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평광동 사과나무밭 사이로 팔공산녹색여가 문화센터 진선아 간사와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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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스 | 평광동 왕건 길
한국 최고령 홍옥나무가 있다
평광동 입구(효자 강순항나무)~평광초등학교~평광지~모영재(신숭겸장군유허비) 왕복~재바우농원(우리나라 최고령 홍옥나무)~첨백당(광복소나무)~평광동 버스 종점까지 약 7.5km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코스도 2코스와 마찬가지로 왕건과 신숭겸 얘기가 얽힌 코스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최고령 홍옥사과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라고 하면 한때는 으레 사과를 떠올렸는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어느 덧 사과생장 북방한계선이 경기도 고양까지 올라갔다는 얘기가 들린다.
유일하게 대단위 사과밭이 남아 있는 평광동에 들어서자마자 마을입구 도로중앙에 커다란 왕버들이 길손을 반긴다. 수령 200년을 훌쩍 넘긴 나무다. 강순항은 조선시대 실존인물로 어릴 때부터 효행이 지극했다고 전한다. 조정에서는 그의 효행을 기려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고자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버들나무를 ‘효자강순항나무’라 명명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조그만 개천이 흐르고 있다. 실왕천 혹은 시랑천이라 부르는 개천이다. 바로 나무꾼이 왕건을 보고 찾지 못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그 곳이다. 주민들은 마을길 자체에 ‘왕건임도’라고 붙여놓았다.
- ▲ 4코스에 있는 신숭겸장군유허비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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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온통 사과나무로 뒤덮여 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따기 수월케 가지를 밑으로 묶어 내린다. 늘어진 가지는 기이한 모양을 한 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향긋한 사과 내음을 맡으며 그 사이로 지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길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진선아 간사는 “4코스는 사과꽃이 피는 4~5월과 수확을 하는 9~11월에 걷기 딱 좋은 길”이라고 추천했다. 4월에는 흩날리는 사과꽃잎과 향기를 맡으며 걷고, 10월 전후엔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며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낭만이 넘치지 않나.
마을 중간 중간에 효자(열)비도 세워져 있다. 효자효녀가 넘쳐나는 동네답게 마을 분위기도 차분하다. 사과밭에는 수확을 앞두고 농부들이 사과밭에서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다.
매년 신숭겸 장군 제사를 지내는 모영재(慕影齋)에 도달했다. 그 뒤로 약 5분 거리엔 신숭겸장군유허비가 있다. 후손들이 신숭겸 장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찾고 있는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솔숲 사이로 들린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팔공산 언저리라 자연의 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따따따따다~따따따따다~”하고 연속으로 쪼고 있다.
다시 돌아 나와 광복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광복소나무는 효성이 지극한 선비 우효중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서 후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첨백당 바로 앞에 있다. 우효중의 후손들이 광복을 기념해서 식수한 소나무인 것이다.
그 뒤로 우리나라 최고령 홍옥사과나무가 있는 재바우농원이 있다. 재바우농원엔 2009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홍옥사과나무와 뉴턴의 사과나무로 불리는 켄트의 꽃(Flower of Kent) 품종의 사과도 보인다.
4코스도 이곳이 끝이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100m 정도만 내려가면 대구 시내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 종점이 있다.
- ▲ 대구 올레 팔공산길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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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코스 | 단산지 가는 길
고분군 안에 들어서면 천오백 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
불로동고분군 공영주차장~고분군 순회~경부고속도로 굴다리~영신초중고 입구~단산지~만보산책로~봉무동마을길~강동새마을회관까지 6.8km에 3시간가량 걸린다.
불로동고분군과 단산지로 대표되는 길이다. 불로동(不老洞)도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홀로 피하다가 이 마을에 이르니, 어른들은 피난 가고 ‘늙지 않은’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어 불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발지는 불로동고분군 주차장이다. 널찍한 주차장에 정자도 마련돼 있다. 걷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하는 공간 같다. 한쪽에서는 지금 한창 걷는 길을 박석으로 포장하느라 공사 중이다. 박효진 간사는 “고분 사이로 걸을 땐 마치 삼국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분과 일체감이 됐는데, 박석 위로 걸을 땐 방관자적, 객관적 입장에서 고분을 바라보는 느낌이어서 오히려 일체감을 느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 ▲ 탱자나무가 담벽 역할을 하고 있는 6코스 마을길을 박효진 간사 등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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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공사장을 지나 고분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박 간사가 얘기했듯이 정말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고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크기도 왕실의 고분만큼 큰 것들 수백 개가 불룩불룩 솟아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다. 조성연대가 5~6세기로 추정되는 불로동고분군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현재 이곳에는 크고 작은 200여 개의 삼국시대 무덤이 얕은 두 갈래 구룡의 중앙을 따라 퍼졌다. 반원형 봉토를 이루고 있는 무덤의 지름은 대체로 15~20m이다. 주검을 넣은 곳은 냇가의 돌 또는 깬 돌을 이용해 네 벽을 쌓고 시신을 넣은 후 판판하고 넓적한 돌로 뚜껑을 덮은 위에 자갈을 얹고 흙을 덮었다. 이곳에서는 묻힌 사람의 뼈가 흔적으로만 발견되기도 했으며, 말 그림이 새겨진 그릇의 뚜껑, 말재갈, 말의 가슴이나 궁둥이를 장식하는 치레거리, 화살촉 등이 껴묻거리로 발견됐다. 특히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 상에 올리는 상어의 등뼈가 발견됐다. 이러한 큰 무덤들은 대구의 달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과 함께 불로동 지역에도 매우 큰 지역 세력이 살았음을 알려주는 증거물이라 할 수 있다.’
고분 사이로 난 길 주변엔 야생화 개망초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 길손을 맞고 있다. 박 간사는 “사적 제262호인 불로동고분군은 사계절 내내 다른 색깔의 야생화들이 피어 길손들을 지겹지 않게 한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울긋불긋 핀 야생화들이 겨울이 오기 전 맘껏 제 색깔을 뽐내는 듯했다. 억새도 간혹 군락을 이뤄 가을 분위기를 더했다. 고분과 마을 사이의 공간엔 참나무와 소나무 등이 우거져 방패막 역할을 했다. 고분군 끝 지점엔 201호기라고 적힌 고분이 나왔다. 아마 이곳의 고분이 전부 201기인 듯했다.
- ▲ 봉무공원이 있는 6코스 단산지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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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고분군이 끝나고 경부고속도로 고가 밑으로 난 길을 건너자마자 다시 봉무동고분이 나왔다. 이 동네는 완전 고분동네 같다. 안내문에는 ‘동서 600m, 남북 300m 넓이에 약 132기의 고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길은 그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영신초중고교를 거쳐 단산지(丹山池)가 있는 봉무공원으로 접어들었다. 단산지는 붉은 흙이 나오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저수지 모양이 꼭 손가락같이 생겼다. 한 바퀴 도는 코스 길이가 3.9km로 주민들이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엔 생태학습관·무궁화원·나비생태원 등과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저수지 주변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여름에도 걷기 좋을 듯했다.
단산지가 끝나는 지점부터 산길로 연결됐다. 중간 이정표에 ‘만보산책로’라고 나온다. 아마 이 구간에서는 만보산책로와 대구올레 팔공산길이 중복되는 듯했다. 동네 뒷동산 같은 능선을 지나 다시 마을길로 내려가는 길도 정취가 있다. 밭이나 길 주변 담장이 전부 탱자나무로 엮어 있다. 탱자나무 가시 사이에 노란 탱자가 여기저기 달려 있다. 그 끝지점에 6코스 시종점인 강동마을회관이 나온다. 버스 종점이기도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