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부인당 산령각
황씨 부인당에는경상북도 영양군에 전해내려오는 전설이다.
전설의 주요 내용은 신랑의 어리석은 오해로 인첫날밤을 치르지도 못하고
버림받은 여인이해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다가 한을 품고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황씨부인당 탱화
[위에 사진이 일월산 " 황씨 부인당 " 탱화 입니다 ]
지금부터 약 600여 년전 순조때 청기면 당리에 살던 우씨(禹氏)의 부인 평해 황씨(平海黃氏)는
남편과 혼인하여 금실좋게 살았으나 딸만 9명을 낳아 시어머니의 학대가 극심했다.
황씨 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얼굴을 들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대 할 수 없어
아홉째 딸이 젖 뗄 무렵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우씨댁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이 무렵 일월산에는 산삼이 많이 났는데,
산삼 캐는 사람이 산삼을 캐려고 자기가 지어 놓은 삼막(蔘幕)에 갔더니....!
황씨 부인이 자기의 삼막에 소복단좌(素服端坐)하고 있었다.
더럭 겁이 나 되돌아서려는데,
황씨 부인이 말을 하기에 자세히 보니 분명 살아 있는 황씨 부인이었다.
황씨 부인은 자기 시어머니와 남편의 안부며 딸의 안부를 묻고는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산삼 캐는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으나,
어쩐지 마음이 섬뜩하여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우씨댁에 가서 그 이야기를 전하였다.
금실좋게 살던 우씨는 부인을 잃고 삶의 재미를 모르고 살던 중
자기 부인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삼막에 가보니~~ !!
과연 자기 부인이 앉아 있어,
“여보!”하고 달려가 손을 덥석 잡으니 부인은 사라지고 백골과 재만 남았다.
남편은 탄식을 하면서 백골을 거두어 장사지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황씨 부인의 한을 풀기 위해 그 자리에 당을 지어 주고 ‘황씨부인당'이라 했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로는 약 150년 전 순조 때 청기면 당리에 우씨 청년이 일찍 과부가 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오두막집과 적은 땅마지기만으로 농사를 지으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이웃마을 평해 황씨와 결혼하여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며 살았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사는데,
아들의 지극하던 효성이 약해지자 사랑을 빼앗긴 청상과부 시어머니의 시샘과 질투는 더욱 심해져서.....
며느리의 조그만 실수도 용서하지 않고 학대했다.
그리하여 황씨부인은 차라리 저승에 가서나마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남매를 집에 남겨두고 우물에 가는척 집을 나와 일월산으로 들어갔다.
그 뒤 산삼 캐는 사람이 움막 안에서 목을 매고 죽어 있는 낯선 부인을 발견하고 놀라서 산을 내려왔다.
그 때 이 마을에 살던 영천 이씨 명존이란 사람이 황씨 부인이 현몽한 대로 남편에게 알리니,
남편이 황씨 부인의 유골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그 후 황씨 부인이 다시 이명존의 꿈에 나타나
“여보시오. 나는 어린 자식을 두고 일찍 목숨을 끊은 죄로 저승에서도 방황하는 혼령이오니,
가난한 우리 남편을 대신해서,
내 외로운 혼령이 쉴 수 있도록 당집을 세워 주시면 여한이 없겠나이다.”라고 말하여,
이명존이 황씨 부인의 현몽대로 당집을 지어 그녀의 원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영양군 일월산 밑에 황씨라는 처녀가 살았다.
마을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총각이 둘 있었는데,
그중 몸은 약하지만 마음이 고운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식을 올렸다.
혼례를 올린 날 신랑은 뒷간에 갔다가 오는 길에
마치 칼을 들고 자기를 기다리는 듯한 사내의 모습이 신방에 언뜻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
그 날로 타관으로 도망쳐 버렸다.
신랑이 타관으로 도망친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녹의홍상에 족두리를 쓴 채로 하루이틀 기다리기를
오년여 계속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낯선 마을에 정착한 신랑은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 지방에 있는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날 때 마다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죽기를 네 번이나 했다. 무당을 찾아가 사연을 물어 본즉,
죽은 귀신이 아직도 너를 기다리기 때문에 네 자식은 모두 죽었고,
모두가 사는 방법은 귀신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사내는 무당의 말대로 고향의 옛집을 찾아가서 폐가가 된 신방에 들어가보니 신부는 초야의 모습
그대로 시체가 되어 풀더미 속에 앉아 있었다.
사내가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신부가 나타나 나를 업어다가 일월산 산마루에 앉혀달라고 부탁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신부의 부탁대로 하자 죽은 신부는
“이제야 하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에 사내는 산에 있으면서 바위를 쪼아 족두리를 쓴 신부 모양의 석상을 만들고,
작은 사당을 지어 조석으로 봉양하다가 돌신부 옆에서 눈을 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946년 부산에 살던 한 아낙네가 병에 걸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한 여자가 나타나,
“나는 일월산 황씨부인인데, 나를 파내서 섬기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일월산으로 함께 가서 초막을 짓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발이 닿는 대로 가다가 웅덩이에서 족두리를 쓴 석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당집을 짓고 석상을 섬겼다.
그 이후 아낙네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아울러 황씨 부인당의 영험을 받아서 용한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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