알코올 도수 55도의 술이 숙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 술 담그는 마을답다. 세월랑 너머로 보이는 운악산에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어 술 익는 주랑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세월랑은 위에서 보면 크게 밭전(田) 자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여든여덟 개의 소나무 기둥을 휘어진 그대로 껍질만 벗겨내고 지붕을 이었을 뿐 벽이 없다. 증류주 숙성에 최고의 환경을 조성할 뿐 아니라, 마치 소나무 숲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사정원에서는 그 외 포석정과 같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상곡수’, 산사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각종 모임과 연회를 펼칠 수 있는 ‘우곡루’, 풍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취선각’, 근대 양조장의 모습을 구현해 놓은 ‘부안당’ 등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작은 연못에 반영이 비친 우곡루의 모습과, 우곡루 2층 누각에 앉아 바라보는 세월랑과 운악산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인 ‘풍류’에 함빡 젖어들기에 충분한 장소다. 20분 정도 거닐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화강암 절벽 사이 만들어진 예술촌

산사원에서 20여 분 남짓 떨어진 포천 아트밸리는 대표적인 지역 재생 사례로 손꼽힌다. 중학교 교과서에 언급돼 있을 정도다. 방치돼 있던 폐채석장을 그대로 활용해 자연 속에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중 가장 압권은 ‘천주호’다. 인위적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아니다.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 들어갔던 웅덩이에 빗물과 샘물이 유입되면서 형성된 호수다. 에메랄드빛 청정 1급수 물이 담긴 호수 위를 병풍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둘러싼 모습이 화보처럼 예쁘다. 천주호는 전지현`이민호 주연의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포천 아트밸리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경사도가 좀 있어 20여 분 남짓의 짧은 거리지만 걸어 올라가긴 만만치 않다. 대신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천주호 주변으로는 화강암을 소재로 옛 채석장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공원과 다양한 전시관이 있다.

2014년부터는 밤하늘의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이 개관해 아이들에게는 체험교육의 명소로,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4D 영상을 통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마치 실제 보는 것처럼 바라보면서 별자리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교육전시센터에서는 다양한 예술작품 감상과 화강암 자연 학습체험, 공예품 만들기 등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만약 포천 아트밸리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정보를 확인하고 계획을 잡으면 좋다. 꾸준히 국악, 클래식, 밴드공연,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데 천주호 45m 절벽을 무대 배경처럼 두르고 있고 야간 경관조명이 아름다워 색다른 공연을 즐기는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Tip

▶포천은 다양한 관광지가 많아 1박 2일 여행 코스로 손색이 없다. 최근 개통한 부소천협곡에서 비둘기낭폭포까지 이어지는 1코스 ‘한탄강벼룻길’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닮은 지질 트레일이다. 그 외에도 억새꽃축제로 유명한 명성산과 산정호수, 길이 130m 서스펜션브리지가 인상적인 어메이징파크, 광릉 국립수목원, 포천허브아일랜드 등을 둘러보면 좋다.

▶산사원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개방한다. 설과 추석 휴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무휴다. 식당이나 매점이 없기 때문에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챙겨가면 좋다.

▶포천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다. 포천이동막걸리와 포천이동갈비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동갈비는 지명을 딴 것으로, 갈비와 갈비의 나머지 살을 이쑤시개에 꽂아서 연결시켜 만드는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이동막걸리는 단맛과 어우러져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글 사진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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