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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 이씨 관향의 역사

최두호 2017. 11. 12. 10:34

 

*.경주이씨 [ 慶州李氏 ]

  • 본관명

    경주(慶州)

  • 성씨명

    이씨(李氏)

  • 본관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慶尙北道 慶州市 )

  • 본관이칭

    월성이씨(月城李氏)

  • 시조명

    이알평(李謁平)

본관연혁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

 

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

 

(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

 

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

 

(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

 

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

 

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

 

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경주이씨(慶州李氏)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으로 신라의 좌명공신(佐命功臣)이었다. 경주이

 

씨 대종보(大宗譜) 상계편에 박혁거세(朴赫居世) 때 아찬(阿粲)에 올랐고, 32년(유리왕 9)

 

 양산촌(楊山村) 이씨(李氏)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536년(법흥왕 23)에 문선공(文宣

 

公)으로 시호(諡號)를 받았고 656년(무열왕 3)에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대(繼代)를 실전하여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묘지

 

(墓誌)를 쓸 때 원대손(遠代孫)인, 신라 때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를 적은 것이 연유가 되어 그가 중조(中祖)가 되었다.


우리나라 이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경주이씨 이알평의 후손에서 분관한 것이다.


이알평의 후손에서 이개(李開)의 합천이씨(陜川李氏)와 이위(李渭)의 차성이씨(車城李氏)

 

가 갈라졌다. 중조인 이거명의 후손에서는 증손 이윤원(李潤遠)의 후손이 가평이씨(加平李

 

氏)로, 5세손 이주좌(李周佐)의 후손이 아산이씨(牙山李氏)로, 6세손 이우칭(李禹偁)의 후

 

손이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양식(李陽植)이 우계이씨(羽溪李氏)로, 17세손 이영행(李永

 

倖)이 진주이씨(晉州李氏)로, 22세손 이반계(李攀桂)의 후손이 원주이씨(原州李氏)로 나뉘었다.

 

분적종 및 분파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15세손 이인정(李仁珽)


이암공파(怡庵公派): 16세손 이관(李琯)


익재공파(益齋公派): 16세손 이제현(李齊賢)


호군공파(護軍公派): 16세손 이지정(李之正)


국당공파(菊堂公派): 16세손 이천(李蒨)


부정공파(副正公派): 16세손 이매(李邁)


상서공파(尙書公派): 16세손 이과(李薖)


사인공파(舍人公派): 16세손 이수(李蓚)


판전공파(判典公派): 14세손 이강(李)


월성군파(月城君派): 20세손 이지수(李之秀)


직장공파(直長公派): 18세손 이양오(李養吾)


석탄공파(石灘公派): 18세손 이존오(李存吾)


진사공파(進士公派): 18세손 이양중(李養中)


교감공파(校勘公派): 18세손 이존사(李存斯)

 

주요세거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4백여년 전 세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면 성덕리


경상북도 포항시 일원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오룡동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동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 일원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관하동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동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일원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풍계리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충청남도 서산시 남면 달산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경주이씨는 446,598가구 총 1,424,86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제계고(帝系考)〉
《조선씨족통보 (朝鮮氏族統譜)》 (윤창현, 보명사, 1929)
《한국지명연혁고 (韓國地名沿革考)》 (권상로, 동국문화사, 1961)
《한국인의 성보(姓譜)》 (삼안문화사, 1986)
《성씨(姓氏)의 고향》 (중앙일보사, 2002)
뿌리를 찾아서 (http://www.rootsinfo.co.kr/)
《전통족보문화사(傳統族譜文化社)》 (http://www.genealogy.co.kr)

 

*.慶州李氏에서 分籍(移籍)한 李氏

시조(始祖)이알평(李謁平) 은열왕(恩烈王)


33世 (崎)------------------------(渭) 차성이씨이적(車城李氏移籍)


34世 희두(禧斗)---진두(辰斗)---39世--- (開)합천이씨이적(陜川李氏移籍)


36世소판공거명(蘇判公 居明)여기서부터遠代孫 中 始祖라 하고,1世,2世..라고도 함.


39世(4) 윤홍(潤弘)--------------------윤장(潤張)평창이씨이적(平昌李氏移籍)


                                                              윤원(潤遠)가평이씨이적(加平李氏移籍)


41世(6) 주복(周福)---제정(齊廷)----------주좌(周佐)아산이씨이적(牙山李氏移籍)


42世(7) 우칭(禹칭)재령이씨이적(載寧李氏移籍)


47世(12) 선용(宣用)-신우(申佑)-----58世(23)반계(攀桂)원주이씨이적(原州李氏移籍)


48世(13) 승고(升高)---------------------양식(陽植)우계이씨이적(羽溪李氏移籍)


50世(15) 편(翩)────────----51世(16)임간(林幹)장수이씨이적(長水李氏移籍)


51世(16) 세기(世基)--(槽)--------53世(18)군재(君梓)진주이씨이적(晋州李氏移籍)

 

 

 

*.경주 이씨 관향의 역사

 

경주이씨 

 

 관향(貫鄕) 慶州의 연혁에 대하여 新羅의 開國당시 國號를 사라, 서라벌, 계림, 月城, 新羅라 하였으나 高麗 太祖新羅를 병합하고 慶州라 하다 安東에 예속, 987년에 동경, 목종때 락랑군, 현종때 慶州로, 충렬왕이 계림부로, 1415년 慶州部로 환원, 1895년에 경상도의 慶州郡으로, 1955년에 慶州市와 月城郡으로 있다가 月城郡이 慶州郡으로 되었고, 그후 慶州市로 統合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본관을 월성(月城)이라고도 하는데 月城이 곧 慶州지만 半月城을 築造하고 半月은 滿月이 되는 未來 指向的인 이름인 듯하나, 半月城은 慶州의 일부분이며, 始祖의 유허와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어 1979년 中央花樹會에서 本官을 慶州로 統一하였다.


경주에. 월성은 신라의. 역대. 왕께서. 거주하셨던 도성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합니다. 때문에 월성을 중요시 하였고.예전 족보 표면에는 경주월성이씨라고 적혀 있습니다. 왕이. 머물던 곳이라고 하여 경주보다. 월성을 앞세워. 월성이씨라고.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 조상님께서는 월성이씨라고 많이 하였으며. 비문에도 월성이공 이라고 기록을 하였든 것입니다. 지금은 월성이라는 엤 성터는 있으나 월성군도 없어졌고 호적에도 경주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주이씨 항렬제차

 

              경주이씨 항렬제차(慶州李氏 行列第次)

35世

36世

37世

38世

39世

40世

(영)

(규)

(종)

(우)

(상)

熙 炯

(희.  형)

 

 

 

 

 

 

41世

42世

43世

44世

45世

46世

(재)

鎬 鍵

(호.  건)

濟 濬

(제.  준)

(동)

丙 心

(병.  심)

敎 世

(교.  세)

 

 

 

 

 

 

47世

48世

49世

50世

51世

52世

(진)

(구)

(근)

(섭)

(준)

(선)

 

 

 

 

 

 

53世

54世

55世

56世

57世

58世

(태)

(모)

(현)

(균)

(용)

(순)

 

 

 

 

 

 

59世

60世

61世

62世

63世

64世

(병)

炅 杰

(경.  걸)

(기)

(옥)

洛 永

(락,  영)

(식)

 

 

 

 

 

 

65世

66世

67世

68世

69世

70世

(덕)

周 起

(주.  기)

(용)

浩 洙

(호.  수)

住 綵

(주.  채)

熏 燁

(훈.  엽)

 

항렬 글자의 뜻

35세 : 榮(영화로울영),    

36세 : 圭(서옥규),

37세 : 鍾(술잔종, 모을종),

38세 : 雨(비우)

39세 : 相(서로상) 

40세 : 熙(빛날희),炯(빛날형)

41세 : 在(있을재) 

42세 : 鎬(냄비호), 鍵(자물쇠건)

43세 : 濟(건널제).濬(깊을준)  44세 :東(동력동)

45세 : 丙(남역병),心(마음심) 46세:敎(가르칠교),世(대세)

47세 : 鎭(진압할진)  48세 : 求(구할구)

49세 : 根(뿌리근)  50세 : 燮(화할섭)

51세 : 埈(가파를준)  52세 : 善(착할선)

53세 : 泰(클태)  54세 : 模(법모)

55세 : 鉉(솥귀현)  56세 : 均(고를균)

57세 : 鎔(녹일용)  58세 : 淳(순박할순)

59세 : 秉(잡을병)   60세 : 炅(빛날경) 杰(뛰어날걸)

61세 : 基(터기)  62세 : 鈺(보배옥)

63세 : 洛(물락). 永(길영) 64세 : 植(심을식)

65세 : 德(큰덕)  66세 : 周(두루주),起(일어날기)

67세 : 鏞(큰 쇠북용)    68세 : 浩(넓을호),洙(물이름수)

69세 : 住(살주),綵(비단채)  70세:熏(불길훈),燁(빛날엽)

 

 경주이씨 대동항렬을 최초로 만든 시기


1865년경 고종황제 초기 흥선대원군께서 섭정을 하고 계실 때 전국에 왕명으로 各(각) 性氏(성씨) 들은 各己(각기) 行列字(하열자)를 이에 따라 작명하고 長派(장파)의 항렬자를 따라 統一(통일)해서 性名(성명)만보더라도 그貫鄕(관향) 과 항렬을 단번에 알아보고 서로敦睦(돈목)하고 위  아래  次序(차서)를 混同(혼동)해서  망발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이로서 우리나라에 대동  항렬이 도입되었다 그전에는  소 문중별로  항렬을  만들어  사용했음


경주이씨 항렬을 만드신 분들


조선말 고종5년(1868)으로 영의정을 지낸 귤산공 유원의 주관으로 상서공파 유원/유승/유응, 국당공파 교영/규창, 익제공파 규정/규선/규철/용우 총 9인이 모여서 처음으로 경주이씨 화수회를 창립하고 항렬을 정하였습니다. 長派인[장파는 원래 평리공파이나 당시불참]익제공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촌공파가 세거하고 있는 충북 진천군 연촌[현용정리양촌]에 모여서 화수회를 창립 발족하였으니 고종5년 무진년 가을이었다. 여기서 진천문중에서 사용하던 항렬자로 작명하기로 함 당시 미정 이었던雨항렬이하 5대를 새로정함 연촌에 10여칸의 집을 짓고 경주이씨 화수실 이라는 편액을 걸고 화수회가 모이는 곳으로 長派익재공파가 사는 곳에 세웟던 것이다. 편액은 흥선대원군께서 직접 쓰시고 하사를 함

 

 

*.족보(族譜)의 종류(種類) 구분

가.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 책이다.

 

나. 족보(族譜),종보(宗譜)

     종보(宗譜) - 본관을 단위로 같은 氏族世系를 수록한 族譜 책으로, 한 가문의 歷史와 집안의 系統을 수록한 책이다.


다. 세보(世譜),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수록된 것을 말하며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한다.

 

라. 파보(派譜),지보(支譜)

  始祖로부터 시작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들 波譜에는 그 권수가 많아 종보를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증가되어가고, 그 표제에 연안김씨파보, 경주이씨 좌랑공파보, 순창설씨 함경파세보 등과 같이 본관과 성씨 외에 지파의 중시조명 또는 집성촌, 세거지 지명을 붙이고 있으나, 내용과 형식에서는 족보와 다름없다.

 

마.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수록하되, 시조로부터 자기의 윗대와 아랫대에 이르기까지의 이름과 업적 ,전설,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족보 편찬의 기본이 된다.

 

 

바.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서, 한 씨족 전체 또는 한 부분만을 수록한 것이다.

 

 

사. 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 내용에 상관없이 동족 전부에 걸친 것이 아니라 자기 일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한 세계표(世系表)를 가리킨다.

 

 

아.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국내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모아놓은 책으로 모든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청구씨보(靑丘氏譜)』,잠영보(簪纓譜)』,『만성대동보(萬成大同譜)』,『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이 있다.


자. 기타

   『문보(文譜)』,『삼반십세보(三班十世譜)』,『진신오세보(縉紳五世譜)』, 『호보(號譜)』와 같이 현달한 조상의 세계를 명백히 하려고 한 보서(譜書)나 『대방세가언행록(帶方世家言行錄)』,『보성선씨오세충의록(寶城宣氏五世忠義錄)』 등과 같이 조상 중 충, 효, 절, 의가 특히 뛰어난 사적과 공훈을 수록한 것도 있다. 또한, 환관(내시) 사이에도 계보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이 다른 자손을 입양시켜 자손으로 삼고 가계를 보존하고 있는 양세계보(養世系譜) 등도 있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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