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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성구의 수성산맥 ...1. 2

최두호 2017. 11. 21. 12:28

 

 

언제 :  2012년 5월10일 목요일

산행지 : 수성구일대 (대구시 수성구만촌동1,2,3동,범어1.3.4동,고산2동지산1동.황금1,2동소재)

산행경로 : 망우공원 - 형제봉 - 두리봉 - 무학산 - 범어산(범어공원) - 수성구민운동장

 

      ☞  망우공원버스종점(노동청앞814번) - 싸이클경기장 - 육교건너 - 고모로(호국로)

        - 형제봉등산로입구- 弟峰 - 체육시설 - 兄峰(형제봉) - 형제1헬스장 - 모명재

        - 대륜중,고 - 담티재 - 육교지나 연호역방향- 두리봉초입(담티고개 방호벽끝지점)

        - 핼리포트장 - 만촌우방팔래스갈림길 - 체육시설 - 방공포병학교

         -두리봉,조일골갈림길 - 두리봉 리턴(두리터널) - 조일골 - 산불감시초소

        - 신천지타운 갈림길- 숲속의작은행복입구(황룡사)- (청호-경찰청터널공사현장) 우측

        - 무학산초입- 무학능선- 무학헬스클럽- 무학산- 황금 캐슬골드파크

         -황금사거리 50m전- 범어공원(범어산)초입- 벙어능선- 체육공원1,2,3- 수성구민운동장

소요시간 : 오후2:30 ~오후8 :10 (약5시간40분)

 

 

◈산행후기 ◈

 : 우리가 산을 오르며 항상 이름난곳 멀리있는곳 또는

대구하면 팔공산이나 앞산을 우선생각한다.

                 또한 각자가 살고있는곳에서 가까운곳은 그져 가벼운 운동내지는

산책로로 간주하기도한다.

                 허지만 우리곁에 가장가까이 있으면서 보석같은 트래킹로드가 있다는걸 지나치거나 생각조차 하지못하고있다.

                 해서 특히나 내가거주하고 있는 수성구의 산들을 연결해보니

아주 멋진 중,장거리의 트래킹코스가 이어진다.

                 응용해서 요래조래 몇차례해보니 여러가지의 다양한 코스와

시간에따라 조절가능한 등산로가 연결된다.

                 혹 이산행기를 접하는 분들도 참고하여 아름다운 운동

트래킹을 즐길수있길 희망해본다.

또한 수성구라는 학군과 이름에 걸맞게 수성산맥을 등지고 있는

명문학교와 국가시설,박물관,그리고각종 문화재가 참으로 많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한번 풍수지리를 잘모르지만 좋은기반을 갖추고 있음을 느껴본다

 

 

수성산맥 위성개념도

 

수성산맥 ...1 (형제봉)

형제봉구간▶망우공원종점(무열대옆호국로) - 형제봉초입 - 제봉 -

 형봉(무열대,국정원갈림길) -  형제봉헬스클럽

- 모명재 - 명복공원 - 대륜고 - 담티고개 - 두리봉초입

☆ 형제봉의 전설(수성구의 전설에서 인용)

   2군사령부 동쪽에 두개의 산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하나는 좀 높고 하나는 좀 낮아 사람들은

   이것을 형제봉이라 부른다. 
   이 두 봉오리에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이곳에 힘센 장군 남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둘이 서로 산쌓기 내기를 했다. 
  오빠는 옷섶으로 흙을 날라다 산을 쌓기 시작했고 여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산을 쌓기 시작했다. 

  내기의 방법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룻동안 누가 더 높은 산을 쌓는가 하는 것이다.
  흙을 담아 나르는 것의 크기가 오빠의 옷섶보다는 여동생의 치마폭이 훨씬 넓어 그런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려는데 누이동생의 산이 오빠산 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심술이 난 오빠가 동생산을 짓밟아 버려 높던 누이동생의 산이 뭉퉁해 졌다. 

  그래서 끝이 뾰족한 산을 형봉, 다른 밋밋한 산을 제봉 또는 매봉이라 부르고

  이 산 아래를 형제봉골 또는 양지마을이라 부른다. 

  또한 건너편 동대사를품은 뒷산은 어머니산에 해당하는 모봉이다.

  이 골짜기에서 남부주차장으로 나가는 계곡을 지장골이라 부르는데

  옛날 이곳에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사가 있었다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됐다.

  또 지장골, 형제봉골 일대를 통틀어 뱀골이라 불렀으니 옛날 이 일대에 뱀이 많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현재 군부대 안에 있는 못이름이 사동지인 것도 그 때문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을 경청하고프면 우측지도의 정토회관으로 가시면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설법을 들을수있슴다.

 

제일위 우측사진이 고모령에서 넘어가는 팔현마을

(고모령 : 現인터불고호텔par3골프장우측 도로언덕)입니다.

여기서 형제봉 전설에 기인하는 고모령의 사연을 짚고 넘어가봅니다.

  

 

 

 

 

 

 

 

 

 

 

 

 

 

 

 

 

 

 

 

 

 

 

 

 

 

 

 

 

 

 

 

 

 

두사충과 모명재 

 

대구 시내에서 경산으로 통하는 대로변 오른쪽 형제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모명재(募明齋)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후손이 선조를 위해 세운 것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杜陵)사람으로 임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과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나왔다.

 

그가 맡은 일은 수륙지획주사(水陸地劃主事)라는, 지세를 살펴 진지를 펴기 적합한 장소를 잡는 임무였다. 따라서 그는 이여송의 일급참모로서 항상 군진을 펴는데 조언해야 했고 조선과의 합동작전을 할 때 조선군과도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당시 우리나라 수군을 통괄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아주 친했다. 임란이 평정되자 두사충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의 매부인 진린(陳璘)도독과 함께 우리나라로 나왔다. 이때 두사충은 충무공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충무공은 우리나라 장수도 아닌 외국사람이 수만리 길을 멀다 않고 두번씩이나 나와 도와주자 감격하여 두사충에게 한시를 지어 마음을 표했다.

한문으로 쓴 그 시의 뜻은 다음과 같다.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함께하고(北去同甘苦)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하네(東來共死生)

성 남쪽 타향의 달빛 아래(城南他夜月)

오늘 한잔 술로써 정을 나누세(今日一盃情)

 

시의 내용을 보면 충무공이 두사충을 아낀 내용이 잘 드러난다. 이후 정유재란도 평정되자 두사충은 압록강까지 매부 진린을 배웅한 후 자기는 조선에 귀화했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은 두사충에게 대구 시내 중앙공원 일대를 주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오게 되자 두사충은 그 땅을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계산동 일대는 두씨들의 세거지가 되었는데 두씨들은 계산동으로 옮기자마자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었고 그 때문에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르게 됐다.

 

그러나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고향이 그리운 법,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두사충이었지만 고국에 두고온 부인과 형제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두사충은 최정산(最頂山=현재의 대덕산)밑으로 집을 옮겨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大明洞)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일 초하루가 되면 고국의 천자쪽을 향해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나이가 더 많아지자 어느 날 자기가 젊었을 때 대구 근교를 샅샅이 뒤져잡아 둔 묘터를 아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가마를 타고 묘터가 있는 고산(孤山)으로 향했다. 그러나 워낙 쇠약한 몸이라 도저히 고산까지 가지 못하고 담티재에서 되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두사충은 아들에게 오른쪽의 형제봉을 가리키면서 저 산아래 계좌정향(癸座丁向)으로 묘를 쓰면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했다.

 

따라서 그의 사후 자손들은 두사충이 잡아둔 명당까지 가지 못하고 묘소를 형제봉 기슭에 쓰게 되었고 두사충이 잡아둔 묘터에는 나중에 고산서원이 들어섰다.

 

 

 

☞ 참고 두사충과 모명제 클릭 http://cafe.daum.net/koreapungsu/DTuL/38?docid=16yn0|DTuL|38|20070709163754&q=%B8%B8%C3%CC%B5%BF%B5%CE%B8%AE%BA%C0

 

 

모명재 기둥에 새겨져있는 한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두사충에게 오언절구(五言絶句) 형식의 한시를 지어 마음을 표한것을 기둥에 새겨놓았다

 

奉呈杜僕야(봉정두복야)    두복야에게 드리는시 

         北去同甘苦(북고동감고)     북으로 가서 고락을 함께하고

         東來共死生(동래공사생)     동으로 가서 생사를 같이했네

       城南他夜月(성남타야월)     성의 남쪽 타향에 들뜬밤에

              今日一盃情(금일일배정)     오늘 한잔의 술로써 정을 나누세

사나이들의 우정이 넘치는듯한 진한 향기가 우러나오는듯 멋있다.

 

 

좌측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이인수가 세운것이라 하는데

임진왜란때 이순신과 두사충의 교류가 후세에 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을 알수있는 비석이다.

 

 

 

 

대구시립 명복공원과 대구구치소입구

 

 

참고 2013년 5월경 완공예정인  영남제일관 ~ 모명제 누리길 조성계획

누리길 조성(안)

  • 코스별(안)
  • 제1코스 : 모명재길(두사충의 삶을 통하여 오래된 한중 문화관계를 되짚어봄)
  • 제2코스 : 형제봉길(형제봉에 얽힌 전설을 통하여 오늘의‘효’를 생각)
  • 제3코스 : 생태탐방로(자연 경관을 최대한 살리는 숲 탐방코스 조성)
  • 제4코스 : 영남제일관길(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영남제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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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산맥..2(두리봉)

    두리봉 구간 : 담티고개(두리봉초입) - 헬리포트장 - 만촌우방Apt갈림길 - 체육공원

    -반공포병학교정문 - 두리봉 -조일골 - 산불감시초소 - 황룡사 - 지산삼거리

    - (경호-경찰청구간공사현장옆) - 무학산초입

     

    ※ 두리봉구간은 육군반공포병학교를 끼고 담티고개(만촌우방팔레스)에서 지산,범물동까지

    이어지며 수성산맥구간중 가장 길고 또한 아름답고 걷기좋은 코스이다 .

    두리봉을품고있는 학교로는 옛산업정보대학이 새롭게바뀌어 수성대학교로 탄생하였고

    대륜중고,영남공고,오성고,정화여고,경북고가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월드컵경기장과 앞으로 들어설 야구장이 두리봉 건너편에  마주보고있다.

     

     

     

     

    담티고개

    담티재의 유래또한 두사충이 젊었을때 대구근교를 답사하며 묘터를 아들에게 알려주기위해 가마를 타고 고산쪽으로 가다가 워낙 몸이약해 지금의 담티재

    (두사충이 넘으려고 몇번 시도했지만 항상 담이차고 힘들다고해서 그뒤 "담티재"로 불려졌다함) 에서 되돌아 왔다고한다

    (또다른 유래로는 일재시대 때 신작로를 만들게 되었는데 대구와 경산간에 산이 막혀있어서 많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산을 뚫었다고한다.

    이때 둘러싸인 산을 밀고 길을 만든것이 집과 집사이의 담을 티우듯이 산을 뚫어 만들었다하여 인부들사이에 그렇게 불리어오던것이 그대로 전해져내려온것이라고도한다) 

     

    담티고개 지나 고산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방호벽 끝나는지점에서 수로를 끼고 올라간다

     

    만촌우방 아파트맞은편 9부능선에 이런 불상이세워져있다.

     

     

     

     

     

    헬리포토 이후부터 등산로는 그야말로 실크로드같이 걷기에 전혀부담없이 조일골까지 이어진다

     

     

     

    안구정화에도 레~~알 굳이다

     

     

     

    요즘의 트래킹의 대세인 올레길 둘레길 등등  어디에 견줘도 전혀손색없는 아주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방공포병학교로 연결되는길을 최근 수성구청에서 우회길 작업을하여 잘다듬어놓았다

     

     

     

    두리봉은 조일골로 진행하는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두리봉터널 직전의 정자가있는 봉으로 계속진행하면

    오성고,정화여고 혜화여고,영남공고,수성대학교  등으로 이어진다.

    두리봉에 찍고 리턴하여 다시 이지점으로 돌아와 조일골로 고고씽!!!

     

    두리봉 418m

    닭의 머리인 두유(頭酉)가 두류로 다시두리봉으로 변화된듯한것으로보아

    아마 이산의 형상의 새나닭의머리 형상에서 이름지어진듯하다

     

     

     

    조일골 진행중 경북고 교정

     

     

     

     

     

    숲사이로 황금교가교가 아스라히 드러난다,

     

     

    길을 걷던중 만난 검은고양이 '네로'와 약 5분간 대치중 내가먼저 꼬랑지내리고 물러남

    니가win이다 네로야...

     

    조일(朝日)골

    조일골(죄일골)은 골짜기가 동남쪽으로 틔어있어 아침에 해가뜨면

    가장먼저 따뜻하게 비치는 곳이라하여 조일골이라 부른다.

     

    첨단산불감시초소(태양열등을이용 참한곳에 자리잡고있음)

     

     

     

     

     

     

     

    용지봉과 범물아파트단지

     

    묘지군을 지나서 떨어지면 황룡사입구의 가든레스토랑 작은행복 들어가는 입구에 내려선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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