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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대구올레 팔공산 6코스 - 단산지가는길.. |
(#,우리가 가려는 원점 회귀코스)
불로동고분군 공영주차장 - 고분군 한바퀴 -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 봉무공원 - 구절송 -
- 단산지 - 영신초.중.고 입구 - 불로고분군 공영주차장
(소요시간 2시간 30분 / 6km)
(#.원래 코스)
불로동고분군 공영주차장 - 고분군 한바퀴 -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 영신초중고 입구 -
봉무공원 - 단산지 - 만보산책로 - 봉무동 마을길 - 강동새마을회관
(소요시간 2시간 30분 내외 / 6~7km)
2010년 4월 개장. 고분군을 한바퀴돌아 굴다리를 지나면 봉무공원에 도착한다. 각종 체육시설과 야외공연장·야영장·나비생태원·나비생태학습관 등이 자리해있다. 봉무공원 내 단산지에는 못을 한바퀴 두르는 산책로(3.9km)가 조성되어 있다. 흙길을 걷고 싶은 올레꾼에게 적극 추천한다. 만보산책로를 지나 마을길을 걷다보면 파군재 삼거리에 이른다. 왕건의 군대가 견훤의 군대에 패배해서 왕건이 군사를 해산시킨 고개라 하여 '파군(破軍)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거리에서 파계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2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이길을 걸으면 팔공산 2코스의 기점인 신숭겸장군유적지에 도착한다. 코스 소개 |
교통편
- 찾아가기
- 지하철 1호선 아양교역에 하차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나옴
- 아양교역시내버스 정류장 에서. 급행1, 101-1, 401, 팔공2번 버스를 타고 ‘
- 불로천주교회건너(버스에 따라 버스 안내방송에서 ‘불로천주교회’로 방송하는 경우도 있음)’
-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후 버스 진행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우회전
- (불로동고분군 이정표 있음)
걷기여행 TIP
코스 요약
● 경로 : 불로동 고분군 공영주차장 → 고분군 한 바퀴 →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 영신초중고교 → 봉무공원
→ 단산지 → 만보산책로 → 봉무동 마을길 → 강동새마을회관
●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가벼운 길.
● 걷기 좋은 계절 : 봄, 가을
찾아가는 길
● 지하철 : 1호선 아양교역 하차 → 2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101-1, 401, 급행1 탑승
주변 관광지
● 나비생태원 : ☎ 053-662-2617 /
● 봉무레포츠공원 : ☎ 053-662-2624~5
불로고분군 안내
#.불로동 고분군의 유래
대구 금호강 하구를 중심으로 동구 불로동과 입석동에는 214기의 고총고분이 밀집하여 분포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곳의 고분들은 299,746㎡(90,673평)의광활한 산 일대에 걸쳐 분포되어
1978년 6월 23일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보호 중에 있으며
당시 이 지역을 다스렸던 토착지배세력의 집단묘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분의 ‘불로동’이라는 지명은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게 되자
어른들은 피난을 가고 어린아이들과 늙은이만 남아 있었다고 해 ‘불로’라 불렸다고 합니다.
이 고분들은 이미 일제 강점기 때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에는 경북 달성군 해안면에 속하여 해안면 고분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무덤의 지름은 15∼20m, 높이 4∼7m 정도가 보통이며,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4벽을 쌓고, 판판하고 넓적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돌방이 있으며,
그 위에 자갈을 얹고 흙을 덮었다.
껴묻거리(부장품)로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무늬를 새긴 토기 등 많은 출토물이 있다.
이 무덤들은 대개 4∼5세기경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무덤으로 추측한다.
불로동 무덤들은 위치가 구릉이라는 점, 무덤 내부가 돌무지 무덤과 비슷하게 깬돌로 지은 점,
그리고 돌방이 지나치게 가늘고 긴 점에서 낙동강 중류 지역 계통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유물의 형태나 질이 신라와 유사하여 이 지역 세력의 복잡한 문화양상을 보여주기도 하다.
불로동 고분군은 1938년 고분 2기를 조사하여 '해안면 고분'으로 불리워졌다.
그 뒤 1963년 12월과 이듬해 1월 두차례에 걸쳐 경북대박물관발굴 조사에서 2기를 추가 조사한 뒤,
해안면 고분을 포함하여 '대구 불로동 고분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해안면 1호분의 경우 벽면의 축조에는 산석(山石)을이용하였으며 바닥은 생토위에 모래를 갈고
그 위에 바로 시신을 올려놓은듯하며 부장품으로는 토기류와 금동제의 운주편(運柱片)이 출토되었다.
대체적으로 학술적 발굴 조사에 의하면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4벽을 쌓고
판석으로뚜꺼을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석곽분(竪穴式石槨墳: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밝혀졌으며,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도끼, 철제꺽쇠,마구류 그리고 무늬가 새겨진 토기등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은 대개 4-5세기경의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추측되며
고분의 직경은 15-20m 높이 4m내외의 봉분으로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토착지배세력의
집단 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군중 가장 외형적인 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통해 겉모양이나마 고대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으며,
대구 분지의 옛모습과 낙동강 동쪽 연안의 석곽분군(石槨墳群)으로원분포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1979년에 보수·정화되었으며 시가지의급격한 팽창과 무분별한 훼손으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자
대구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수차례에걸쳐 둘러보고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시비 40,000천원을지원받아
안내간판 및 보호철책을 새로이 단장하고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아카시아 집단서식지구 정비와 봉분 잔디 입히기,
산책로(2.9km) 개선등연인원 4,260여명을 동원 고분군 정비와 보존에 많은 정열을 쏟고 있다.
#.봉무동의 지명 유래
봉무동(鳳舞洞)의 유래
봉무동 836번지 현 봉무정에 호를 구축하기 위하여 구덩이를 파니 땅속에서 봉이 나와 북쪽으로 날아갔다 하여봉이 춤추는 동이라고 불리워졌으며,왕건이 앉았다는 독좌암에서 딴 이름 "독암" 금호강 동쪽마을 이라는
강동마을과 단산,위남등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단산지
붉은 흙이 나왔다하여 단산(丹山)마을이라 하였으며, 그 마을의 지명을 따서 단산지(丹山地)라고 불렀다고 함.신기
신글이라고도 하며 현 경북농산물 위쪽에 일직 손씨들이 새로운 터를 잡아 집성촌을 이룬데서 유래강동
금호강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강동(江東)마을이라고 한다 함위남
수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위남(渭南)이라 함구촌
구성촌(九成村)이라고도 하며, 강동마을 남쪽에서 고분공원까지 산봉우리가 아홉봉이 봉무뜰을 막아선 형국에서그 지역을 구촌(九寸)이라고 함
#.구절송 (나무 가지가 9개라 )
▲ 출처 : 대구올레 카페(http://cafe.naver.com/culture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