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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심속 `전통마을`. 둔산동 `옻골마을`

최두호 2017. 11. 20. 18:02

[소풍] 도심속 '전통마을'. 둔산동 '옻골마을'
 

주소: 대구시 동구 둔산동 386

 

안내: 983-1380, 1040

 

교통안내: 동구청에서 팔공1(평광동 방면)이용, 파티마병원 건너편에서 동구3 버스 운행

동구청에서 아양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면 지하철 1호선 방촌역이 나오고,

역을 지나 U턴을 하면 옻골마을 이정표가 나타난다.

2번의 철길 건널목을 지나면 경부고속도로가 머리위로...

좀 더 똑바른 길을 가다보면 해안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이후엔 똑바로 가다보면 찾을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근무 요일: 2월~11월 매일 근무(설, 추석 연휴 제외),

근무시간 10:00~18:00(동절기17:00)

 

금호강의 아양교를 넘어 하양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 2km정도 거리에 있는 방촌시장에서 북측으로

대구국제공항의 동편 외곽도로를 따라 1km정도 가면 둔산동이 있다.

경주최씨종가는 이 도로를 직진하여 제일 끝 마을인 옻골에 위치한다.

옻골은 경주최씨 광정공파(匡靖公派)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성 촌락(同姓 村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이 어우려져 있다.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 1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조선 인조때 학자 대암 최동집(崔東集)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이다.

살림채는 1694년(숙종 20)에 지은 'ㄷ'자형의 안채와 1905년(고종 42)에 중건된 'ㅡ'자형의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붕은 모두 책을 펴서 엎어 놓은 것 같은 형태,

즉 八자형 지붕인 박공지붕(일명, 뱃지붕 또는 맞배지붕이라고도 함)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의 동쪽 토담 안에 있는 보본당(報本堂)은 1742년(영조 18)에 지은 것으로 재실로 사용되며

그 뒤편에는 가묘와 별묘의 사당(祠堂) 2동이 각각 일곽의 흙담장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가묘와 별묘, 보본당으로 이어지는 조상과 관련된 공간은 양의 상징적인 의미인 동족에 배치하고,

이에 비해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음의 상징인 서쪽에 배치하고 있어

풍수지리 및 음양오행사상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구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400년)로

안채와 사랑채, 재실, 가묘, 별묘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주택은

조선시대 양반건축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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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옻골마을 돌담길'…문화재 등록예고 '경사'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골목 굽이굽이마다
양쪽으로 기와지붕을 인 돌담길이 이어진다.
누런 흙과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이 빚어낸
돌담 너머로 널찍한 마당을 가진 기와집들이 보인다.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고즈넉한 풍경.
하지만 이 마을 역시 행정구역상 대구다.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 최 씨 광정공파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기도 한 이곳은 최근 경사를 맞았다.

이 마을 돌담길이 18일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등록예고된 것.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고건축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받은 돌담길 48곳 중 이 마을 돌담길을 비롯해

10곳이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2~3㎞에 이르는 돌담길이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옻골마을.

대구시티투어 코스에 포함돼 있어 관심이 있는 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 북쪽으로 가다보면 400여 년 전부터 터를 잡은 종가가 나온다.

안채와 사랑채, 재실, 가묘, 별묘 등이 조화를 이룬 이 곳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종가를 지키는 이는 대암 최동집 선생의 14대 종손인 최진돈(60) 씨.

돌담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마을 사람들 노력 덕분이란다.

"시멘트나 벽돌로 만든 돌담보다 전통 돌담이 한결 운치가 있지요.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허물어지는 것이 돌담입니다.

꾸준히 돌담을 챙겨온 덕에 이 정도 유지할 수 있었어요."

 

100여 가구에 이르던 마을은 어느새 20여 가구로 훌쩍 줄었지만 마을을 따라 도는 돌담길은 400여 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재로 등록되면 정부 예산이 지원되므로 마을 돌담을 관리하기도 좀 더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인규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조사·등록담당은 "돌담길도 옛 정취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급속히 사라지고 있어 보존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며

 "내년부터 재정을 확보해 담장 뿐 아니라 길과 집 보수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 2006년 0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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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골마을

 

옻골마을

 

옻골마을

 

옻골마을

 

옻골마을

 

옻골마을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잇는 옻골마을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이야기와,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두가지 유래를 가지고 있다.

'옻칠'자 '시내계'자를 쓰는 '칠계'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 하다.

동대구 중심지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옻골마을은 1616년(광해 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되는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이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가 훤히 보이므로,

나쁜 기운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을 앞에 숲을 조성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듯 하다.

연못과, 나무그늘아래 꾸며진 쉼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마을의 시작이다.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역시 350년 수령의 거대한 회화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맞이 한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무려 12m에 이른다.

회화나무 뒤쪽으로는 옻골나무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있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운 탓에 일부 주택들은 현대식으로 개축 되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고택과, 옛길, 전통 양식의 돌담은 옛 양반가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둘러 보기에 손색이 없는 듯 하다.
경주 최씨 종가인 백불고택은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향조인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지은 고택으로 대구지역 가옥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이다. '

백불'은 조선 정조때 학자인 백불암 최흥원의 호이다.

현재 대구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가 남향으로 세워져 있는것이 보인다.

건축할 당시에 사랑채는 촤로 지었었으나, 1918년 중건을 하면서 사랑채도 안채와 같은 와가로 변경 하였다고 한다.


고택의 오른쪽으로는 보본당이 서있다.

경주최씨 종가의 제사를 위해 1753년 지어진 건물로, 사당과 재실,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포사로 구성 되어 있다.

보본당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 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토담을 따라 가다 보면 정려각이 있는데, 백불암 최흥원의 효심을 기려 1789년에 세워졌다고 한며,

정려각안에는 정조가 하사한 홍패가 걸려 있다.

옻골마을은 약 2.5km에 이르는 토담길과, 돌담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돌담이 지날 곳에 나무가 있으면 나무를 베기 보다는 나무밑에서 담장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 순리로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바라 볼 수 있다.

백불고택에는 정조가 백불암 최흥원의 업적을 칭송해 하사한 문서를 비롯해,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고서와 호패,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로 만든 성학십도 병풍, 제기 등 다양한 유산이 남아 있고,

인근에 천연기념물 1호인 '달성측백수림'이 있고, 불로동 고분군, 팔공산도립공원 등이 있다.

출처 : 늙은 빈수레
글쓴이 : 노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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