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호이안- 후에 (2018.3/18~3/22.하나투어)..6
성당앞에 또 다른 커플이 웨딩 촬영중..
성당 안 모습..
지하 놀이 공원...
황경태 차장님이 기념사진 한장..
사진 촬영해주시는 황경태 차장님...
케이블카 타고 하산...
산중턱에 불상이...
케이블카 아래 폭포가...
기네스북에 등재된 케이블카 구조..
기념품 가게를 지나..
정원을 지나...
바나산 정문으 나와서..
기념사진 한장..
사진 촬영해주시는 황경태 차장님...
사진 촬영해주시는 베트남 가이드님...
사진 촬영해주시는 황경태 차장님...
버스를 타고 점심 식당으로 이동...
명동식당...
한국식 븨페로 점심식사를....
점심식사후 후에로 이동... 주위에 묘지들
후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로 불렸으며,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최대 격전지가 되어 왕도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1990년대 들어 지방 정부가 후에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해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1687년 후에에서 5km 북동쪽에 있는 바오 빈(Bao Vinh) 마을에 도시의 성곽이 건설된 이후 1744년 응우옌 씨(阮氏)를 가문으로 하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802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 쟈롱 황제가 후에를 수도로 정하였다.
1885년 프랑스는 통킹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왕실로부터 거부당하자 후에를 포위했다.
프랑스 측 자료에 따르면 3일간 지속된 후에 공격에서 왕궁 장서각을 파괴했고, 고가의 귀중품을 훔쳤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차례로 후에를 탈환하면서 무고한 국민들이 살해되는 살육의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유적지 관광이 가능한 도시이며 그래서 입장료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후에는 흐엉 강(Song Huon)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구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나뉘며 짱띠엔 다리와 푸쑤언 다리가 양쪽을 잇는다.
구시가지에는 왕궁 등 응우옌 왕조의 유적지가 있고 동 바 시장이 있다. 신시가지에는 호텔, 레스토랑, 토산품점, 여행사가 밀집되어 있다.
흐엉 강을 따라 남쪽으로는 역대 황제들의 무덤이 있는데, 후에의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보트를 타고 이곳을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또는 자전거를 타고 둘러볼 만한 거리이다.
카이 딘 왕릉
왕릉중 가장 잘 알려진 카이 딘 왕릉은 만달린, 말, 실물크기의 코끼리 등의 조각상등이 있다. 왕릉은 11년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건물의 규모와 웅장함이 건축기간을 증명하고 있다. 이들 건물들은 로맨틱, 고딕양식과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꽃병이나 도기류의 깨진 조각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방법으로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