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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해인사 홍류동천 소리길..2

최두호 2017. 11. 21. 12:32

 

 

 

 

 

 

 

 

 

 

 

 

해인사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고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齋)’가 열렸다.

 김 장군은 한국전쟁 때 공군소속으로 근무하던 중 가야산 폭격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폭격지점이 팔만대장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수를 돌렸다.

 ‘빨치산 몇명 때문에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 없다’며 항명한 것이다.

 일촉즉발, 누란의 위기에서 해인사와 고려대장경이 남게 된 사연이다. 그의 소명도 시대를 초월해 가슴뭉클하게 한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팔만대장경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 둔세지비

 

 

 

 

국립공원100대경관中 농산정의 겨울

 

농산정 건너편 도로옆 바위석굴 우측 암벽에 새겨진

최치원 선생의 둔세지시

 

 

아래의 籠山亭 작품은 신라 말 대문장가인 孤雲 崔致遠이 지은 7언 절구로 구성된 유명한 시를 소개한다.

그가 당나라 유학의 과정을 마치고 높은 벼슬자리를 사양한 후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풍류생활을 보내던 중

산수(山水)의 풍경을 읊은 시다. 현실을 대하는 작자의 의식을 간결한 형식 속에 잘 응축시켜 놓고 있다.

부귀와 벼슬 등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은 인생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자의 풍류가

이 시의 주된 이미지<물소리>에 의해 활기차게 드러나고 있다.


 

 

籠山亭

                                      孤雲   崔致遠


 


狂奔疊石吼重蠻(광분첩석후중만)   물결 거세게 흘러 산을 울리고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가까운 거리에서도 말소리를 분간하기 어렵구나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시비 따지는 소리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농산)   흐르는 물소리로 온 산을 에워싸고있네.

 

 

시의 구성을 보면, 기(起)구에서는 온산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물소리를, 승(承)구에서는 인간의 말소리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물소리가 울려 퍼짐을, 전(轉)구에서는 시비의 소리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태에 대한 작자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결(結)구에서는 그러한 세상과 스스로를 격리시켜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고자 하는

작자의 심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 시의 轉ㆍ結구에서, 인간의 <시비소리>가 듣기 싫어서 산골짜기 모두를

 <물소리>로 가득 채운다는 표현으로, 참으로 깊은 해학의 뜻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구성을 다시정리하면>

 起---자연의 소리(웅장한 시냇물 소리)

 承---인간의 소리(속세와의 단절감)

 轉---작가의 심리(세상의 소리와 단절하고 싶은 마음)

 結---세속과 격리(은거하고 싶은 마음)



<崔致遠> 857~ ?

  통일신라 말기 학자 문장가. 경주(慶州) 최(崔)씨 시조,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6두품 출신 지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 , 12세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였고,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당시 사회적 현실에서는 자신의 개혁안이 실현 될수 없음을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농산정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학사당 홍도문과 학사당내() 문창후 고운 최치원선생 영정

 

 

 

 

 

 

 

 

 

해인사 매표소 홍류문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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