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길...(9)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길… <9>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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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갈수록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몸을 움츠리게 하고, 길 여행도 예전같지가 않다.
매서운 날씨 탓에 깊은 산속 길 여행은 그리 권할 만한 대상이 안 될 것 같다.
이번주에는 아늑하면서도 옛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 길을 소개하고 싶다.
팔공산 너머 군위삼존석굴이 위치한 '한밤마을 돌담길'을 추천한다.
대구에서 한밤마을 가는 길은 가깝고, 찾기도 쉽다. 자동차로 칠곡 동명의 팔공산순환도로를 타고 한참 산속으로 달리다 보면 한티재에 올라선다. 한티재에서 잠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진 뒤 곧바로 재 아래 군위 쪽으로 20여분 순환도로를 다시 달리다 보면 삼존석굴을 지나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큰 마을이 나타난다. 바로 한밤마을이다. 한밤마을과 대구를 잇는 팔공산 순환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명소이기도 하다.
한밤마을은 '육지 속 제주도'로 정평이 나 있다. 마을 전체가 돌담길이다. 그만큼 제주도처럼 옛 돌담의 모습이 잘 간직돼 있다는 얘기. 한밤마을에 들어서려면 마을의 역사부터 가슴에 담아야 한다. 돌담과 마을은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군위군 부계면에 소재한 한밤마을은 신라의 중악(中嶽)이었던 팔공산의 북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대율 1·2리를 중심으로 남산 1·2리, 동산 1·2리를 아우르는 꽤나 큰 마을이다.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다. 마을의 형국 또한 독특하다. 북쪽과 남쪽은 팔공산이 가로막고 있고, 고산준령이 마을 동서쪽으로 흘러내려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사진 분지형 지형이다. 그래서 한티재에서 군위 쪽을 내려다보면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동서 양쪽으로는 팔공산에서 흘러내린 두 물줄기가 각각 동산계곡과 남산계곡을 이룬다. 동산계곡은 지금 겨울 경치가 밋밋하다. 하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기암괴석이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괜찮은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남산계곡에는 계곡 들머리에 양산폭포가 있고, 그 아래에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양산서원과 제2석굴암으로 알려진 국보 109호인 삼존석굴이 수직암벽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계곡이 만나는 한밤마을 입구에는 송림이 우거진 '성안숲'(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마을숲)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한밤마을의 이름도 남다르다. 한밤의 행정 명칭은 대율(大栗·큰 밤)이다. 마을에 정착한 부림 홍씨의 중시조인 고려 말 홍로 선생에서 비롯된다. 홍로 선생은 포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고려 왕조가 기우는 것을 보고 고향인 한밤마을로 물러난 뒤 도연명의 뜻을 따라 살며 도연명이 살았던 이상향 율리(栗里)를 자신이 살던 '한밤'과 연결지었던 것이라고 한다.
한밤마을의 역사는 군위삼존석굴이 조성된 66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다. 삼존석굴이 위치한 팔공산은 신라의 중악으로, 불교 성지였던 까닭에 한밤마을도 그만큼 역사가 깊은 마을인 것이다.
이제 마을 안으로 들어가보자. 앞서 말한바 마을의 담은 모두 돌담이다. 돌담은 극히 보기 드문 진풍경이자 팔공산이 쏟아낸 바위와 돌들이 빚어낸 '걸작'이다. 팔공산의 바위와 돌로 뒤덮인 땅을 일구며 살아야 했던 옛 한밤 사람들은 자연스레 돌로 집의 담장을 두른 데서 지금의 '육지 속 제주도'가 완성된 것이다. 돌담길 탐방은 크게 마을 사이의 도로를 기준으로 모두 세 곳에서 진입할 수 있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한바퀴를 도는 구조다. 돌담길은 사계절 저마다의 멋을 부린다. 추운 겨울에도 운치가 살아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넝쿨이 돌담을 휘감고 있고, 수백년 풍파를 견뎌낸 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다. 돌담은 여름에는 연두 혹은 진녹색의 이끼를 잔뜩 머금고, 봄과 가을에는 돌담길 사이사이의 나무와 이름 모를 꽃과 어우러져 색다른 경치를 자아낸다. 돌담길은 미로와도 같다. 넓었다가도 사람 몇몇만이 지나는 길로 좁아지기도 한다. 어떤 길은 구불구불 미궁 속으로 빠져들 듯한 형국이어서 자칫 넋을 놓고 가다간 길을 헤매기 일쑤다. 겨울의 돌담길은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누르게 하고, 꽁꽁 언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을 겨를도 주지 않는다. 사진도 찍고, 돌담을 영상에 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을의 돌담길을 모두 만날 요량이라면 족히 2시간은 몸을 마을에 맡겨야 할 것이다. 연인끼리 혹은 가족과 함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정겨운 코스가 바로 한밤마을 돌담길이다. 또 마을 앞의 1㎞에 이르는 돌방천(마을 사람들은 천방이라고 부른다)도 결코 흔치 않은 풍경이다. 돌담길만 걷기엔 뭔가 2%가 부족하다. 마을 속에 숨은 볼거리도 적잖다.
한밤에는 경의재, 동천정, 경회재, 경절당과 종택, 애연당, 정일재 등 여러 재실과 12처의 고택이 있다. 한밤이 소유한 문화재다. 마을 안 상매댁(남천고택)은 마을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고택이다. 상매댁은 250년 전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 중수됐다. 지금의 건물은 사랑채 대청 상부에 적혀 있는 상량문으로 보아 조선 현종 2년(1836년)에 지어졌다. 원래 가옥의 구조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배치였다. 하지만 70여년 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돼 현재의 건물만 남아 흥자형의 배치는 눈짐작으로 가늠할 수 있다. 상매댁은 현재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돼 있고, 자연석 돌담이 경계를 이뤄 옛 고택의 정연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상매댁 인근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잘 보존된 누각형 집이 턱 하니 버티고 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262호인 대율리 대청이다. 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대청은 원래 사찰의 대종각이었다가 오랜기간 마을의 교육기관인 학사로 쓰였다고 한다. 원래는 조선 중기에 건립됐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조선 인조 10년(1632년)에 중창됐다. 그후 효종과 숙종 때 중수를 거쳐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대청 주변도 역시 돌담이 감싸고 있다. 돌담길을 걷다 대청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겨보는 것도 한밤마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아닐까. 마을에는 윗부분이 잘려진 영험있는 잣나무도 만날 수 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대율사에는 보물 988호인 대율리 석불입상이 있다. 높이 2.65m로 세련되고 당당한 신라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불교 유산이다. 인근의 국보인 삼존석불과 함께 한밤마을의 불교문화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