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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남 청양 칠갑산

최두호 2017. 11. 20. 18:06

 

[산사랑 산사람] 충남 청양 칠갑산

 

 

변산이 기생 매창(梅窓)과 유희경의 로맨스 때문에 유명해졌다면

계룡산은 ‘갑사로 가는 길’ 글 한 편에 큰 신세를 졌다.

고창 선운산도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의 시 덕을 크게 봤다.
잘 만들어진 노래 한 곡이 산을 띄우기도 한다.

‘영암 아리랑’ 덕에 월출산이 인기 산이 되었고

‘수덕사 여승’은 매년 중년 남성들을 덕숭산(수덕산)으로 불러들인다.

노래 덕을 보기로는 칠갑산만한 산이 있을까.

1989년 주병선이 부른 구성진 민요풍의 노래 한 곡은 충청 내륙의 무명산이었던

 이 산을 벌떡 일으켜세웠다.

농촌 아낙의 정한(情恨)을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칠갑산’.

영탄조 노랫가락을 따라 청양으로 떠나보자.

◆충청내륙 은둔의 도시, 국난 때마다 떨쳐 일어나

=충청권 서해 내륙에 위치한 인구 3만의 도시 청양.

이렇다하게 역사의 전면에 나서본 기억이 없으니 은둔의 도시에 가깝다.

옛 백제의 땅이요 마한 땐 구로국(拘盧國)이 있던 자리지만

부여와 공주에 수도를 내주면서 왕도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문화, 경제적으로 이웃한 홍성, 예산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익명의 도시로 지내왔지만 국가의 위기마저 침묵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구국의 맨 앞자리에는 항상 청양이 있었다.

7세기 청양은 나당(羅唐)연합군에 맞선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공주-홍성-금산을 연결하는 의병들의 호국 벨트였다.

일제 강점기 면암 최익현은 칠갑산을 무대로 무장 항쟁을 펼쳤다.


칠갑산 유래도 재미있다.

백제는 칠갑산을 사비성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매년 제사를 올리며 신성시했다.

산 이름의 칠(七)은 만물의 7가지 근원을 뜻하고,

갑(甲)은 생명의 시원을 의미하니 우주의 생성과 숭고한 생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명산에서 명찰을 제외할 수 없듯이 장곡사를 빼고 칠갑산을 논할 수 없다.

통일신라 문성왕 12년에 창건된 장곡사는 국보 2점과 보물 4점이 소장된

천년고찰이다.

절 앞으로 흐르는 계곡은 수십 굽이를 휘돈다고 해서 ‘아흔아홉 계곡’으로 불린다. 장곡사(長谷寺)라는 절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장곡사는 2개의 대웅전이 존재하는 특이한 가람으로 유명하다.

운학루, 요사채를 중심으로 위에 상대웅전이 아래에 하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여래를 모시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약사여래불을 주존으로 하고 있다.

약사여래불의 치유 효험이 뛰어나 환자들이 많이 몰리자 기도객들의 편의를 위해 대웅전을 두 곳에 세웠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해발 561m에 7개 등산코스, 2시간만 오르면 정상

=1산7곡(谷), 큰 산에서야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해발 500m급 단일 산에서 7개의 계곡은 흔한 것은 아니다.

광대리, 냉천골, 작천골, 적곡리, 천장리계곡에, 장곡사를 품고 있는 장곡리 계곡이 있고

영화 ‘적과의 동침’의 세트장이 있는 지천구곡도 있다.

모두 7개의 등산로가 있고 어느 코스를 택해도 정상까지 오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대구를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남짓 차는 드디어 대전 유성을 달린다.

서공주JC에서 서천 방향으로 갈아탄 지 30분, 청양IC 표지판이 이방인을 반긴다.

다시 37번 지방도를 타고 정산면으로 들어서자 칠갑산도립공원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천장호를 향해 차를 몬다. 차창 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익숙한 멜로디, ‘칠갑산’이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조운파는 청양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고향은 부여) 30여 년 전 그는 한티재를 넘는 완행버스 안에서 차창 밖에서 밭을 매는 아낙들을 보고 이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임도로 내려선다.

소나무 숲 사이로 시선을 잡아끄는 푸른 물빛. 천장호였다.

1979년 7년의 공사 끝에 완성했다는 호수다.

천장호의 출렁다리는 207m로 국내 최장이며 아시아에서도 일본 오히타현(縣)의 고공 현수교에 이어 두 번째.

폭은 1.5m에 중심부에서는 최고 50㎝까지 출렁인다.

짓궂은 남성들은 여성을 놀리기에 좋으니 처음 개통할 때는 하루 종일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리를 지탱하는 두 개의 주탑엔 청양의 명물 고추를 배치해 특산물 홍보에도 일조한다.

호수에 떠있는 빨간 고추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야금의 현(絃)처럼 내리쳐진 줄 사이를 걸어 호수로 향한다.

 발 아래에는 먹이를 다투는 빙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화처럼 펼쳐진 호수와 나무의 조화

=호수 복판으로 나오자 기슭에서 한 폭의 영상이 펼쳐진다. 시화(詩畵)처럼 펼쳐진 호반의 파노라마.

호면(湖面)의 구획선을 따라 나무와 물은 정확히 대칭을 이루었다.

수면을 경계로 마주 보는 색의 띠, 산은 호수에 잠기고 물은 산을 비추니 이게 바로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썼다는 데칼코마니 기법이다.

제철의 단풍 색감은 많이 퇴색됐지만 늦가을 서정만큼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만추의 서정을 렌즈에 저장하고 호수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이 길은 천장로 코스, 활엽수들이 도열해 있는 산길을 걷는다.

길은 단조롭다. 흔한 암릉 하나 없고 막힌 사위(四圍)는 전망하나 제대로 펼쳐놓지 못했다.
2시간쯤 걸었을까. 왁자지껄하는 소란함과 함께 커다란 정상석이 일행을 맞는다.

 사방으로 막혀 있던 산은 이제야 전망을 열어 놓는다.

멀리 북쪽으로 오서산이 흐릿한 하늘금을 그렸다.

날씨가 좋을 때는 계룡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가족 단위 등산객들과 노인들이 많았다.

산이 561m로 낮은데다 천문대 쪽에는 중턱까지 임도가 뚫려 산행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처럼 산을 향유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경사로를 지탱해 줄 근력과 가쁜 숨을 받쳐줄 심폐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정상에서 커피잔을 기울이던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은 “저 건너편 산에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며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의 서정이 짙게 밴 칠갑산에서 모정을 떠올린 건 자연스런 일인지 모른다.
이 상념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노인의 눈빛에서 호미를 든 베적삼의 아낙이 오버랩된 것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 판단이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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