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길...<6>소백산 자락길..[매일신문]
길 <6>소백산 자락길…소백산을 즈려밟고 세월을 굽어보다 | ||||||||||||||||
소백산은 1,439m 최고봉 비로봉을 꼭짓점 삼아 신선봉에서 죽령마루까지
북동에서 남서로 능선을 이룬다.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중부지방이고 남쪽은 남부지방이다.
남쪽의 소백산은 때로는 봉우리를 세우고, 때로는 골짜기를 지으며,
풍기읍~순흥면~단산면에 걸쳐 유순한 산자락을 펼친다.
소백산 자락길은 소수서원에서부터 소백산 아랫도리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죽령을 넘은 다음 골골이 모여 굽이진 내리막길을 따라 대강초등학교에서 끝맺는 총연장 34㎞의 트레킹 코스이다.
이 길은 역사의 흔적,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체득하는 길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전국 7개소 문화생태탐방로 가운데 한 곳이다. 영주문화연구회(회장 김덕우)가 관리하는 소백산 자락길 총 아홉 개 구간은 11월 현재, 아직 정비를 완전히 마치지 못했고 일부 구간은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산불 때문에 길을 막고 있다. 아쉬운 대로 제1, 2구간 소수서원~초암사 길과 제7구간 죽령옛길을 걸으며 길의 흔적을 더듬었다.
◆조선 선비의 길-죽계구곡 소백산 자락길을 걸을 때는 응당 '선비걸음'으로 걸을 일이다. 자락길이 시작되는 소수서원은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유학이념이 녹아있는 최초 사설교육기관이다. 그 신성한 곳에서 출발한 걸음은 느리되 허리는 꼿꼿해야 한다. 이 뿐인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맞서다가 228년간 순흥부(府)가 없어지는 화를 입은 지조의 땅이니 옷깃을 여미고 삼가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길은 마을을 지나치고 들판을 가로지른다. 초겨울 빛에 바랜 길은 초췌하고 길섶에는 마른 풀잎만 흔들린다. 길가 집들의 지붕은 낮고 열매를 떨군 과일나무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 순흥지 못을 끼고 돌아 만나는 마을이 배점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비각이 한 채 섰는데 퇴계 이황이 거두어 가르친 무쇠장이(鐵工匠) 평민선비 배순의 충효정신을 기린 정려각이다. 이 마을은 배순의 점방이 있던 마을이라고 배점마을로 불린다. 배점마을을 지나 과수원길을 따라 산기슭을 돌아나가면 물이 흐르는 소리가 기운차게 들린다. 발 아래로 펼쳐진 계곡에는 잘생긴 바위들이 이끼를 덮은 채 얼기설기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성지처럼 찾아들던 '죽계구곡' 중 맨 마지막 제9곡이다. 맞은편 산기슭을 건너는 시멘트 다리 끄트머리 한 쪽 바위에는 힘찬 글씨로 '죽계구곡'이라고 음각해놓았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데 계곡의 풍광은 아기자기하다. 죽계구곡 제1곡과 제2곡 사이, 규모가 그만한 초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절은 신라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에 초암을 얽었던 자리라고 해서 초암사라고 이름했다. 초암사부터는 계곡을 따라 소백산 자락길이 자랑하는 최고의 비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산길은 산불 위험으로 내달 15일까지는 통제되어 들어갈 수가 없다.
◆역사의 길-죽령 옛길 숲은 길을 허용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기어코 숲에 길을 낸다. 그렇게 낸 길은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면 곧장 다시 숲으로 닫히기 마련이다. 닫힌 숲길에서는 길을 걷는 사람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중앙선 간이역 희방사역에서 시작하는 죽령 옛길은 예로부터 큰 길이었다. 신라 때 개척된 이래 서울로 통하는 세 곳 관문 중 하나로 주로 경상도 동해안 사람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이 길을 통해 부임하는 고을 원님이, 과거보러 한양 가는 선비들이, 친정 다니러 가는 아낙이, 등짐 진 보부상들이 넘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봇짐을 뒤져 연명하던 산적떼도 이 길을 따라 오르내렸다. 그러나 고갯길을 휘돌아 5번국도가 열리고,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죽령 옛길은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졌다. 근년에는 몇몇 산꾼들의 발자국으로 길은 겨우 흔적을 이어왔다. 최근 들어서야 '느리게 걷기'가 유행하고 소백산 자락길이 개척되면서 죽령 옛길에 심심찮게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숲을 따라 난 길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다. 좁다란 오솔길 양옆에는 이미 잔설이 희끗희끗 덮이고 나무들은 몸의 것들을 털어버린 채 앙상하다. 간혹 보이는 인동초 덩굴도 거무죽죽 얼었고 솔잎들도 침이 한층 뻣뻣해졌다.
옛 사람들이 이고 지고 올랐을 죽령 고갯길 중턱. 촉촉이 배어나는 땀을 닦을 쯤이면 주막터가 나타난다. 산속 주막은 모두 허물어지고 돌담을 쌓았던 흔적만 남았고 돌담 위로는 마른 덩굴풀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주막터 넓적바위에 걸터앉으니 그 옛날 하룻밤 머물던 과객이 문지방에 턱을 걸치고 곰방대 빼물고 있는 영상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렇듯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삶의 증거들이다. 주막터를 지나면 고갯길은 더욱 가팔라져 숨이 가빠진다. 군데군데는 나무들이 길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고갯마루 즈음에는 새로 석축을 쌓고 공사를 하고 있는데 정자를 앉힐 요량이라고 한다. 죽령 고갯마루를 올라서면 5번국도 아스팔트길이 나타난다. 길옆 주막집에서는 파전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다. 그 옆으로는 장승공원이 있어 제각각 멋을 낸 장승들이 바삐 길가는 사람들을 흘겨보고 있다. 죽령 옛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다. 때문에 길 위의 모든 것들은 안주(安住)하지 못하고 끝내 흘러간다는 것을 배운다. 세월이 흘러가고 사람이 흘러간다는 것을 |