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길을 찿아 떠나다...<2> 퇴계 오솔길.. [매일신문]
길… (2) 퇴계 오솔길
강변길·병풍 절벽·은빛 모래…걷는 이 모두 文人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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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은 학문의 길이다. 또한 주변의 비경과 어우러져 우리나라 최고의 강변길로도 대접받고 있다. 퇴계오솔길 걷기는 가을, 지금이 적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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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은 오솔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어 길여행의 고단함을 단박에 떨쳐낼 만큼 아름답다. | |
퇴계오솔길 가는 길목이다.
낙동강 강변을 따라 퇴계오솔길 전망대까지의 강변길은
옛길에다 '현대'를 덧댄 가공의 길이었다. 자동차도 나다녔다.
왜 길에다 차를 넣고,
그것도 모자라 흙내음까지 없애야 했는지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그나마 강변의 풍광에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가공길'을 30여분 걸은 뒤 그 길이 끝나는 언덕 위에
'퇴계오솔길 전망대'가 나온다.
퇴계오솔길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다.
전망대에 오른 순간 '찝찝한' 마음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낙동강과 절벽, 은빛 모래사장과 오솔길의 절묘한 조화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여기에다 얼굴에 덤빌 듯 와 닿는 청량산의 위풍당당함에
가슴이 뻥 뚫려 버렸다.
퇴계오솔길은 전망대 아래 언덕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변길을 시작으로
도산면 가송리 마을의 고산정까지다.
3㎞ 남짓.
현재 안동시가 정비한 곳까지의 길이지만
옛날에는 저 멀리 청량산까지 강변을 따라 길이 나 있었다.
퇴계오솔길은 환경부가 2006년 생태탐방로 20선에 선정한 길이기도 하다.
퇴계오솔길은 말 그대로 그 옛날 퇴계가 걸었던 길이다.
퇴계는 이 길을 통해 청량산으로 학문 수양을 떠났고,
한편으로 이 길을 지나 청량산의 풍광을 가슴에 담았다.
퇴계뿐이랴.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의 후학은 물론
경상도의 선비들 역시 퇴계의 길을 따랐고,
이 길에서 퇴계의 사상을 되내기도 했다.
그래서 퇴계오솔길은 단순히 나다니는 길이 아니라 학문의 길인 것이다.
퇴계는 이 길을 오가며 학문에서 오는 고뇌를 길 위에다 내려놓고,
오솔길 옆 강물로 그 마음을 달랬지 않았을까.
실제로 퇴계오솔길은 영남의 시인묵객들이
저마다 일생에 한 번쯤은 다녀가는 꿈의 순례코스였다.
지금 전하는 기행문만도 100편이 넘고, 시는 1천편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철학자 칸트가 걸어 전 세계인이 걷는다는 독일의 ‘철인의 길’을
우리나라에서 찾는다면 바로 퇴계오솔길이 아닐까.
퇴계오솔길은 수많은 시인묵객이 수백년 세월 동안 찾은 만큼이나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명품 길'이기도 하다.
오솔길에는 퇴계의 도산십이곡 중 7곡인 단사협과
8곡인 가송협이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한국의 10대 정자에 들어가는 '고산정',
천연기념물 먹황새의 서식지였던 '학소대'가 있다.
고산정은 안동팔경 중 하나다.
가송협의 절벽 아래에 자리한 정자로,
정자의 주위는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강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獨山)이 우뚝 솟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산정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퇴계의 제자인 성성재 금난수의 정자이다.
고산정에는 이황과 금난수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퇴계는 고산정을 찾아 여러 편의 시를 남겼고,
영남의 문인들이 고산정을 찾아 노래한 시도 수백 수에 달한다고 한다.
퇴계오솔길의 정점에 위치한 고산정에서 시 한수를 읊어보는 것도
길 여행의 또 다른 의미 찾기가 아닐까 한다.
학소대 위 분강서원은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건물로
흡사 안동 하회마을의 병산서원을 연상케 하는 풍광을 그려내고 있고,
학소대 아래 자리 잡은 애일당과 강각은 절정의 정자 건축미를 뽐내고 있다.
강의 구비마다 도영담, 월명담, 한속담, 미천장담, 백운지 등의 소가 이어져 있고,
취벽, 계주암, 벽력암, 경암 등의 바위 명소들까지 강따라 위치해 있다.
아마 낙동강 1천300리 중 강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갖춘 곳은 바로 퇴계오솔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